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10월 ‘경기 인디시네마 데이’ 관객과의 대화 현장을 가다
2019-11-14
글 : 이나경 (객원기자)
사진 : 오계옥
영화와 대화를 나누다
<니나 내나> 안상훈 감독, 배우 태인호·이가섭, 이동은 감독(왼쪽부터).

완연한 가을을 맞이한 10월 30일 수요일, 안산에 위치한 롯데시네마센트럴락에서 ‘경기 인디시네마 데이’가 열렸다. 경기 인디시네마 데이는 문화의 날로 지정된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에 열리는 기획전으로 ‘다양한 시선, 색다른 발견’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경기도가 주최하고 경기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여 국내 다양성영화를 지원하는 사업인 경기 인디시네마의 일환이다. 10월에는 <니나 내나>(2019), <판소리 복서>(2018), <열두 번째 용의자>(2019) 등 세편의 영화를 상영하고, 감독과 배우를 초청해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다. 영화에 관한 유쾌하면서도 진중한 대화가 이어졌던 현장을 전한다.

<니나 내나>, 상처의 치유에 대하여

“<니나 내나>는 가족들에게도 말하지 못할 사연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상처를 완전히 치유할 수는 없지만 좋은 기억을 더해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동은 감독) 10월 경기 인디시네마 데이의 포문을 연 작품은 행사 당일 개봉한 이동은 감독의 신작 <니나 내나>였다. <환절기>(2018), <당신의 부탁>(2017)을 연출한 감독의 세 번째 작품으로, 오래전 집을 떠난 엄마로부터 도착한 ‘보고 싶다’는 편지 한장에서 시작하는 삼 남매의 로드무비이자 가족드라마다. 관객과의 대화 진행을 맡은 <블라인드>(2011), <순수의 시대>(2015)의 안상훈 감독은 “감독님의 작품을 보면 찰리 채플린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명언이 떠오른다. 가족 중심 서사의 원근과 균형을 너무 잘 잡는 것 같다”라는 이야기로 관객과의 대화를 시작했다. 데뷔 전부터 혼자 시나리오를 써왔다는 이동은 감독은 “그 시기에 내 주변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족’이 주제가 되었다. 보편적인 가족의 의미를 확장해 완전하지는 않지만 각자의 사정이 있는 여러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답했다. 배우 태인호는 상대적으로 대사나 표현이 많지 않았던 경환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 “누나인 미정(장혜진)과 동생인 재윤(이가섭)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 노력했다. 내가 어떻게 행동하면 영화에서 삼 남매가 더 잘 어우러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했다”고 말했다. 배우 이가섭은 “막내 재윤으로 선배들과 연기 합을 맞출 수 있어 행복한 기억만 남아 있다. 분명 추운 계절에 촬영했는데 ‘따뜻했던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 정도로 이번 영화를 준비하며 힘든 지점이 없었다”며 훈훈했던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포스터 속 규림(김진영)의 티셔츠에 쓰인 글귀가 ‘노멀 데이’(normal day)인 이유를 묻는 말에 이동은 감독은 “의도적으로 고른 문구다. 이들이 겪은 하루는 평범해 보이기도 하지만 살면서 잊지 못할 하루인 것 같기도 해서 반어적으로 선택했다”고 답했다. 전작을 챙겨 보며 <니나 내나>를 기다렸다는 관객부터 어머니와 함께 영화를 관람해 뜻깊었다는 관객까지, 다양한 감상과 질문과 답변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판소리 복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하여

<판소리 복서> 정혁기 감독, 윤성은 평론가(왼쪽부터).

