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아담스 패밀리> 애니메이터 김규현 - 무엇보다 재미를
2019-11-14
글 : 송경원
사진 : 백종헌

해외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장편애니메이션에서 한국인 애니메이터의 이름을 발견하는 건 이제 드문 일이 아니다. <아담스 패밀리>에서 캐릭터 애니메이팅을 담당한 김규현 역시 대표적인 한국 애니메이터 중 한 사람이다. <빅풋 주니어>(2017)를 시작으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2018)에 참여하며 활발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김규현 애니메이터는 최근 후진 양성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신작 <아담스 패밀리>의 작업 과정과 함께 애니메이터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소중한 조언을 전한다.

-엔웨이브, 소니픽처스 이미지웍스, 시네사이트 등 해외 스튜디오에서 애니메이터로 오랜기간 활약해왔는데, 최근에 변화가 있었다고.

=올해부터 홍익대학교 게임그래픽디자인학과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교육을 하는 건 예전에도 경험이 있었다.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졸업 후 경험을 넓히고자 유학을 떠났다. 2012년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에서 컴퓨터 아트 MFA 과정을 마치고 2~3년 정도 뉴욕의 광고회사와 조그만 TV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싱가포르의 컴퓨터그래픽과 애니메이션 관련 단과대학에서 잠시 학생들을 가르쳤다. 안정된 생활이었지만 창작에 대한 갈증이 커졌고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여러 군데에 포트폴리오를 보냈다. 마침 <새미의 어드벤쳐> 제작사인 벨기에의 엔웨이브에서 연락이 왔고 장편애니메이션 <빅풋 주니어>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스튜디오 생활을 시작했다. 10년 정도 활동하다가 이번에 홍익대학교에서 제안이 와서 고심 끝에 수락했다.

-애니메이터로서 한창 커리어를 쌓아가던 중인 만큼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맞다.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제일 중요한 건 내가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학생들과 공유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었다. 후진양성은 늘 생각하던 꿈 중 하나였다. 심지어 내가 학생일 때도 누군가가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가르쳐줬으면 좋겠다는 갈증이 있었으니까. 학생들의 실력을 높이고 분위기를 활성화시켜서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 전반에 기여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동안 <빅풋 주니어>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그리고 이번에 <아담스 패밀리>까지 극장용 장편에 참여했는데 각기 다른 회사에서 작업을 했다. 애니메이팅의 다양한 스타일과 접근방식에 대해 실무적인 부분, 살아 있는 노하우를 전달하고 싶다.

-프로젝트에 따라 회사를 옮기는 게 해외에서는 자연스러운 분위기인가.

=애니메이터들의 70~80%는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젝트에 맞춰서 옮긴다고 보면 된다. 물론 디즈니, 픽사처럼 한 스튜디오에 오래 머무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그곳에서 제작하는 프로젝트가 대개 제일 규모가 크고 업계의 관심을 받는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거다. 지금 어떤 작품이 진행되는지 소문이 돌면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애니메이터들이 모이고 흩어지길 반복한다. 내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이후 소니픽처스에서 준비했던 작품은 <앵그리 버드2: 독수리 왕국의 침공>이었고, 마침 시네사이트에서 <아담스 패밀리>를 제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연스런 일이긴 하지만 이직이 쉬운 건 아니다. 그럼에도 <아담스 패밀리>는 어린 시절 내가 좋아했던 영화이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회사를 옮겨가면서까지 참여했다. 결과적으로는 즐거운 작업이었다.

-애니메이터의 활동 범위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는데 하나의 사례를 보여준 것 같다.

