[스페셜2]
<벌새>로 비상한 김보라 감독을 다시 만나다
2019-09-19
글 : 김혜리
사진 : 오계옥
은희들을 위하여

2018년 가을 부산국제영화제 <벌새> 상영관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은 관객의 기쁨으로 환했다. 나도 재회의 행복을 누린 한 사람이었다. 객석의 우리는 서로를 몰랐지만, 이 소녀를 알고 있었다. 나는 은희(박지후)가 사는 동네 친구들과 고등학교를 다녔고 영지 선생님(김새벽)과 비슷한 학번의 대학생이었다. 노스탤지어의 뽀얀 필터에 기대지 않은 김보라 감독의 담대한 데뷔작은, 불특정 다수의 내밀한 기억을 깨워 서로 손뼉을 마주치며 공동의 역사로 합류하도록 만들었다. 1980, 90년대가 한국영화의 회고 영역에 들어온 지는 오래다. 그러나 <벌새>는 흔히 좌절과 환멸을 거쳐 자폭으로 이어지는 남성감독들의 성장 서사와 다른 궤적을 그린다. 예컨대 내 또래 여자아이들에게 광주의 소문과 최루탄 가스,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제5공화국 청문회는 사회적 자아를 깨뜨리고 형성한 중대한 사건이자 전환점이었다. 그러나 여성주체의 사적 서사를 역사적 모눈 위에 그려낸 영화는 문학작품에 비해현저히 적었다. <벌새>는 강남구 대치동의 25.7평 아파트와 상가에서 10대를 보낸 김은희의 1994년을 ‘개혁 문민정부’ 첫해에 한국이 겪은 사회경제적 변화와 집단 트라우마를 비껴가지 않고 소환한다. <레이디 버드>(2018)의 크리스틴(시얼샤 로넌)이 대학 진학에 즈음해 삶의 통제권을 얻기 직전이라면 <벌새>의 은희는 철저히 무력하다. 부모는 막내에게 별 기대가 없고 가족 밖 관계도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시작하고 끝난다. 은희의 바람은 크지 않다. 만화에서 읽었던 것처럼, 진실은 중요하고 사랑은 숭고하고 세상은 살 만한 곳이며, 너는 언젠가 온전한 네가 될 거라는 미더운 말 한마디면 족하다. 그저 올바른 이유로 사랑받고 싶다. 그러나 삶은 소녀를 우롱하는 것만 같다. ‘대학’과 ‘성공’이라는 단어만 익힌 앵무새처럼 어른들은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놓고 정작 대답은 흘려듣는다. 가장 찬란한 시절이라고만 하는데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 바라는 날이 이어진다. 그러다 마침내 은희는 찾아낸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지?”라며 눈을 들여다봐주는 어른을. 그런 학원 선생님 영지를 만난 은희에게, 안으로부터 알을 깨려고 외롭게 버둥거리던 병아리에게 바깥에서 쪼아줄 닭이 나타난 1994년은 ‘줄탁동시’(啐啄同時)의 해다. 그리고 그해에는 은희의 마음 바깥에서도 강고해 보였던 많은 것들이 깨지고 무너졌다.

스무곳이 넘는 해외 영화제 순례를 마친 <벌새>지만, 영화가 묘사하는 유무형의 일상적 폭력과 차별, 가족관계의 불모성이 동시대가 상정한 ‘정상성’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서글픈 사실은 한국 관객만이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은희의 부모는 서로를 바라보는 대신 TV를 같이본다. 엄마와 언니는 삶을 견디는 게 고작인 것처럼 보인다. 화가 난 아버지가 골프채로 자식을 폭행해도 뉴스거리가 안 된다. <벌새>에서 가족애는 건재하지만, 사랑의 방식은 식구 수대로 비극적으로 엇나간다. 궁극적으로 부모는 자식이 자기와는 다르길 바라고 자식들은, 열렬히 동의한다. 범용해서 견고한, 암반 같은 불행을 가장 구체적 방식으로 그린 <벌새>는 환희와 슬픔의 순간에도 생각을 멈추지 않았던 아이가 자라서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다. 개봉 이틀 전 만난 김보라 감독은 영지 역으로 분한 김새벽 배우, 그리고 제작 초기 감독이 같은 역으로 염두에 두었던 김민희 배우와 어딘지 닮아 있었다. 인물화가 어떤 식으로건 화가를 닮는 이치일 것이다. 자기다운 대화를 할 수 있느냐를 생사가 갈리는 문제로 여겼던 14살 소녀는, 이제 더이상 진지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것을 비웃지 않을 사람들로 주변을 채운 어른이 돼있었다. 집중하고 숙고해서 답할 준비가 된 김보라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제일 두려웠던 재앙은, “저도 그맘때”라는, 한때 그토록 혐오했던 어른들의 서두를 여러 차례 입에 올리고야 말 나의 한계였다.

