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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래의 농염주의보>, 시작이 반이길
2019-11-12
글 : 최지은 (작가 <이런 얘기 하지 말까?>)

“세상의 남자는 둘로 나뉩니다. 나랑 잔 남자, 앞으로 잘 남자!” 넷플릭스 <박나래의 농염주의보>의 주제는 명확하다. 남자를 좋아하고 연애를 많이 하고 섹스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 박나래는 말한다. “아침밥은 안 먹어도 아침에 꼭 하고 나가요.”

그는 자신을 정복자 칭기즈칸에 비유하며 ‘선비’ 남친을 꼬드긴 (그리고 실패한) 이야기와 원나이트 다음날 아침의 엇갈린 풍경에 대해서도 털어놓는다.

망설이면서도 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재미있는 스탠드업 코미디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잘하게 생겼잖아. (사이) 말을 잘하게 생겼다고요!” “근데 안 서. (사이) 결심이 안 선다고요!” 같은 패턴은 반복되고, 망한 연애와 섹스 이야기를 할 때 ‘한국 여자’로서의 사회적 맥락을 다 빼버리니 신랄함이 떨어진다. “비주류에 속하는 사람의 자학은 겸손함이 아니라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말한 코미디언 해나 개즈비가 본다면 ‘이놈’ 할 것 같은 자기 비하 코드도 마음에 걸린다. 그러나 한국에서 여성이란 결혼 전까지는 섹스하지 않는 존재인 척 살아야 하고 결혼 후에는 섹스하고 싶은 대상에서 밀려나는 존재다(기혼 남성들이 즐겨 쓰는 ‘가족끼리 왜 이래’ 농담을 생각해보라). 넷플릭스에서 완다 사이크스나 앨리 웡의 코미디쇼를 즐기는 여성과 ‘섹스’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민망해하는 여성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박나래는 용감히 첫걸음을 내디뎠다. 더 많은 여성이 더 멀리 달려나갈 그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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