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경계선>에서 티나는 왜 냄새를 맡지 못했나
2019-11-07
글 : 박정원 (영화평론가)
슬프고 위대한 외로움

<경계선>은 벌레를 먹지 않던 티나(에바 멜란데르)가 아기에게 벌레를 먹이며 끝나는 영화다. 티나가 트롤이라는 것은 티나의 독특한 외형이나 감정을 읽어내는 후각 능력으로도 표현되지만, 벌레에 주목하고 싶은 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고독하게 서 있던 티나가 집어올렸다 내려놓은 벌레가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다시 등장해 티나가 그것을 트롤 아기에게 먹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티나가 자신이 인간이 아닌 트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최초의 순간이 보레(에로 밀로노프)가 건네준 구더기를 먹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결국 티나에게 벌레는 그의 취향이면서 본능이면서 곧 정체성인 셈이다.

그런데 벌레와 관련해서 한 가지 의아한 장면이 있다. 앞뒤 장면들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아동 포르노 제작자의 살인 현장을 목격한 티나는 그 공간에서 보레의 냄새를 맡는다. (2) 보레는 티나에게 자신이 주기적으로 낳는 아기 모양의 난자 히시트를 인간 아기와 바꿔치기해 그 아기를 아동 포르노 제작자들에게 팔아넘겨왔음을 고백한다. 티나는 울먹이며 분노하다 집으로 돌아간다. (3) 티나가 숲으로 나가 애벌레와 지렁이를 잡아먹는다. (4) 그때 어디선가 앰뷸런스 소리가 들려온다. 티나는 앰뷸런스가 주차된 이웃집에 가보는데, 그 집의 아기가 사라지고 히시트가 놓여 있다. 다급하게 보레를 찾아가보지만 보레는 쪽지를 남긴 채 사라진 뒤다. (1)부터 (4)까지의 전개 과정은 판타지 로맨스의 호흡을 지니던 영화가 스릴러의 본색을 드러내는, 말하자면 장르적 전환을 시도하는 장면들인 동시에 티나의 감정 변화가 가장 급격하게 이뤄지는 장면들이기도 하다. 티나는 당황하며 의심했다가, 진실을 알고 분노하며 슬퍼했다가, 이웃집 아기 옷을 입고 있는 히시트를 보며 좌절한다. 그런데 이 장면들 틈으로(3)이라는 돌출적인 성격의 장면이 불쑥 들어가 있다. 트롤 보레에게 인간처럼 분노하던 트롤 티나가 다음 장면에서 트롤로서 벌레를 먹는다. 앰뷸런스 소리가 들려와 자신을 일깨울 때까지 티나는 열심히 벌레를 먹는다. 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진솔한 장면은 앞뒤 장면들 사이의 긴장감을 살짝 완화시키는 동시에 촘촘히 쌓여가는 두터운 감정의 눈덩이 속에서 티나를 보호하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순간만큼은 티나를 당황, 의심, 분노, 슬픔, 좌절 같은 감정에 귀속시키지 않고자 영화가 나름의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 같다. 그 순간이 안간힘처럼 느껴지는 건 그 순간을 제외한 여러 장면에서 티나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티나가 느낄 법한 감정들 혹은 티나가 느끼는 감정들을 우리는 매 순간 그의 표정이나 반응이나 대사 등으로 알 수 있다. 예컨대 남들과 다른 외모로 공격과 비난과 경계의 대상이 되는 순간들에 티나가 느끼는 감정의 표면을 영화는 집요하게 포착해왔다.

죄책감 대신 택한 외로움

티나가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은 ‘외로움’이다. 남들과 다른 외모와 특성 때문에 인간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티나는 혼자 사는 것이 ‘외롭기’ 때문에 사랑하지도 않는 롤랜드(요르겐 토르손)와 함께 산다. 자신을 점점 잊어가는 아버지(스텐 융그렌)를 자주 찾아가는 것도 ‘외롭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자신과 똑 닮은, 기묘한 냄새를 풍기는 보레에게 마음을 열고 그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것도 그가 결국 ‘외롭기’ 때문일 것이다. 티나는 세 남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외로움에 대한 대가로 그들의 냄새를 참아왔을 것이다. 롤랜드가 자신을 이용하는 마음, 아버지의 비밀과 거짓말, 보레의 범죄행위에서 비롯된 냄새는 분명 존재했을 테지만 티나는 외로워지는 것이 두려워 그들의 냄새를 제대로 맡지 못한다.