-<벌새>를 보고 10대의 1년은 참으로 길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30대의 5, 6년에 해당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100일, 120일 기념일을 열심히 챙기는 것도 시간 개념이 달라서일 것 같다.

-<벌새>와 같은 연대를 판이한 방식으로 다룬 드라마 <응답하라 1994>(2013)와 다큐멘터리 <논픽션 다이어리>(2013)를 혹시 보았는지.

=TV드라마는 못 봤고, 도움이 될 만한 영화는 봤다. <로제타>와 <하나 그리고 둘>을 다시 보았고 어떻게 만들었을까 크레딧을 살피며 한국장편 독립영화들도 찾아봤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미학적으로도 훌륭한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했다.

-<벌새>의 레퍼런스로 에드워드 양 감독의 작품 가운데에서도 <하나 그리고 둘>을 꼽았다. 공간적 배경이나 인물의 연령대로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 더 먼저 떠오르는데 왜 <하나 그리고 둘>인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딱 한번 봤는데 서늘했다. <하나 그리고 둘>은 좀더 따스하고 감독이 세상을 품으려는 태도가 전해진다. 그런 시선을 <벌새>에도 담고 싶었고, 한 가족을 통해 현대사를 보여주는 방식도 <벌새>의 의도와 비슷했다.

-<벌새>의 디테일은 감탄스럽다. 과거 일기를 지금도 갖고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시나리오로 보일 정도다.

=초등학교 6년치 일기를 간직하고 있다. 중간에 쉬었다가 20대 중반부터 다시 썼다. 영지 선생님에게 은희가 “만화가가 되어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다”고 보낸 편지 구절은 내 일기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만화가가 꿈이었고 내 돈으로 처음 산 책도 <김숙의 만화작법>이었다. 만화잡지들을 애독했고, <벌새>를 자세히 보면 책장에 <올훼스의 창>이 꽂혀 있다. 김은희라는 이름도 만화가에게서 따왔다. 흔한 이름이지만 ‘은희’라는 발음이 예뻐 좋아한다.

-그럼 일기 외에 남들에게 읽히기 위해 쓴 글은, 습작 만화의 스토리가 최초인가? 영화과에서 쓴 시나리오인가.

=동국대 문예창작과의 신경림 선생님의 시 수업을 좋아해 영향을 크게 받았고, 이후에 시나리오 수업을 들었다. 영화과 대학원 유학을 가기 전에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한 학기 다니기도 했다.

-고등학생부터 줄곧 영화를 전공했으니 남 보기엔 초지일관 영화인인데 실상은 단순치 않았나보다.

=학부 졸업 무렵에 영화를 벗어나려고 애쓰면서 <씨네21> 기자 시험도 봤다. 일반 기업에도 응시했는데 “너무 페미니스트다”라는 평과 함께 불합격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영화 대신 시나 소설로 내 이야기를 쓰면 어떨까 싶어 문예창작과에도 갔지만 좋아하는 것과 쓰는 것은 다름을 깨닫고 유학을 준비했다. 워낙 공부를 한 적이 없어서인지 토플 준비하는 동안 배움의 기쁨이 컸다. (웃음) 스터디 그룹 장까지 맡아 팀원들이 울면서 따라왔다. 뭘 한번 하면 열심히 한다. 물론 영화 찍기가 괴롭기만 했던 건 아니다. 첫 단편 <계속되는 이상한 여행>(2002)을 편의점에서 촬영했는데 3, 4시간 동안 26컷을 찍어야 했다. 말도 안 되는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아드레날린이 분출했다. 다 찍고 식당 화장실 칸에 들어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이상한 기쁨이 차올랐다. 한참 곱씹다 나오니 스탭들은 무리한 일정 때문에 속상해서 운 줄 알더라. 설명할까 하다가 그 마음을 혼자 간직하고 싶어 침묵했다. 며칠 전 <벌새>의 <씨네21> 평점을 보면서 그때의 감정, 형언하지 못할 고마움 같은 것이 다시 밀려왔다.

