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기억하기 힘든 크고 작은 영화제들이 넘쳐나는 요즘, 또 다른 영화제가 새로 시작된다고 하면 시큰둥하게 반응할 수도 있다. 올해 첫발을 디디는 강릉국제영화제가 넘어야 할 첫 번째 산은 바로 영화제와 얽힌 축적된 피로감이다. 하지만 제1회 강릉국제영화제의 이모저모를 살피고 나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전세계 영화를 한자리에 모아 본다는 의례적인 접근을 넘어 관객이 영화제에 무엇을 바라는지에 대한 고민과 화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11월 8일부터 14일까지 7일간 강릉아트센터와 경포 해변 일대에서 제1회 강릉국제영화제가 열린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부터 이끈 김동호 전 위원장이 조직위원장을 맡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충무로뮤지컬영화제 등 다양한 영화제를 운영한 김홍준 감독이 예술감독을 맡아 야심차게 출범을 발표했다. 30개국에서 모인 73편의 상영작을 만날 수 있는 이번 강릉국제영화제는 함께 즐기는 영화제에 대한 나아갈 바를 제시하고자 다양한 차별화를 모색 중이다.
제1회 강릉국제영화제가 내세우는 첫 번째 차별점은 ‘영화와 문학’의 화합이다. ‘문향’이라 일컬어진 강릉에서 열리는 만큼 문학과 영화 두 예술간의 역사를 살펴보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지역의 정서와 시대 문화가 진하게 녹아드는 문예영화의 특성을 감안할 때 비경쟁 영화제로서 영화를 즐긴다는 취지에 부합한다. ‘문예영화 특별전’에선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상록수>(1961), <안개>(1967), <삼포 가는 길>(1975), <장마>(1979) 등 60, 70년대 한국의 대표적인 문예영화들을 만날 수 있다. ‘여성은 쓰고, 영화는 기억한다’ 섹션에서는 뛰어난 여성 작가들의 삶을 다룬 영화들을 소개한다. 20세기 초 중국 최고의 여류 작가 샤오홍의 삶을 다룬 허안화 감독의 <황금시대>(2014), 미국의 천재 시인 에밀리 디킨슨을 그린 테렌스 데이비스 감독의 <조용한 열정>(2016), 재닛 프레임의 자서전을 토대로 한 제인 캠피온 감독의 <내 책상 위의 천사>(1990) 등 필견해야 할 작품들이 다양하게 소개된다. ‘익스팬디드: 딜러니스크’에서는 <가장과 익명>(2003), <돌아보지 마라>(1967), <아임 낫 데어>(2007)까지 음유 시인 밥 딜런의 삶과 작품 세계를 다룬 영화들을 모았다.
두 번째 차별점은 전통과 새로움의 조화다. 강릉국제영화제에서는 거장과 신예 감독을 뽑아 집중적으로 다루는 ‘마스터즈 & 뉴커머즈’를 마련했다. 우선 70, 8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숱한 영화의 원전이 된 최인호 작가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는 ‘최인호 회고전’이 열린다.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1984),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1974)을 비롯한 7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으며 <겨울나그네>(1986)의 안성기 배우와 함께하는 시네토크도 준비되어 있다. 다음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展’에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대표작 7편을 만날 수 있다. 한편 ‘아시드 칸’ 섹션에서는 세계영화계를 이끌 신인감독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1993년부터 칸국제영화제에 신설된 이 섹션에서 총 10편의 작품을 엄선해 선보일 예정이다. 개막작 <감쪽같은 그녀>(2019)부터 폐막작 <돌아보지 마라>까지 7일간 허락된 영화를 사랑하는 시간이 곧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