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니나 내나> 이동은 감독, "단점이 있더라도 색깔 있고 울퉁불퉁한 영화가 좋다"
2019-11-21
글 : 이주현
사진 : 백종헌

동글동글한 모양새가 고만고만해 보이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제각각인 조약돌 같은 인물들. <니나 내나>는 그 조약돌 같은 인물들이 복닥복닥 아웅다웅 부딪히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진주와 부산에 사는 미정(장혜진), 경환(태인호), 재윤(이가섭) 삼남매가 오래전 집을 떠난 엄마를 만나러 파주로 길을 떠나는 로드무비이자 가족영화. 전작인 <환절기>(2018), <당신의 부탁>(2018)과 마찬가지로 <니나 내나> 또한 한 가족의 사정을 들여다보는데, 그 사정의 중앙엔 상실과 애도가 자리잡고 있다. 이동은 감독은 복잡한 감정과 사건을 요란하게 그리지 않으면서 인물들의 진짜 삶에 다가가려 한다. 지극히 현실적인 가족간의 대화와 행동은 공감과 위로를 안긴다. 전작들과 비교해 더 사실적인 생활의 온기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어느덧 세 번째 장편영화를 내놓은 이동은 감독을 만났다.

-<니나 내나>까지 3편의 영화를 개봉했다. 아쉬움과 후련함 등의 감정이 교차할 것 같은데.

=무의식중에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개봉 즈음엔 이유도 없이 새벽 3, 4시에 잠에서 깬다. 아무래도 그 영화가 잘됐냐 안됐냐는 스코어로 판단되니까 신경이 쓰인다. 같이 작업했던 배우와 스탭들에게도 작품이 필모그래피로 남는데, 스코어가 좋은 영화는 그들의 필모그래피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다행히 이번 영화가 영화진흥위원회, 경기영상위원회, 성남문화재단에서 지원을 받아 제작해서 스코어에 대한 부담이 크진 않다. 그래도 영화가 잘되면 좋을 텐데 하는 마음은 늘 있다.

-2014년에 <니나 내나>의 시나리오를 쓴 것으로 안다. 어떻게 구상한 이야기인가.

=원래는 다른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그러다 2014년 4월에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이해 불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영역에서. 커다란 사고가 아니라 미스터리한 부분이 너무나 많은 사건처럼 느껴졌다.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통스러웠다. 그러다 2014년 여름에 국가적 재난을 겪은 분들의 심리치유 일을 하는 전문가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분을 만나면서 기억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그 선생님이 하는 일은 하루하루 상담자들에게 일상의 미션을 확인시키고 지키도록 하는 거였다. 이를테면 “내일 누구와 만날 일 있으면 꼭 만나세요. 고지서 내세요. 우유 사세요” 그렇게 하루하루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행하는 것에 집중하도록 하는 일이다. 선생님의 얘기가, 과거엔 큰 상처를 입은 분이 있으면 과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해서 다시 스토리텔링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야기할 수 있는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는 얘기도 있듯이. 그런데 이번 사건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일 수도 있지만,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건 불가능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고 하더라. 그 생각으로부터 지금과 같은 방식의 심리치유를 시작한 거라고. 하루하루 살아내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매일의 미션을 주고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 데 더 집중한다고. 이왕이면 좋은 기억을 만들 수 있도록, 그 속에서 살아갈 힘을 찾게 도와준다는 거였다. 그 이야기에 많이 공감했다. 남겨진 사람들이 과거의 상처와 흉터 위에 새로운 기억, 좋은 기억을 만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전 작품들이 애도의 과정을 거치는 사람의 이야기였다면, 이번엔 애도의 과정을 거친 이후 기억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얘기한 것처럼 모든 작품의 이야기가 가족의 상실에서부터 시작된다. <환절기>에선 미경(배종옥)이 아들을 잃고, <당신의 부탁>에선 효진(임수정)이 남편을 잃고, <니나 내나>에선 미정, 경환, 재윤 삼남매가 막냇동생과 엄마를 잃는다.

=얘기한 것처럼 이번엔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고 싶었다. <니나 내나>에서 미정의 엄마는 갑작스럽게 아들을 잃고 자식의 목숨값(보험금)을 들고 집을 나가는데, 그건 원망스런 남편에게 아들의 목숨값을 맡길 수가 없어서, 자신이 그것을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다. 또 아들의 이름을 자신의 가게 이름으로 쓰는데, 그것 또한 잊지 않겠다는 기억의 의미와 맞닿아 있다.