-유학에서 무엇을 기대했나? 외람되지만 단편들을 보니 중간에 영화가 비약한 것 같다.

=솔직히 감독은 꿈꾸지도 못했다. 공부하고 오면 강의로 생계는 유지할 방도가 있겠지 정도였다. 그런데 컬럼비아대학 영화과 대학원은 장학금도 많이 주고, 전형에 제출한 단편과 시나리오 샘플, 연구 계획에도 좋은 반응을 보였다. 입학 후에도 교수님과 동료들이 나의 시각적 스토리텔링을 칭찬해줬다. 작고한 루이스 콜 교수는 수업 교재가 구미영화에 치우쳤다는 메일을 드리자마자 <괴물>을 필두로 아시아 영화를 다뤄주셨다. 5분짜리 영상을 2시간씩 비평받는 수업을 겪으며 내 영화가 쑥쑥 늘었다. 한국에서는 탁월한 학생인 적이 없었는데 대반전이었다.

엄마와 딸, 사이의 심연

-<벌새>의 제작은 어떻게 꾸려졌는가.

=순제작비는 3억원 미만이다. 선댄스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후반작업 지원을 받았다. 선댄스는 편집 코멘터리도 제공했다. 판권을 선판매해 촬영을 시작했다. 현재 <벌새>의 배급권이 팔린 나라는 싱가포르, 스웨덴, 미국, 터키, 대만, 일본 등이다.

-<벌새>의 오프닝 신은 설명 없이 의미심장하다. 심부름을 갔다가 아래층 아파트로 잘못 돌아온 은희가 미친 듯이 문을 두드린다. 마침내 자신의 착각을 깨닫고 돌아온 은희는 방금 소동을 엄마에게 떠벌릴 만도 한데 아무 말도 없다. 엄마에 대한 소녀의 잠재적 불안과 거리감이 보인다. 그리고 카메라는 다른 ‘은희들’이 살고 있을 법한 아파트 전경으로 줌아웃한다.

=엔딩은 늘 정해져 있었지만 오프닝은 고민이 많았다. 어떻게 시작해도 진부하더라. 그러던 어느 날 은희처럼 패닉에 빠졌던 경험이 떠올라, 영화에 관심도 없는 오빠 친구에게 무심코 들려줬더니 자기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더라. 군대 휴가를 나와 초인종을 눌렀더니 강아지 짖는 소리가 나서 가족들이 나를 버리고 이사갔을까봐 순간 무서웠다고 한다. 상식적인 반응은 “손님이 왔나?” 정도일 텐데 말이다. 그래서 이것이 보편적 체험임을 알았고 마지막 줌아웃으로 많은 집을 보여줬다. 만약 은희의 마음이 건강했다면 엄마에게 실수담을 털어놓았겠지만, 은희는 아무 일 없던 척한다. 거기에 엄마와 딸 사이의 심연이 있다.

-1994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이 배경이고 은희의 집으로 복도식 아파트를 선택했다. 우선 실제 촬영 장소는 어디인가.

=제작부에서 여름 내내 살을 까맣게 태워가며 재개발지역 서울 아파트를 돌았는데 기적적으로 시나리오 그대로 은마, 개포동 주공, 미도 아파트에서 실내, 실외 장면을 모두 촬영했다. 아이들이 물건을 훔치는 문방구는 미도상가에서, 서예 학원은 개포 주공상가에서 찾았다. 빈집을 빌려 베란다를 만들고 문짝과 마감재를 1990년대식으로 바꾼 것이 유일한 부분 세트 작업이었다.

-복도식 아파트는 작은 골목이 방 창문 밖에 있는 셈이다. 그래서 늦게 귀가하는 언니 수희(박수연)가 문간방 창을 몰래 두드릴 수 있고 은희가 복도로 쫓겨나 벌도 선다. 아파트 헌팅의 제1조건은 무엇이었나.

