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2019 CJ문화재단 스토리업 특강, 의사 겸 작가 박재영의 ‘병원이라는 무대, 의사라는 캐릭터’
2019-09-19
글 : 이나경 (객원기자)
사진 : 오계옥
여기저기 찔러보는 취재방식은 금물

CJ문화재단의 스토리업(STORY UP) 프로그램의 일환인 특강에서는 작가와 예비 스토리텔러, 영화계 지망생의 소재 발굴과 전문성 강화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매년 몇 가지의 트렌드를 선정한다. 올해는 ‘의학, 뉴미디어, 공간과 건축’을 꼽아 관련한 강의를 준비했다. 지난 8월 31일 오후 3시 CJ인재원에서는 의사 겸 작가 박재영이 ‘병원이라는 무대, 의사라는 캐릭터’를 주제로 1차 특강에 나섰다. 이후 김태원 구글코리아 상무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의 콘텐츠와 스토리’(10월 19일), 유현준 건축가의 ‘영화 속 공간에 숨겨진 인문학’(11월 22일)을 주제로 한 특강이 이어질 예정이다. 박재영은 의사 출신으로 월간신문 <청년의사>의 편집주간이자 <개념의료> <종합병원 2.0> 등을 집필한 작가이기도 하며, 팟캐스트 <나는 의사다>와 유튜브 <YG&JYP의 책걸상>에서 PD와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 대부분의 의사는 죽음에 대해 아는 것이 많기 때문에 이에 직면할 상황을 일반인보다 훨씬 무서워한다. 그리고 인간이기에 당연히 환자의 죽음 앞에 무감할 수 없다. 굉장한 트라우마가 되지만 티를 덜 낼 뿐이다.”

드라마 <종합병원>의 탄생 비화

1994년 방영한 MBC 드라마 <종합병원>에 자문해준 이야기부터 시작하겠다. <종합병원>이 탄생하기 1년 정도 전, 의학 드라마를 준비한다는 PD와 작가가 <청년의사>를 찾아왔다. 그들이 생각하는 시나리오의 전반을 들은 후 내가 처음 한 이야기는 “교수나 전문의들 중심이 되는 의학 드라마는 재미가 없다”였다. 의학 드라마를 만들려면 레지던트 1, 2년차가 주인공으로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사라는 캐릭터, 병원이라는 공간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들의 삶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겠다. <종합병원>의 각본을 쓴 최완규 작가와의 에피소드를 조금 더 풀어보겠다. 서브 작가였던 그는 기존의 메인 작가가 잠적해, 상황을 수습하던 감독의 제안으로 우연히 기회를 잡게 되었다. 이후 취재차 우리를 찾아와서는 다짜고짜 병원 응급실에서 살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당직실에서 먹고 잘 수 있도록 자리는 마련해줬지만, 사실 일주일도 못 버티고 그만둘 줄 알았다. (웃음) 그런데 그 생활을 3개월 동안 하더라. 의사들의 일상과 응급실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긴박한 상황을 바로 코앞에서 지켜보고, 대본에 녹여낸 거다. 물론 일반인으로서 의학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나 전문적인 지식은 나를 비롯한 <청년의사>측에 자문했고, 도움을 줬다. 만 2년 정도 주간드라마로 완성된 <종합병원>은 소위 말해 ‘대박’이 났다. 이후 나는 <종합병원 청년의사들>이라는 책을 썼고, 10년 정도 지나 최완규 작가의 제안으로 2008년 방영된 MBC 드라마 <종합병원2>의 원작이 된 소설 <종합병원 2.0>을 집필하기도 했다.

영상매체 속 병원과 의사에 대한 궁금증

대학병원 의사들은 그들 내에서 정말로 MBC 드라마 <하얀거탑>과 같은 정치 싸움을 벌일까? 솔직하게 답한다면 ‘일부’에게 일어나는 일이며, 드라마 속에는 그 과정이 꽤 리얼하게 담겨 있다. 조금 더 정확히 풀자면 운영 방식에 따라 내부의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사는 당장의 업무에 바빠 정치 싸움에는 큰 관심이 없다. 또 사전 질문으로 사람이 정말 영화처럼 죽느냐는 물음도 많았다. 당연히 그렇지 않다. 사고사는 너무나 한순간이라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다. 다만 노환이 있는 경우 의사들은 하루, 이틀 전에 임종을 예측하기도 한다. 맥박이 점점 떨어지고 의식이 흐려지며 결국 심장이 멈출 때까지 짧아도 몇 시간은 걸린다. 따라서 임종을 앞둔 환자가 마지막 순간에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유언을 남긴다거나, 갑자기 심박수가 0으로 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연출된 장면으로 보면 된다. TV 속 냉철한 의사들이 환자의 죽음에 눈도 깜빡하지 않는 장면을 보고 정말 의사들은 죽음에 무감해지는지,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지에 대한 질문도 많았다. 대부분의 의사는 죽음에 대해 아는 것이 많기 때문에 이에 직면할 상황을 일반인보다 훨씬 무서워한다. 그리고 인간이기에 당연히 환자의 죽음 앞에 무감할 수 없다. 굉장한 트라우마가 되지만 티를 덜 낼 뿐이다.

의학을 소재로 한 각본 집필 시 유의할 점

야구 중계를 많이 본다고 내가 메이저리거가 될 수 있나? 기본적인 훈련조차 하지 않고 중계만 본다면 어떻게 야구 실력이 늘겠는가. 그렇다면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본다고 나 역시 좋은 드라마나 영화의 각본을 쓸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전자에는 당연히 아니라고 답하면서 후자에는 웃고만 있다. 착각하고 있는 거다. 물론 좋은 드라마와 영화를 많이 접하면 창작에 어느 정도 자극을 받고 영감을 줄 수는 있겠다. 또 하나의 상황을 예를 들어보겠다. <개념의료>를 출판한 후 어느 드라마 작가에게 메일이 왔다. KBS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로 대성공을 거둔 김태희 작가였다. 이후 KBS에서 <뷰티풀 마인드>라는 의학 드라마를 썼고, 최근에 tvN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로 다시 한번 이름을 알린 그 김태희 작가가 맞다. 의학 드라마를 만들고 싶은데, 내 책을 정말 인상 깊게 읽었다며 혹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다. 이후 작가와의 만남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책에 갖은 색의 메모지를 한가득 붙여와 궁금한 지점을 하나하나 짚어보는 그 태도 때문이었다. 아무리 많은 영상을 접하고, 취재를 열심히 다니고 강연을 들어도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 책을 읽지 않는 건 기본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많이 하길 바란다. 그리고 병원이라는 공간 속에서 의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은 분들은 취재 시에도 유의할 점이 많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타깃층을 확실히 잡고, 이야기의 범위를 좁힌 뒤 접촉을 시도해야 한다. ‘병원의 전체 구조가 궁금해요’와 같은 질문을 하면 누가 답을 해주겠나. 또 기본 스토리의 틀조차 없으면서 소재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찔러보고 다니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최소한의 아이디어는 가지고 있으면서, 예의 있는 태도와 함께 구체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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