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 중국어판이 ‘중국의 아마존’으로 불리는 중국 최대 온라인 서점 당당에서 10월 16일 기준 판매 1위를 기록했다. 앞서 출간된 일본에서는 인쇄부수 14만부를 돌파했고, 대만에서는 ‘가장 빨리 베스트셀러에 오른 한국 소설’이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누적 판매부수 100만부를 돌파한 지 오래며, 현재 18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아무튼 괜히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한국이 제12대 전두환 대통령이 정권을 잡고 있던 1982년, 중국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라는 말로 중국의 경제 발전을 본격적으로 이끌어간 덩샤오핑이 국가주석으로 있던 때였다. 쓰고 보니 이런 정보가 원작이든 영화든 이해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냐만, 그만큼 1982년이라는 시기와 사실상 육아를 전담하고 있는 30대 중반의, 그야말로 흔한 이름 김지영이라는 여성의 자리를 명확하게 각인시킨다.
<82년생 김지영>이 10월 23일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영화화를 기다렸던 이유 중 하나는 역시 정유미 배우가 연기할 김지영이 부엌에 홀로 우두커니 서 있다가 느닷없이 다른 사람에게 빙의되어 “사부인”을 부르는 장면 때문이었다. 어떤 상황인지는 아직 소설과 영화 모두를 접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그만 얘기하기로 하고, 어쨌건 영상화될 때의 장점과 효과가 무엇인지 여실히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물론 그것은 영화화를 기다려온 입장에서 영화적 장치에 대한 얘기일 뿐이고, 내적으로는 어떤 성취와 아쉬움을 남겼는지 이번호 특집을 꼼꼼히 읽어주길 부탁드린다.
<체르노빌>과 순위를 바꿀 만큼 개인적으로 올해 최고 드라마일 것 같은 느낌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비슷한 시기에 만난 것도 꽤 의미심장한 일인 것 같다. <82년생 김지영>에서 성추행을 당한 지영이 아버지에게 “왜 치마는 그렇게 짧냐. 아무한테나 웃어주면 안 된다. 못 알아보고 못 피한 사람이 잘못”이라고 부당하게 야단맞았다면,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의 마리(케이틀린 디버)도 (물론 지영의 경우와 일대일로 비교할 수 없겠지만) 성폭행 사건 이후 자신의 피해 사실을 힘겹게 얘기하지만 격무에 시달리는 형사에게 진술 번복을 하게 되어 졸지에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한 사람이 되고 만다. 두편 모두 무언가 설명을 덧붙이기보다, 역시나 관람을 권하는 작품들이다. ‘맘충’이라 불리는 김지영과 거짓말쟁이로 몰리는 마리의 이야기를 같은 시기에 접하면서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