=사소하지만 당시 비슷한 아파트에 살았던 사람들이 공유하는 서사와 정서를 만들고 싶어서 복도식을 첫 조건으로 고집했다. 복도식은 계단식보다 작은 평수 아파트의 설계이기도 하다. 사생활이 약간 노출되기도 하고 외관은 조형적으로 모던한 이미지를 낸다.

-<벌새>의 강남은 추상적 강남이 아니라 내부자가 체험한 1994년의 구체적인 강남이다. 같은 구역에 살아도 사람들의 계급은 불균질하다. 중대형 아파트 입주자와 주민 대상 자영업에 종사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구, 철거 반대 주민의 경제적 처지가 각기 달랐던 당시 풍경이 그려져 있다.

=은희의 단짝 지숙(박서윤)만 해도 은희보다 훨씬 부유하다. 삭제됐지만 둘의 계급차를 드러내는 장면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아주 어려서부터 아이들끼리도 계급을 나눴다. 몇동 사는지, 자가용 차종이 무엇인지 물었고, 학습 성취도에 따라 수업도 우열반을 갈랐다. 중학생이 되자 구분 짓기는 더욱 노골화됐다. 한번은 수련회에 장애인을 초청해 강연을 들었는데 그분이 자리를 떠나자마자 감동해서 눈물 흘리고 있는 아이들한테 선생님이 “자, 이제 너네가 얼마나 행복한지 알겠지?”라고 말해서 참기 힘들었다.

-수련회 일화를 들으니 <벌새>의 외삼촌이 떠오른다. 은희 아빠(정인기)는 술 취해서 회한을 토로하는 처남 면전에서는 깍듯하지만 대문이 닫히자마자 현관 센서등만큼도 인내하지 않고 험담을 한다. 은희가 부모와 교사에게서 보고 듣는 삶은 온통 세속적이고 얄팍하다. 대학과 성공 외에 다른 화제가 없다. 그것이 영지 선생님에게 은희가 곧장 사로잡힌 이유겠지만.

=그 무렵 가짜 대화가 너무 힘들었고 ‘본질’에 목말랐다. 어려서 혼자서는 그러기 어려운 것인데, 중학 시절 영지 선생님에 해당하는 분을 학원에서 만났다. 한문을 가르치셨고 페미니스트였고 방학 후 가보니 그만두신 후였다. 내 책을 빌려가서 안 돌려주셨다. (웃음) 극중 두 사람처럼 깊은 관계는 아니었고 느슨하게 챙겨주고 우롱차를 내어주셨던 분이다. 아마 그분은 내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모를 거다. 스쳐가는 사람의 작은 친절이 남기는 온기를 그리고 싶었다. 이후 만났던 무수한 좋은 분들과의 관계에서 배운 것들을 <벌새>에 담았다.

-“삶은 아름다운 거야”라고 말하고 몸소 보여주는 존경할 만한 어른을 간절히 구했던 10대 시절의 마음은 평생 생생하다. 그러면서도 이상적 어른으로 그려진 영지 캐릭터가 기자와 비슷한 연배라 그런지 자격지심에 민망하기도 했다. 개인사와 현대사를 연결하기 위한 인위적 고리 같기도 했다.

=그런 의견,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내겐 최선의 선택이었다. 성수대교 붕괴가 아니었다고 해도 어쨌거나 영지는 은희의 인생에서 사라져야 했다. 그래야 은희가 남에게 받기를 끝내고 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실제 재난과 영지의 퇴장을 연결시킨 것은, 재난으로 인한 죽음이 영화적이면서도 당시 극히 현실적이었으므로 괜찮겠다고 판단했다.

-은희는 영지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하고 영지는 은희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보는 듯하다. 그래서 은희와 영지의 대화는, 과거와 현재의 김보라 감독이 나누는 문답으로 들린다.