-둘째 경환의 직업이 사진사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가.

=사진을 찍는 일은 기록하고 남기는 것이니까. 그리고 가족 구성원 중에서 어느 정도 가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도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경환이라 생각했다. 전체적인 스토리에서 묻어나는 정서가 노스탤지어이길 바랐다. 잊혀가는 것들에 대한 노스탤지어.

-삼남매 중에서도 미정을 중심 인물로 잡았다.

=처음엔 가족 모두의 이야기로, 병렬적으로 이야기를 찍었다. 한 가족의 군상을 다 보여주고 싶어서. 그런데 여러 인물의 이야기로 흘러가니까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의견이 있어 편집 과정에서 미정을 중심에 두는 방향으로 수정했다. 원래 여러 인물들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한다. ‘한편 누구는~’ 그렇게 이야기가 흘러가는 걸 좋아한다.

-이전 작품과 비교하면 <니나 내나>는 좀더 여유 있고 유머 있고 영화의 톤도 밝아졌다는 느낌이다.

=받아들이는 분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어떤 분들은 너무 담담하다고 그런다. 장혜진 배우 역시 현장에선 분위기도 좋고 애드리브도 많아서 영화가 좀더 밝고 웃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차분하고 담담하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내가 관심을 가지는 인물과 이야기가 평범한 듯 보이는데 들여다보면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그런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차분하지만 그래도 <환절기>와 비교하면 대사도 훨씬 많아졌고, 부산 사투리 때문인지 재미있는 요소도 많다.

=<환절기>는 대사가 극히 적긴 했다. 그런데 후반 작업 하는 분들도 영화가 차분하다고 해서 ‘아, 영화가 정말 차분한가보다’ 생각했다. (웃음) 최근에 <환절기> 상영회가 있었다. <환절기>가 인물의 고통을 멀찍이서 떨어져 보는 영화고, 고통받고 있는 주인공도 힘들다고 소리치지 않으니까, 한 관객이 인물의 고통이 와닿지 않았다는 얘길 하더라. “제가 연출이 부족한 탓입니다”라고 했지만 한편으론 우리가 사는 지금 세상이 고통스럽다고 소리를 질러야 ‘아, 저 사람이 힘든가보구나’ 하고 알게 되는 사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시위하면 알아주지 않고 극단적으로 고공 위에 올라가거나 해야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게 아닌가 싶었다. 영화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는 영화에서 인물의 고통을 충분히 표현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수치와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수치는 다른 것 같다. 사람들과의 소통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고통을 전시하면 안된다는 생각도 있고. 그 사이에서 고민을 한다.

-지금까지의 영화가 모두 캐릭터 드라마라 할 수 있는데, 인물과 얼마나 거리를 둘 것인가는 늘 중요한 과제겠다.

=이번엔 인물에 많이 다가가려 했다. 굳이 카메라와 인물의 거리로 따지자면 <니나 내나>는 <환절기>와 <당신의 부탁>의 중간 정도인 것 같다. 여러명의 인물이 나오다 보니 한명에 쑥 들어가기보다는 골고루 밸런스를 맞추려 한 것도 있다. 또 이우현 촬영감독이 나만큼이나 노골적인 걸 싫어하는 분이다. <어른도감>(2017)이 첫 영화고 <니나 내나>가 두 번째인 촬영감독인데 나와 취향이 비슷했다.

-클로즈업숏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가.

=보는 건 좋은데 내가 찍을 땐 다른 문제인 거 같다. 매력적인 배우들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면 흡인력이 생긴다. 쉽게 말해 속게 된다. 평범한 얘기도 쉽게 감정적으로 동화되게 만든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 땐 더 경계하게 되는 것 같다. 아껴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쉽게 쓰면 못 배운 티 내는 거 같기도 하고. (웃음) 또 내 딴에는 클로즈업숏을 많이 썼다고 생각하는데 받아들이는 분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꿈을 많이 꾼다. <환절기> 때도 배종옥 선배님이 꿈에 나와서 “왜 이렇게 떨어져 찍냐” 그랬고. 최근에 단편 작업을 하면서도 꿈을 꿨는데 어느 스탭이 꿈에서 “왜 영화에 클로즈업숏이 하나도 없냐” 그랬다. (웃음) 그게 콤플렉스인가보다.

