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제57회 뉴욕영화제 지상중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화제
2019-10-31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스코시즈부터 봉준호까지
ⓒFilmlinc

올해에도 어김없이 아카데미를 앞두고 다수의 화제작이 뉴욕영화제(이하 NYFF)를 찾았다. 올해로 제57회를 맞은 NYFF에서는 개막작으로 수년간 베일에 싸여 있던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신작 <아이리시맨>이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됐다. 이 작품은 미국의 유명한 노조단체 대표였던 지미 호파 실종사건에 관여된 것으로 추정되는 실존 갱스터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아이리시맨> 기자 시사회에는 미국 전역의 평론가들이 첫 상영에 참석하기 위해 링컨센터 에이버리 피셔홀 시어터를 가득 채웠다. 상영시간이 3시간 30분가량인 덕분에 조금 이른 오전 9시에 시사회가 열렸으나, 기자들은 상영시간 2시간 전인 오전 7시부터 극장 앞에서 줄을 서며 영화에 큰 관심을 보였다. 스코시즈 감독의 작품 속 얼굴로 친숙한 배우 로버트 드니로와 조 페시, 하비 카이텔 등을 비롯해 40여년 동안 함께 작업하기를 꿈꿔왔다는 알 파치노도 캐스팅에 가세했다. 특히 이제는 70, 80대가 된 이 배우들이 ‘디에이징’(De-aging VFX) 테크닉을 통해 40~50대부터 노년까지 연기해 더욱 눈길을 모았다. 이 작품은 11월 1일 뉴욕과 LA에서 한정 개봉한 후, 11월 27일 넷플릭스를 통해 볼 수 있다. 현재까지 <아이리시맨>의 로튼토마토 지수는 100%의 신선도를 기록하고 있다.

<결혼 이야기>

지난 9월 27일부터 10월 13일까지 계속된 올해 NYFF에서는 총 29편의 장편 극영화가 메인 슬레이트 섹션으로 소개됐고, 13편의 장편다큐멘터리가 스포트라이트 섹션에서 소개되는 등 17일 동안 153편의 장·단편 작품들이 상영됐다. 영화제 센터피스 부문에는 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 이야기>가 소개됐다. 이 작품에는 스칼렛 요한슨과 애덤 드라이버, 로라 던, 레이 리오타, 앨런 알다 등 호화 배역이 출연한다. 폐막작으로는 에드워드 노튼이 각본과 감독, 주연, 제작을 모두 담당한 <머더리스 브루클린>이 소개됐다. 이 작품에도 역시 노튼을 비롯해 브루스 윌리스, 구구 바샤 로, 윌럼 더포, 알렉 볼드윈, 체리 존스 등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두 작품 모두 뉴욕을 배경으로 한 것은 물론 과거에 초청됐던 영화인들의 작품이라 NYFF 특유의 ‘뉴욕 사랑’은 올해도 이어졌다.

하지만 올해 NYFF에서 가장 화제가 된 작품은 뭐니 뭐니 해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후 국내 개봉도 했고 각종 영화제에서 상영을 마쳤으나, <기생충>에 대한 관심은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는 것. <기생충>은 NYFF 기간 중 뉴욕 프리미어를 가진 후 영화제가 끝나기 전인 지난 10월11일 뉴욕과 LA 극장 3곳에서 한정 개봉을 시작했다. 배급을 담당한 네온측에서 북미 개봉을 앞두고 토론토국제영화제부터 이어지는 대대적인 홍보 전략을 펼치고 있어, NYFF 기간 중 SNS에서 봉 감독이나 <기생충>에 대한 기사를 다루지 않은 매스컴이 없을 정도였다. <기생충>은 현재 로튼토마토 99%의 신선도를 기록하고 있으며, 개봉 주말 스크린당 수익이 12만 5421달러를 기록해 올해 개봉작 중 최고의 스크린당 수익을 올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16년 개봉한 <라라랜드>의 뒤를 이어 3년 만에 두 번째 큰 수익을 올린 작품으로 꼽히게 됐다. 이 기록은 올타임 스크린당 수익 랭킹 중 18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이같은 <기생충>의 흥행을 보도하는 미국 내 평론가들과 미디어 관계자들은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작품상과 감독상, 촬영상 부문에서 수상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에 이어 <기생충> 역시 외국어작품상 부문뿐만 아니라, 일반 부문 후보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이리시맨>