=두 배우가 공교롭게 모두 왼손잡이였던 것은 신기한 영화적 기적이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내가 영지라고 여기며 썼는데 영화를 만드는 동안 힘드니까 어린 은희의 모습이 많이 나왔다. 말씀대로 영지로서 내 목소리와 그 시절의 은희였던 내 목소리가 있고, 14살의 나 그리고 과거와 화해한 현재의 내가 혼재해 있다. 빛과 어둠, 우울과 밝음이 공존한다. 은희 나이 때 사진을 꺼내보면 얼굴이 겨울이다. 실제로 중학교 시절을 되돌아보면 사계절 중 오직 겨울만 기억난다.

-입원한 은희를 문병 오는 장면의 영지는 마치 유령처럼 홀연히 나타난다. 의도적이었나.

=영지는 최초의 등장부터 어딘가 꿈결같은 느낌이 있길 바랐다. 문병신에서도 원무과를 들른다거나 현실적 과정도 써봤지만 삭제했다. 원 테이크로 찍었는데 병원 자체의 고요함과 두 사람의 모습에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이 있었다. <벌새>를 본 관객에게도 꿈곁같은 느낌이 있길 바랐다. 이런저런 현실적 등장. 원무과를 들러서 면회시간 외에 오는 양해를 구하는. 시나리오를 퇴고하면서 삭제했다. <벌새>를 본 앨리슨 백델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 장면을 보고 자신도 어린 시절 병실에 누가 찾아오는 판타지가 있었다고 들려주었다.

-병원이라는 공간 자체에서 위안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이름 모를 환자들이지만, 은희가 가장 호의적인 어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참고한 작품 중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비디오 아트가 있었는데, 우환이 많은 가정에서 살다가 장기간 병원에 입원한 일이 유년기에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라고 뽑더라. 가족과 학교로부터 벗어난 병원이 치유의 공간으로 작용할 수 있겠구나 싶었고 은희에게 병원이 쉼터가 되길 바랐다. 행당동 병원 원장님(김종구)도 무덤덤한 아저씨 같지만 나중에 진단서를 필요로 하냐고 물으며 염려해온 티를 낸다.

-은희네 가족은 1988년 올림픽이 배경인 단편 <리코더시험>(2011)에 처음 등장한다. 가족 구성이 비슷하고 겹치는 배우도 있다. 차후 장편으로 확장할 계획이 처음부터 있었는가? 아니면 사후적 선택이었나.

=단편만 만들 생각이었는데 은희가 어떻게 자랐을지 궁금하다는 관객이 많았다. 그렇다면 은희를 좀 키워볼까 싶었고 중학생 때 이야기를 쓰기 시작해 2013년 <벌새>의 초고가 나왔다.

-<리코더시험>은 막내 은희(황정원)가 오빠에게 물려받은 낡은 리코더로 칭찬받을 만한 연주를 하려고 노력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마지막 시험 장면에서 은희의 연주가 기술적으로 잘한 다른 아이의 연주와 달리 노래하듯 감정이 실려 있어 무척 놀랐다. 혹시 후시로 다시 녹음했나.

=영화의 마법이다. 황정원 배우가 본래 리코더를 잘 불기도 했다. 지금은 연기를 안 하지만 표정도 좋고 우는 연기를 하고 나면 현장이 숙연해지곤 했다. 기적이 많았던 단편이다. 엑스트라가 돼준 도봉초등학교 학생들까지 연기를 잘해줬다.

-정인기 배우가 연기한 <리코더시험>과 <벌새>의 아빠는 거의 동일인물로 보인다. 외도가 짐작되고 아이들에게 철저한 권위를 행사하려 한다. 특히 아들과 딸을 차별하는 방식이 은근하되 실감난다.

=내 세대에도 만연한 일이고 친구들에게 오빠와 차별받는 이야기도 흔히 들었다. 어느 관객이 “은희네 집은 정말 정상가족이다”라고 했는데 그것이 정답이다. 쉬쉬하지만 들여다보면 이 정도 폭력이 다 있었고 비정상적인 일이 정상으로 용인됐기에 사람들이 더 아팠을 거다. 큰 사건 말고 스며드는 폭력이 인간을 죽어가게 한다.

-한편 은희 엄마(이승연)는 오래전에 많은 것을 포기하고 슬픔조차 남의 것으로 느끼는 인물이다. 매일 울며 불행을 호소하는 엄마가 아니라 딸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을 것 같다.

