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루 드 라주)는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긴 호텔을 새어머니 모드(이자벨 위페르)의 지시대로 관리하는 노동자다. 어느 날 그녀는 갑자기 납치돼 알프스 숲속에서 살해될 위기에 처하고, 근처의 외딴집에 살던 남자 피에르(다미엔 보나드)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스노우 화이트>는 그림 형제의 <백설공주>를 패러디해, 현실과는 동떨어진 원작의 동화적 구도를 적극 끌어들이고 있다. 억압된 생활을 벗어난 클레어는 원작의 일곱 난쟁이에 해당하는 7명의 새로운 남성들을 만나면서,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하기 시작한다. 믿었던 사랑에 배신당한 뒤 젊음을 향한 욕망에 신음하는 모드와, 주체적으로 성적 해방을 맛보는 클레어 캐릭터 모두 재치 있게 변주된 모양새다. 고전 동화 속에 숨겨진 섹슈얼리티를 포착해 이를 현대적인 상상력으로 한껏 끌어올린 사례로서 흥미롭다. 하지만 정작 <스노우 화이트>가 지닌 매력은 원작 텍스트를 깊이 있게 파고든 뒤 비틀어낸 효과라기보다, 판타지 장르의 결을 이식한 프로덕션 디자인과 배우들의 아우라로부터 나오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특히 <금지된 사랑>(1992), <파리의 밤이 열리면>(2016) 등을 작업한 프랑스의 중견 촬영감독 이베스 안젤로의 몽환적인 촬영이 영화의 감흥을 더한다. 주제적 측면에서는 시류에 맞게 고전의 표면을 반전시킨 데 그친다는 아쉬움도 남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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