NYFF 기간 중 봉준호 감독은 2회에 걸친 <기생충> 일반 상영회에 출연배우들과 함께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것은 물론, 뉴욕 개봉을 앞두고 IFC 센터에서도 관객과의 만남을 가졌다. 영화제 상영회와 IFC 센터 특별 상영회는 짧은 시간 내에 모두 매진됐다. 또 봉 감독은 영화제에서 매년 화제의 감독에게 마련하는 별도의 행사인 ‘디렉터스 다이얼로그스’에도 참석해 작품세계에 대한 심도 깊은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외에도 눈길을 끈 작품들로는 마이클 앱티드 감독의 다큐멘터리 <업> 시리즈 신작 <63업>, 켈리 리처드 감독의 <퍼스트 카우>, 타냐 시프리아노 감독의 다큐멘터리 <본 투 비> 등이 있다. 내년 초 미국 내 개봉예정인 <퍼스트 카우>는 리처드 감독의 차분하고 섬세한 극 전개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남자들 사이의 우정을 독특한 스토리라인으로 아름답게 풀어가 평론가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본 투 비>는 뉴욕 마운트 시나이 병원에서 시작된 성전환 수술 전문의 제스 팅과 그의 환자들을 다뤄 호평을 받았다. 특히 트럼프 정권의 방침으로 LGBTQ 커뮤니티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고, 이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의 보험혜택도 줄어들거나 아예 없어지고 있어 이같은 문제를 조명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평을 얻었다. 이번 NYFF에서는 이미 타 영화제에서 큰 성과를 거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페인 앤 글로리>, 셀린 시아마 감독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감독의 <더 휘슬러스>, 마르코 벨로치오 감독의 <더 트레이터>,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와 줄리아누 도르넬리스 감독의 <바쿠라우>, 올해 초 사망한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 등도 소개돼 뉴욕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한편 올해 NYFF에는 넷플릭스에서 <아이리시맨>과 <결혼 이야기>, 마티 디옵 감독의 <아틀란티크> 등을 출품했고, 배급사 키노에서 <바쿠라우>를 비롯해 나다브 라피드 감독의 <시너님스>,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 감독의 <영 아메드>, 칸테미르 발라고프 감독의 <빈폴> 등을 출품했다. 반면 지난해 파베우 파블리코프스키 감독의 <콜드 워>만을 소개하는 데 그쳤던 아마존의 경우 올해 아무 작품도 출품하지 않았다.

●월드 프리미어 <아이리시맨> 기자회견 - 우리는 텔레파시가 통한 것처럼 늘 다시 모였다

ⓒGODLIS

제57회 뉴욕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아이리시맨>이 최초로 공개됐다. 시사회 후 스코시즈 감독을 비롯해 배우 로버트 드니로·알파치노·조 페시 그리고 프로듀서 에마 틸링거 코스코프와 제인 로젠탈 등이 참여한 기자회견이 이어졌다.

-이번 작품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제인 로젠탈_2007년 다른 작품을 준비하던 중에, 로버트 드니로가 이번 작품의 원작(찰스 브란트의 논픽션 <아이 허드 유 페인트 하우시스>)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촬영 기간도 길었다고 하던데.

=마틴 스코시즈_길었지. 106일이었나?

=에마 틸링거_코스코프 108일!

마틴 스코시즈_사람들 앞에서 거짓말했네. (웃음) 하지만 따져보면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로버트 드니로와는 <카지노>를 찍은 1995년부터 함께할 작품을 계속 찾았다. 늘 서로가 어떤 작업을 하는지 확인하곤 했다. 계속 기회가 없다가 드디어 작품을 찾은 거다. 지인이 책(원작)을 주면서 시작된 거지?

=로버트 드니로_맞다. 처음엔 캐릭터 리서치로 읽었다.

마틴 스코시즈_책을 읽고 캐릭터에 상당한 애착을 느꼈다. 그다음엔 더 얘기할 필요가 없었다. 전화를 여기저기 돌리기 시작했다. 이게 아마도 10년 전 일이지? 그때부터 알 파치노와 조 페시도 함께할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알 파치노와 늘 함께 작업하고 싶어 했다고 들었다.

마틴 스코시즈_오랫동안 그랬다. 알과 처음 만난 게 1970년이었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소개해줬다. 수년간 서로 다른 작품을 하다가 <모딜리아니>라는 영화로 함께 작업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됐다. 그러다 한 6년 전이었나? 이 작품에 대해 얘기하려고 베벌리힐스에서 만났다. 그때 이렇게 말한 기억이 난다. “이 영화, 정말 만들 수 있는 거냐”고.

=알 파치노_그랬지.

마틴 스코시즈_더 나이 들기 전에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좀 늦춰졌는데, 기술적인 면도 큰 이유였다.

-알 파치노는 이번 작품에서 전설적인 인물 호파를 연기했다.

알 파치노_물론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여러 방법으로 공부할 수 있는 자료를 구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됐다. 내가 <형사 서피코>를 연기할 땐 그 사람(실존 인물)이 촬영장에 있었는데. (웃음) 지미 호파의 경우 내가 자랄 때 워낙 크게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었다.

-다시 리듬을 찾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마지막으로 셋이 함께 작업한 것은 <카지노>였고 벌써 20년이 지났다.