“단편인 <뎀프시롤: 참회록>(2014)에서 병구가 판소리 복싱을 완성하려는 이유는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다. <판소리 복서>로 넘어오면서는 과거에 대한 미안함이나 자신의 삶을 방치한 죄책감뿐 아니라 다시 링에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준 주변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서 판소리 복싱을 완성한다. 미안함에서 고마움으로 감정을 확장하며 장편을 완성했다.”(정혁기 감독) 두 번째 영화인 <판소리 복서> 상영 이후 윤성은 평론가의 진행으로 정혁기 감독과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장편화 과정에서 가장 염두에 둔 지점을 묻는 관객의 질문에 “가장 고민한 게 단편의 아이디어를 어떤 주제로 풀어갈지였다. 그러다가 ‘판소리’와 ‘복싱’ 모두 한국 사회에서는 낡은 것으로 치부되고 잊히거나 사라져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펀치드렁크(복싱선수와 같이 뇌에 큰 손상을 입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뇌세포손상증.-편집자)로 자신을 잃어가는 병구(엄태구) 곁에 필름사진, 재개발, 유기견 등을 등장시키며 자연스레 이 시대에서 밀려나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게 되었다”고 했다. “감독님이 가진 유머 코드가 굉장히 독특하다. 영화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대사가 반복되는 이유가 궁금하다”는 윤성은 평론가의 질문에 “유머로 활용한 게 맞는데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분들도 많더라. (웃음) 등장인물은 진중하게 연기해야 관객이 유머를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배우들에게도 그렇게 부탁했다. 우리는 보고 웃을 수도 있지만, 영화 속 병구나 지연(이설)은 그것만 보고 달리는 이들인데 웃을 수 없지 않나. 양가적인 감정이 공존하게 될 텐데 관객이 그대로 느끼기를 바랐다”고 답했다. 또한 “엄태구 배우는 <밀정>(2016), <택시운전사>(2017)로 대중에게 알려진 것과 다르게 어눌하지만 소신을 굽히지 않는 병구의 모습과 닮았다. 이혜리 배우는 실제로도 유쾌해서 주변을 기분 좋게 만드는 힘이 있다. 우리 영화는 코미디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동시에 비극을 그리기도 하는데 이혜리 배우가 전체적으로 밝은 에너지의 축을 담당해줬다”며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가진 배우 엄태구와 특유의 에너지로 영화의 톤 앤드 매너를 조성해준 배우 이혜리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열두 번째 용의자>, 피폐한 사회의 낭만에 대하여

<열두 번째 용의자> 이용철 평론가, 고명성 감독, 배우 김희상·나도율(왼쪽부터).

“한정된 공간에서 인물이 중심이 되는 영화다 보니 배우들의 역량이 정말 중요한데, 모두가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해줬다. 시드니 루멧의 <12명의 성난 사람들>(1957)이 모티브가 되었다.”(고명성 감독) 마지막으로 <열두 번째 용의자> 상영 후 이용철 평론가의 진행으로 고명성 감독, 배우 김희상·나도율이 참석한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영화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늦가을, 명동 ‘오리엔타르 다방’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전개된다. 수사관 김기채(김상경)를 주축으로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회상을 통해 어느 시인 살인사건의 진실 너머에 존재하고 있는 한국 근대사의 오랜 문제들과 마주한다. “<사요나라 안녕 짜이쩬>(2009)에서는 재일조선인 북송사업을 다뤘다. 과거사를 소재로 한 작품을 지속해서 만드는 이유가 궁금하다”는 이용철 평론가의 질문에 고명성 감독은 “예전부터 역사에 관심이 깊었다. 화가 이중섭의 모습을 김희상 배우가 맡은 이기섭이라는 인물에 투영했다.

신사실파 백영수 화백에게 50년대 명동과 예술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피폐한 사회 분위기와 예술인들이 가지고 있는 낭만이 대조되어 이질감이 들기도 하지만, 이런 부분을 영화에 녹이면 흥미로울 것 같았다”고 답했다. “본인의 대사나 행동이 없더라도 각자의 위치를 지키고 있어야 했던, 특이한 영화 현장이었을 것 같다”는 이용철 평론가의 말에 배우 김희상은 “말씀하신 것처럼 다방 세트 안에 내 신이 없더라도 모든 배우가 각자의 연기를 했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정서가 현장에 계속 깔려 있었다. 내 위치를 지키며 선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몰입도를 높여줬다”고 말했다. 배우 나도율 역시 비슷한 답변을 전하며 “내가 맡은 혁수 역은 타의에 의해 다방에 들어온 유일한 인물이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시대에 동떨어진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오디션 합격 이후 틈만 나면 영화사에 가서 여러 가지를 물었다. 또한 당대의 사진과 영상을 많이 접하며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그려내기 위한 조사를 했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김상경 배우의 캐스팅 비화, 롱테이크 기법의 활용, 제한된 공간에서 진행된 촬영의 장단점, 결말과 관련한 궁금증 등을 풀어가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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