=춤이라도 배우는 아빠와 달리 엄마에겐 출구가 없다. 모녀의 애증은 그리고 싶지 않았다. 공무원처럼 아이를 키우고 장사를 하고 모든 일을 할 만큼 하고 있지만 채워지지 않는 공허가 보이길 바랐다. 그래서 은희가 바깥에서 만난 엄마를 외쳐 불러도 듣지 못하는 장면이 있다. 엄마가 집 밖에서 자기 안의 소용돌이를 마주한 순간이다.

스며드는 폭력

-오래전 가족 중 한 사람을 집 밖에서 목격한 경험이 있는데 극중 장면이 비슷해서 놀랐다.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낯선 표정을 한 가족의 모습에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기분이 돼서 나도 모르게 숨었던 일이 있다.

=비슷한 체험담을 여러 사람에게 듣고 썼다. 가족 각자에겐 페르소나와 역할의 마스크가 있다. 그래서 공적 장소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당혹스럽다. 자연인 엄마의 존재는 은희에게 두려운 심연을 보여줬을 거라고 생각했다.

-막상 엄마는 울지 않는데 아빠는 은희가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자 운다. 한데 그걸 보는 은희의 반응은 의아함에 가까워 재밌다. “마치 이 사람이 날 사랑했었나?” 놀라는 것 같다.

=시나리오 지문도 비슷하다. 의아함과 우쭐함이 같이 있어도 좋다는 디렉션을 줬다. 아빠의 눈물에는 자기연민이 많다. 인물의 귀여운 면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오빠(손상연)는 상대적으로 닫혀 있는 캐릭터다. 은희에게 행사한 폭력을, 성수대교가 붕괴된 날의 눈물로 용서하고 넘어가는 인상도 있다.

=전형적으로 보일까 염려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저녁 식탁에서의 돌연한 울음이 필요했다. 가장 울 것 같지 않은 오빠가 짐승처럼 울 것 같았다. 오빠는 실상 은희를 억압한 게 아니라 스스로를 억압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오정희 작가의 단편 <유년의 뜰>에서 전쟁에 나간 아버지 대신 엄마를 통제하고 누이동생을 때리는 오빠가 생각나기도 했다. 가부장의 가치관을 내면화한 나머지 자신에게도 솔직하지 못한. 언니 수희도 엄마처럼 덤덤하다. 소위 언니 노릇을 전혀 하려고 하지 않는다. 패션은 김완선씨 풍이던데.

=김완선 가수의 ‘청청 패션’이 모델 맞다. 수희 역의 박수연 배우와 유리 역의 설혜인 배우처럼 맑은 얼굴을 참 좋아한다.

-박지후 배우는 시선을 붙드는 얼굴을 가졌다. 별스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계속 흥미를 유지하며 따라다니게 되는 얼굴이다.

=서늘한 기운이 있고 눈빛에 깊이가 있어 찍었을 때 느낌이 더 좋았다. 이미연 배우를 닮았다는 사람도 있을 만큼 고전미도 있다. 연초에 캐스팅하고 늦여름 크랭크인까지 만나서 종종 시간을 보냈다.

-무엇보다 거실에서 <여러분>의 커버 곡을 틀어놓고 몸을 흔드는 롱테이크 숏이 인상적이다. 반드시 이야기 전개에 필요한 장면도 아닌데.

=콘티에서도 롱숏 원테이크였다. 클레어 드니 감독의 <아름다운 직업>(1999) 중 엔딩 신에서 드니 라방이 춘 춤을 촬영 당일 지후에게 보여줬다. 첫 두 테이크를 갔는데 곱고 예쁜 춤을 췄다. 다른 방으로 가서 좀 강경한 투로 “난 네가 귀엽고 착한 사람이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네 안에 욕심과 다양한 명암이 있어서 좋다. 너의 내면을 흔드는 기분으로 췄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 번째 테이크부터 연기가 소름끼칠 만큼 달라졌고 결국 배우 스스로도 좋아하는 신이 됐다.