로버트 드니로_마티(마틴 스코시즈)와 나는 몇번 더 작업할 기회가 있었는데 열매를 맺지 못했다. 이번 작품에 대해 마티, 조와 따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해왔다. 마티가 작업하는 방식을 존중해주면서 제작비를 지원할 사람을 찾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마틴 스코시즈_그게 가장 중요한 키였다. 오랫동안 제작비를 지원해줄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디에이징 프로세스가 연기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헬멧이나 테니스공을 쓰지 않고도 가능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테스트를 몇년 전에 해봤는데 비용이 무척 많이 들어갔다. 그러다 넷플릭스 관계자들이 ‘한번 해보자’고 결정했다. 창작적인 면에서 자유를 줬다. 물론 가끔 노트를 주기는 했지만 참조할지 안 할지는 우리의 결정이었다. 포인트는 페스티벌에서만 상영하게 되더라도 꼭 이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데 모두가 의견을 모았다. 때로는 나이 들면서 사람들이 변하는 경우도 있고 서로 멀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텔레파시가 통한 것처럼 늘 다시 모였다. 알과도 드디어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모두가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것을 즐거워했다.

●<63업>의 마이클 앱티드 감독 인터뷰 -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 기쁘다

ⓒRichard Jopson

뉴욕영화제 기간 중 다큐멘터리계의 거장 마이클 앱티드 감독과 만났다. 앱티드 감독은 지난 60년대부터 <업> 시리즈를 통해 7년마다 사회계급이 다른 영국인들의 성장과 생활을 지켜보는 인터뷰를 선보인 바 있다. 그와 인터뷰를 잡은 10월 5일은 뉴욕에서 코믹콘이 한창 열리던 날이었다. 코믹콘 행사로 맨해튼 일대는 심한 교통체증을 겪었고, 때문에 인터뷰 일정보다 늦게 나타난 앱티드 감독은 미안해하며 일대일 인터뷰로는 제법 긴 시간을 할애해주었다.

-이번 뉴욕영화제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63업>은 아홉 번째 <업> 시리즈 작품이다. 지금까지 시리즈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까지 시리즈에 참여한 멤버들에게 지난 7년간 일어난 일들을 담았으니 늘 새로운 이야기다. 원래 별도의 연락을 하지 않는 편이다. 어떤이에게는 많은 일이 일어났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독특한 방식이다. 아마도 자신의 인생 전체를 이런 필름으로 만들려고 하는 사람은 이제 없을 거다. 내 작업을 카피하려던 사람들은 많았지만 다 도중에 그만뒀다. 그런 점에서 나는 운이 좋았다.

-한국에도 당신 작품을 사랑하는 팬들이 많다. 언어와 국가의 장벽을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이 시리즈가 의미를 갖는 이유가 뭐라 생각하나.

=변화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번 <63업>은 죽음에 대해서도 많이 다룬다. 지금까지 함께해왔던 멤버 중 한명이 사망했고, 멤버 닉은 암 투병을, 재키는 거동하는 데 불편을 겪고 있다.

=다행히 닉은 아직 우리와 함께 있다. 재키는 몸이 좀 불편하기는 하지만 강인한 성격이기 때문에 큰 걱정이 되진 않는다. 이번 시리즈 중 호주 촬영분이 있었는데 촬영 중 닉에 대한 연락을 받았다. 암에 걸렸고, 죽어가고 있다고. 그래서 이번 촬영에는 참여하고 싶지 않아 한다는 내용이었다. 닉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중 호주 촬영분을 끝내기 직전에 닉이 연락해왔다. 미국에 거주 중인데, “제발 와달라. 오래 얘기하긴 힘들지만 잠깐이라도 얘기하고 싶다”고 하더라. 정말 겁나더라. 마지막이 될 것 같아서. 처음에 닉은 20분 동안 질문 몇 가지 정도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결국 닉과의 인터뷰는 한 시간 반 동안 계속됐다.

-일부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촬영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을 고수하고 그들의 생활에 관여하지 않기도 하는데, 본인은 어떤지.

=당연히 도울 수 있으면 도움을 준다.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이나 사람들에게 연결시켜주기도 하고. 여러 방법으로 관여하는 편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면 안 된다.

-근래 재능 있는 신예 감독들의 다큐멘터리 작품을 극장은 물론이고 스트리밍을 통해 만날 수 있다. 플랫폼의 변화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나.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되도록 많은 작품을 챙겨 보는 편이다. 어떤 변화가 있고, 어떤 부분에서 변화가 가장 큰지 등에 대해서도. 내가 죽은 후에도 계속 다큐멘터리를 만들 사람들이 궁금하다.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 기쁘다.

-일부 감독들은 스트리밍 서비스나 디지털 촬영 방식을 반대하기도 하는데.

=디지털 방식을 통해 실시간으로 무한대 촬영이 가능해지지 않았나. 촬영시간이 자유로워졌다. 이제는 많은 스탭이 필요없다. 2, 3대의 카메라로 동시 촬영을 할 때에도 소규모 스탭을 유지한다.

-한국에도 신예 다큐멘터리 감독이 많이 활동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조언한다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은 대상을 위한 것이지 나 자신(감독)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거다. 많은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자신에 대해 작품을 만든다. 지금처럼 이렇게 편리한 테크놀로지가 있으니 이를 잘 활용해서 좋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으면 한다. 일종의 다큐멘터리언으로의 서약이라 생각한다. 나는 내가 작품의 한 파트가 되지 않는다. 포커스는 늘 다른 이의 인생을 담는 것에 맞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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