=애니메이터를 필요로 하는 곳은 많다. 처음 진입 장벽이 높아 보여서 그렇지 첫 일을 시작하고 경력을 쌓아가다 보면 업계간의 문은 생각보다 활짝 열려 있다. 다만 꼭 하고 싶은 조언은 규모가 전부가 아니라는 거다. 많은 이들이 디즈니, 픽사 등 대형 스튜디오를 꿈꾸지만 큰 업체가 정답은 아니다. 큰 업체에 다닌다고 반드시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원하는 회사를 가게 되어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실감이 찾아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디서 일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싶느냐를 스스로 질문하고 찾아 나서려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장편애니메이션 작업 이외에 <개조심>(2007)이나 <미러>(2012), <Goo-nz>(2016)처럼 개인적으로 만든 단편들을 보면 기발한 표현방식보다는 ‘재미있는 아이디어와 이야기’를 중요시 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선순위가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일단 콘텐츠는 재미있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 혼자 작업할 때와 집단 창작의 일부가 될 때는 입장이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예술적인 실험이나 새로운 방식의 탐구보다는 대중적인 소통쪽에 좀더 무게가 쏠려 있다고 느낀다.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 어떤 동작에 감동을 받는지에 대해 만들 때마다 피드백을 받고 반영하고자 한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학교 현장에 익숙해지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 SNS나 유튜브 등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단편작업들을 지속해나갈 계획이다. 아마도 짧고 위트가 살아 있는 코미디물이 되지 않을까 한다. 학생들에게 살아 있는 내용을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제작하는 감각을 유지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번 <아담스 패밀리>에서는 캐릭터 애니메이터를 맡았다. 애니메이션은 90년대 영화의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원작 만화의 느낌을 충실하게 재현한다는 인상이다.

=정확하다. 전반적으로 원작 카툰과 실사의 느낌을 오가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아담스 패밀리>는 캐릭터 디자인은 과장됐지만 기본적으로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중요했다. 비율로 따지면 자연스러운 것이 70%, 과장된 동작이 30% 정도다. 캐릭터마다 사이즈도 다르고 과장된 움직임이 필요한 지점도 있어서 초반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아담스 패밀리>와 유사한 장르의 콘텐츠들이 워낙에 많은지라 오해를 받기도 했다. 대표적인 게 소니에서 제작한 <몬스터 호텔>(2011)의 아류작이 아니냐는 이야기였다. 제작사도 그런 부분에 특히 신경을 써서 애니메이팅을 할 때도 소니 스타일과는 다르게 가줄 것을 주문했다. 가령 <몬스터 호텔>의 경우 하나의 포즈에서 다른 포즈로 바로 이동하는, 이른바 포스트 포즈가 특징적인 스타일인데 내가 소니 출신이다 보니 그런 방식으로 접근할까봐 걱정되었던 것 같다. 물론 한참 작업을 하다보면 까먹고 익숙한 애니메이팅 방식으로 그릴 때도 있다. (웃음) 그걸 바로잡아주는게 감독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참 충실한 연기자다. 작품마다 다른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혁신적인 연출과 독특한 작화는 인상적이다.

=자신의 아이디어와 표현에 고집을 갖는 건 기본이지만 때로 자기 것을 과감히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애니메이팅은 총감독의 구상을 구체적으로 구현해주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규모가 커질수록 이런 충돌이 잦아질 수 있다. 거꾸로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도 많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경우 애니메이터로서 생에 한번 만날 수 있을까 말까 한 프로젝트였다. 개인 단편에서 시도 가능한 아이디어들을 장편 프로세스에서 구현했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기본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리미티드 프레임 방식을 컨셉으로 해 역동적인 움직임을 구현했다. 의도적으로 프레임이 끊기면서 마치 스톱모션을 보는 것 같은 스타일리시한 연출이 가능해졌다. 거기에 코믹북의 컨셉을 그대로 옮겨 만화책의 집중선 같은 표현들을 직접 그리기도 했다. 물론 그냥 대충 슥슥 그어놓은 게 아니다. 얼굴에 생채기가 난 선 하나를 표현할 때도 각도와 길이, 개수 등 디테일한 수정 작업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만큼 배우는 것도 많았고 보람도 있었다.

-애니메이터를 꿈꾸는 이들에게 선배이자 교육자로서 조언을 한다면.

=처음부터 큰 프로젝트를 맡고 화려하게 시작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느리게 한 걸음씩 쌓아왔다. 중간에 꿈을 포기할까, 다른 길로 갈까 고민한 적도 많았다. 확실한 건 딱 하나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두드리다보면 결국 길이 열린다는 거다. 그걸 버텨내는 게 얼마나 힘든지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이 분야에서 100% 노력을 했다고 스스로 느낀다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 쉽지 않겠지만 작은 목표부터 차근차근 이뤄나가길 바란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