-수술 후에도 가정폭력으로 은희의 고막이 상하는 사건이 있다. 고막이 터지는 부상이라고 하면 체벌이 원인인 경우가 많고 따귀는 특히 모욕을 주려는 폭력이라서 더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이 부상이 이야기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모종의 찢어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체적 찢어짐, 단짝과의 균열, 후배의 거절, 선생님의 행방불명이 모두 성수대교 붕괴의 날까지 이어지는 전조다. 10월21일 사건까지 폭주하는 흐름을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코너로 몰아간 면은 있다. 소설가 커트 보니것이 “좋은 글을 쓰려면 사디스트가 돼라”는 말을 한 적 있는데 쓰는 사람으로서 거기 충실했던 대목이다.

-트라이베카필름페스티벌 당시 저널의 프리뷰는 은희를 바이섹슈얼로 인지해 <벌새>를 퀴어영화로 분류했다. 한편 국내에서는 은희의 감정을 10대 여성들에게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동성 친구와 언니에 대한 일시적 애착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양쪽 다 재밌다. 여자 친구끼리 손잡고 다녀도 그러려니 하는 한국은 퀴어한 나라다. 상상력이 없는 덕분이기도 하다. 동성애공포증이 강한 나라인데 여중고에는 어디나 동성애적 서사가 있고 그러다 대학 가면 없던 일이 된다. 일단 나는 은희와 여성 캐릭터와의 관계가 지나가는 단계라고 여기진 않는다. 내 머릿속에서 은희의 성 정체성은 유동적이고 사회 환경과 어떤 식으로 결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거다. ‘좀 이상한 사람’으로 통하는 영지의 매력을 알아봤으니 보통 아이는 아닐 것이다. 은희는 사람을 쉽게 판단하거나 분류하지 않는다. 유리와 지완(정윤서)을 같이 만나는 것도 캐릭터와 관계 있다. 영지와 은희가 로맨틱해 보인다고 하는데 그건 결코 아니다. 영지처럼 정치적 올바름이 중요한 인물이 나이 어린 상대와 그런 관계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캐릭터에 어긋난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질문을 받았을 때는 “다만 모든 관계는 일정 수준 이상 깊어지면 로맨틱한 면모를 띤다”고 답하고 스스로 흡족했다. (웃음)

-영지에게, 남들이 너를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말을 들은 은희는 가족 앞에서 폭발한다. “나, 성격 안 더러워!” 하고 울부짖는다. 생각해보면 대단한 일탈이나 반항을 한 적도 없고 당한 폭력을 남한테 전가한 적도 없다. 왜 나쁜 아이라는 비난을 들었는지 의아하기도 하다.

=노래방 가고 남자친구 사귄 정도지. 가족이 서로 상태가 안 좋을 때면 상대를 야비하게 낙인찍지 않나. 너는 그래서 안 되는 거라고 일축해 버린다. 상대를 일상적으로 내리찍는 가족 안의 빈번한 언어폭력이 있다. 익숙해서 견뎌냈지만 임계점을 넘으면 버튼 눌리는 말이 은희에겐 “성격 더럽다”였을 것이다. 또 부모는 공부 잘하는 장남이 동생을 때렸다는 진실을 회피하고 싶으니 폭력을 쌍방 과실의 싸움으로 몰고 가기 위해 은희를 나쁜 애로 만든 거다.

-<벌새>는 역사적 사건을 이정표로 쓸 뿐 몇주, 몇 개월의 흐름을 명시하지 않는다. 작은 단위의 시간을 표현할 때에도 느린 화면이 종종 등장한다. 어떤 순간에 고속 촬영을 썼나.

=병원에서 은희가 깨어날 때, 엄마를 부르는 순간에, 아이에게 천천히 흘렀을 첫 키스 직후에, 그리고 엔딩 등에서 영화적 순간을 강조하기 위해 썼다. 문장부호처럼 기능하기를 바랐다. 고속으로 갈 장면은 촬영 전부터 알았다. 예비용으로 정속도 찍었지만 결국 모두 고속 촬영분을 썼다.

나머지 생을 감싸는 목소리

-1994년 한해 동안 은희는 세번의 죽음을 경험하고 처음 몸의 일부를 떼내는 외과 수술을 경험한다. 외삼촌, 김일성 주석 사망 뉴스, 성수대교 참사의 세 죽음을 같은 선상에 놓고 생각했나.