물론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롤랜드와 아버지의 진짜 냄새를 맡게 해준 이가 보레다. 몇 차례의 섹스 후 친밀해진 보레와 티나는 자신들의 트롤로서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다 인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아동 포르노 사건으로 충격받은 티나에게 보레는 기생충처럼 지구의 모든 것을 이용하는 인간들은 원한다면 자기 자식까지 써먹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보레는 티나의 아버지가 티나를 평생 속여온 것을 언급한다. 다음 장면에서 티나는 상기된 얼굴로 요양원의 아버지를 찾아가 왜 자신을 속였냐며 화를 낸다. 친부모가 누구인지 묻는 티나에게 아버지는 못되게 굴지 말라며 회피한다. 티나는 그때 새삼스럽게 아버지의 냄새를 짙게 맡았을 것이다. 수치심과 부끄러움과 미안함의 감정을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돌아온 집에서 티나는 롤랜드의 냄새 또한 새삼스레 맡기라도 한 듯 그를 내쫓아버린다. 아버지와 롤랜드를 떠난 티나는 트롤로서의 새 삶을 시작하듯 보레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렇다면 영화의 후반부, 티나가 보레를 떠날 수 있던 것도 보레에게서 나는 냄새를 맡게 되었기 때문일까? 선뜻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티나가 보레를 처음 출입국항에서 만났을 때부터 그에게서 범죄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보레가 아버지, 롤랜드와 다른 점이다. 그러므로 티나가 보레에게서 새삼스레 범죄 냄새를 맡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티나가 보레를 떠나게 된 것은 반대로 티나 자신에게서 맡은 냄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앞서 언급했던 장면으로 돌아가보자. 이웃집 아기가 히시트로 바꿔치기된 것을 확인한 후 티나는 보레를 찾아가지만 보레는 “당신은 인간이 아니에요. 여객선에서 만나요”라는 쪽지를 남긴 채 떠난 뒤다. 티나는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한다. 트롤의 본능은 벌레를 먹는 것, 그리고 아기를 바꿔치기하는 것이다. 티나는 벌레를 먹다, 보레가 아기를 바꿔치기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걸 깨달은 티나는 자신에게서 풍겨나는 죄책감의 냄새를 맡는다.

다음 장면, 여객선 위에서 만난 보레는 악마처럼 살 순 없다는 티나에게 “인간이 되려고요?”라고 묻는다. 티나는 “누구도 해치기 싫어요. 이렇게 생각하면 인간인가요?”라고 반문한다. 티나는 인간이 되기 위해 보레를 경찰에 신고한 것이 아니다. 티나는 외로움을 뛰어넘는 죄책감의 냄새를 맡았을 뿐이다. 자신의 정체성과 상처를 이해하고 위로하고 공감해주는 이와 함께 있고 싶다는 외로움이 타인의 불행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의 냄새와 충돌하는 것을 목격했을 뿐이다. 티나는 죄책감의 냄새를 참을 수 없어서 보레 대신 외로움을 선택한다. 티나는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 외로움을 선택한다. 그러므로 티나의 외로움은 슬프지만 결국 위대하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티나는 출입국항의 배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벌레를 만진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티나는 그 벌레를 자신의 품에 안긴 트롤 아기에게 먹인다. 티나와 비슷한 외모를 가진, 심지어 꼬리까지 달려 있는 이 트롤 아기가 티나의 보살핌을 통해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 우리는 예감할 수 있다. 인간들과 다르기 때문에 외롭고, 동시에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인간도 트롤도 아닌 그 경계선 위의 슬프지만 위대한 삶. 그리고 그 근원적인 외로움을 끝끝내 긍정하는 삶. 이란 태생으로 유럽에서 활동하는 감독 알리 아바시가 <경계선> 속 인간들 틈에서 살아가는 트롤 티나로 비유될 수 있다면, 티나 앞으로 배달되어온 트롤 아기는 아바시의 영화(들)로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바꿀 수 없는 본능을 받아들이되 피할 수 없는 외로움은 묵묵히 끌어안을 것이라고 말하는 듯한 <경계선>의 엔딩을 보며 그가 앞으로 만들어낼 영화들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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