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봅시다]
데뷔작 <블러드 심플>로 살펴보는 코언 형제 영화의 특징
2019-10-08
글 : 이주현
형제는 떡잎부터 남달랐다
조엘 코언과 에단 코언(왼쪽부터).

코언 형제의 데뷔작 <블러드 심플>(1984)이 뒤늦게 당도했다. 1984년 영화이니 무려 35년 만의 국내 극장 정식 개봉이다(1998년 디렉터스컷 4K-UHD 버전으로 상영한다). 데뷔작에서부터 선명한 코언 영화의 특징을 살펴봤다.

<블러드 심플>은 어떤 영화?

하드보일드 범죄영화 <블러드 심플>은 떡잎부터 남달랐던 코언 형제의 데뷔작이다(국내에선 <분노의 저격자>라는 제목의 비디오로만 출시됐다). 언제나처럼 각본은 형제가 공동으로 썼으며, 감독 크레딧에는 형 조엘 코언의 이름이, 제작 크레딧에는 동생 에단 코언의 이름이 표기되어 있다. 사실상의 공동연출. 영화는 애비(프랜시스 맥도먼드)가 남편 마티(댄 헤다야)의 종업원 레이(존 게츠)와 불륜을 저지르고, 마티가 사립탐정 로렌(에밋 월시)에게 살인 청부를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인물들 사이를 오가는 거짓말과 오해 그리고 무지가 결국 피를 부르는 이야기. 단출한 인물 구성에도 불구하고 서스펜스 연출의 정석을 보여주는 시퀀스들이 인상적이며, 사소한 오해가 얽히고설켜 예측할 수 없는 카오스적 상황, 블랙코미디적 파국으로 끌고 가는 서사의 힘 등 코언 형제의 영화적 특징과 재능은 <블러드 심플>에서부터 또렷했다.

<블러드 심플>부터 <카우보이의 노래>까지

‘거장’ 코언 형제에게도 사람들에게 영화의 트레일러를 보여주며 제작비를 융통해야 했던 ‘신인’ 시절이 있었다. 이들은 목표했던 150만달러의 제작비를 1년 동안 모았고, 8주간 텍사스에서 촬영해 영화를 완성시켰다. 이들의 저예산 독립영화는 제작비 두배 이상의 흥행과 제1회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이라는 성취, 미국 독립영화의 새로운 기수라는 평가를 얻어냈다. <아리조나 유괴사건>(1987), <밀러스 크로싱>(1990)을 거쳐 칸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바톤 핑크>(1991)와 <파고>(1996)에 이르면 코언 형제의 명성은 한없이 높아지고, 코맥 매카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12번째 장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등을 수상할 때쯤 그 명성은 정점을 찍는다. 코언 형제의 최근작은 제75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18번째 영화 <카우보이의 노래>(2018)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를 통해 배급된 코언 형제의 첫 작품이다.

프랜시스 맥도먼드

<헤일, 시저!>(2016), <번 애프터 리딩>(2008),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2001), <파고>, <바톤 핑크>, <밀러스 크로싱>, <아리조나 유괴사건> 그리고 <블러드 심플>까지. 코언 형제 영화의 최다 출연배우이자 코언 형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배우, 바로 프랜시스 맥도먼드다. <블러드 심플>은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영화 데뷔작이기도 하다. 심각한 두 남자 마티와 레이 사이에서, 파국의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살인에 휘말리는 순수한 얼굴 애비가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스크린에서 보여준 첫 얼굴이다. 이 영화를 찍고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조엘 코언 감독은 1984년 결혼한다. 서로의 초창기, 영화 동료로서 두 사람의 시너지는 상당했다. <파고>에서 연기한 만삭의 경찰서장 마지가 대표적인데, 코언 형제는 프랜시스 맥도먼드에게서 순수한 총기(聰氣)를 발견한 최초의 감독이다. <파고>에 이어 프랜스시 맥도먼드에게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안겨준 마틴 맥도나 감독의 <쓰리 빌보드>(2017)에서도 그녀는 순수함에 강인함을 더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고야 마는 인물을 연기했다.

배리 소넨필드 촬영감독과 카터 버웰 음악감독

<블러드 심플>의 촬영감독은 배리 소넨필드다. <블러드 심플>이 배리 소넨필드의 촬영감독 데뷔작이다. <블러드 심플> <아리조나 유괴사건> <밀러스 크로싱>까지 3편을 연이어 작업한 배리 소넨필드는 코언 형제가 초창기 영화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 공헌한 인물 중 한명이다(<바톤 핑크>부터는 로저 디킨스가 영화의 촬영을 책임지고 있다). 배리 소넨필드는 이후 <아담스 패밀리>(1991)로 감독 데뷔를 하고, <맨 인 블랙> 시리즈와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등을 연출하면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연출 및 제작에 더 주력하고 있다. <블러드 심플>의 개별 시퀀스가 하드보일드 누아르로 완성되는 데에는 카터 버웰의 영화음악도 결정적 역할을 한다. 심플하지만 분명한 효과를 불러내는 카터 버웰의 음악은 영화의 마지막 퍼즐 한 조각 같은 역할을 한다. 카터 버웰과 코언 형제의 협업은 로저 디킨스와 코언 형제의 작업만큼이나 끈끈하게 유지되고 있다. 좋은 스탭을 발견하고 곁에 두는 능력 또한 코언 형제 감독의 능력이리라.

미국 중소도시의 풍경

코언 형제의 고향은 미국 중북부에 있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미니애폴리스는 <시리어스 맨>(2009)처럼 영화의 직접적 배경이 되기도 하고, <파고>처럼 촬영지로도 자주 소환되는 곳이다(<파고>는 노스다코타주에 있는 도시 이름이지만 실제 촬영은 미니애폴리스에서 진행했다). 코언 형제의 또 다른 영화적 고향은 텍사스라 할 수 있는데, <블러드 심플>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모두 텍사스를 배경으로 한다. 코언 형제의 영화에선 밋밋하지만 개성이 뚜렷한 미국 중소도시의 풍경을 자주 목격한다. 더불어 많은 사건이 길 위에서 벌어진다. <블러드 심플>의 텍사스, <바톤 핑크>의 LA, <파고>의 파고, <시리어스 맨>의 미니애폴리스,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의 미시시피, 뉴욕에서 시작해 시카고를 경유하는 길 위의 영화 <인사이드 르윈>(2013) 그리고 <카우보이의 노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더 브레이브>(2010), <헤일, 시저!>에서의 사막까지. 코언 형제의 영화는 미국의 지리적 특징, 그에 따른 제각각의 삶의 방식(말투까지 포함해)을 재료 삼아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조망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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