=영화 전체적으로 죽음의 기운이 흐르는 것은 불가피했다. 또한 은희는 자기 마음의 일부가 죽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외삼촌의 죽음은 마지막 죽음과 연결되길 바랐다. 외삼촌 상을 당했을 때만 해도 은희는 엄마의 슬픔을 헤아리지 못하고 남자친구에게 삐삐를 친다. 그러나 몇달 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는 엄마에게 외삼촌이 그립지 않은지 묻는다. 그동안 자란 거다.

-<벌새>는 사건의 인과로 조직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빛과 어둠, 상극의 감정이 교차하면서 나아가는 내적 구조가 있다. 영화 전체를 음악에 비교해 리듬을 표현해줄 수 있나.

=대략 3막으로 생각했다. 1막은 유리를 만나는 록 카페 신 전까지. 2막은 성수대교 사건 날짜 자막이 뜨기 전까지다. 1, 2막은 디테일을 쌓는다. 세부를 빼라는 의견도 많았는데 3막의 폭주를 위해서는 차곡차곡 쌓아야 했다. 2막까지 배치의 두축은 영지와 통원치료였다. 은희가 절망할 즈음 위로의 기능을 하는 영지를 투입했고, 긴장과 서스펜스가 필요할 때 병원 신을 넣었다. 왜 자꾸 통원을 반복하냐고 줄이라는 조언도 있었지만 내겐 반복이 낳는 긴장의 집적이 중요했다. 영화가 처질 때에는 야외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장면을 넣었다. 장면 단위로는 임팩트가 강한 신 다음에 약한 신을, 강력한 신 여럿이 뭉쳐 나오면 급격히 떨어지는 신을 배치했다. 씨를 뿌리고 추수를 고민한 것 중 하나가 부모의 싸움으로 깨진 스탠드 파편을 은희가 발견하는 장면이다. 영지 선생을 영영 잃을 수도 있음을 안 다음에 가족의 불안을 뜻하는 파편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편집 과정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케이 컷을 다시 골랐다. 조수아 프로듀서, 그의 어시스턴트와 셋이서 다수결로 테이크를 고르고 일주일에 세번씩 편집회의를 하면서 붙여나갔다.

-영지 선생님의 편지는 “개학하면 만나자. 모두 다 이야기해줄게”로 끝난다. 무엇을 이야기해줄 것인지 목적어가 모호하다. 영지 역시 모두 다 알 리는 없고.

=이제 없는 사람이 전부 이야기해준다고, 모르면서도 다 이야기해주리라 말한 데에서 온 아련함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편지를 받자마자 밝히지 않고 시간차를 두어 관객이 내용을 알도록 했다. 영지의 편지와 음성이 은희의 생을 감싸는 느낌으로.

-<벌새>가 감독의 자전적 스토리라고 전제하면, 은희는 영화가 끝나고 2년 후 예술고를 가고 가족의 방앗간은 3년 후 IMF 재정위기를 겪을 것이다. <벌새>는 뚜렷한 사건 중심 서사가 없어서 오히려 속편이 보고 싶은 드문 경우다. 같은 배우가 아니더라도 ‘벌새 연대기‘랄까. 그렇게 되면 감독의 영화 인생의 많은 부분을 저당 잡혀야겠지만.

=샤티야지트 레이의 <아푸> 3부작처럼? <벌새>를 만들면서 뭘 하고자 노력한다고 반드시 이뤄지진 않는다는 걸 잘 알게 됐다. 결과만 보면 탄탄대로를 달려왔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겠지만 말 못할 괴로움도 많았다. 당장은 바로 은희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다른 인터뷰를 보니까 여성 관점으로 본 시대극, SF, 전쟁영화를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모두 제작규모가 큰 장르다.

=정서를 다룬 SF영화를 생각하고 있다. <벌새>를 준비하면서 우울증 비슷한 증상을 겪었다. 해저 2만리를 헤엄치는 기분이었다. 나도 그랬고, 주변의 우울증 경험자들도, 힘들지만 감정의 영역대라는 면에서 자아가 엄청나게 확장되는 체험이었다고 말하더라. <벌새>에서 은희가 엄마를 소리쳐 부르는 순간처럼, 환상과 미래가 결합된 정서적 스펙터클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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