-<니나 내나>의 특징 중 하나는 지역색이 두드러진다는 거다. 진주와 부산에 사는 삼남매의 부산 사투리를 통해 그 지역색이 부각된다.

=지금까지 서울이 배경인 영화가 없었다. 내 영화의 인물들은 서울에서 치열하게 사는 대도시 사람들은 아니다. 생활의 속도가 중소도시와 잘 어울릴 거 같아서 그런 선택을 했다. 나 역시 서울이 고향이 아니어서 인물과 배경을 생각할 때 늘 서울이 디폴트값은 아니었던 것 같다. 굳이 진주를 택한 건 경남에서도 진주는 울산과 창원 같은 도시와 비교하면 역사가 오래된 도시다. 좋게 말하면 전통적이고 다르게 말하면 보수적이다. 그런 도시의 색깔이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색과도 맞을 것 같았다. 또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한반도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 부산에서 파주까지 이동하는 이야기가 됐다.

-고향이 부산인 만큼 부산 사투리와 관련해선 확고한 생각이 있었을 것 같다.

=TV나 영화를 보면 억센 부산 사투리가 많은데, 그런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대체로 부산 배경의 영화는 마초적이거나 선 굵은 액션영화가 많다. 그런데 부산 사람이 다 외향적이고 억센 것도 아니다. 내성적이고 담담한 부산 영화가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투리 역시 마찬가지다. 세대에 따라 사투리의 세기도 다른데, 모두가 로버트 할리처럼 사투리를 쓰지는 않는다. (웃음) 실제 부산 사람들이 평범하게 자연스럽게 쓰는 말을 담고 싶었다.

-장혜진, 태인호, 이가섭 배우 모두 부산 출신인데, 캐스팅 이야기도 들려준다면.

=장혜진 선배는 전에 단편 작업도 같이했고 원래 알던 사이인 데다 주변에서 추천도 많이 받았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미정 역에 세분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고 최종 후보는 두분이었다. 두분의 색깔이 많이 달랐다. 장혜진 배우는 밝고 솔직한 모습이라면, 다른 분은 슬픔과 아픔을 연기하는게 익숙한, 좀더 일반적 의미에서 엄마 캐릭터에 어울리는 분이었다. 배우에 따라 캐릭터는 달라졌을 거라 생각하는데, 결과적으로 장혜진 선배가 연기함으로써 전형적인 맏딸의 모습보다는 맏딸이고 싶지만 귀여운 구석이 있는 막내딸 같은 캐릭터가 됐다. 태인호씨는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과 실제 모습이 다른 사람이었다. 경환처럼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다. 컴퓨터 잘 못 다루고 낚시 좋아하고 커피 내리는 거 좋아하는. 경환과 굉장히 닮은 사람이다. 이가섭씨는 <폭력의 씨앗>(2017)에서 처음 봤고, 어물어물 말하는 것 같은데 딕션이 정확해서 연기가 참 재밌다고 생각했던 배우다. 찾아보니 또 부산이 고향이더라.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버전과 개봉 버전이 조금 차이가 난다. 미정과 엄마의 관계를 보여주는 판타지 장면이 일부 추가됐다.

=미정이 휴게소에서 춤추는 엄마를 보는 장면도 그렇고, 미정과 엄마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꼭 필요하다 생각한 장면들이 있었다. 그런데 편집 과정에서 이런 장면이 서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다보니 툭 튀어나오는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백만, 천만을 목표로 삼은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단점이 있더라도 오히려 단점이 고유의 색깔이 될 수 있었으면 했다. 리스크 없는 평범하고 동그란 영화도 좋지만, 단점이 있더라도 색깔 있고 울퉁불퉁한 영화를 더 좋아한다.

-앞으로도 가족이라는 주제를 더 이야기하고 싶나, 아니면 이제 충분한 것 같나.

=어쨌든 내가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실 좋아하는 영화는 B무비이고 SF영화다. <환절기> 이전에 쓴 시나리오도 그런 작품들이 많았다. 그런데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과 내가 가진 건 다르더라. 내게 없는 것들을 하려고 욕심낸 시나리오는 반응이 좋지 않았다. 대신 내게 맞닿아 있는 이야기를 하면 반응이 좋았다. 사람들은 무엇이 그 사람의 진짜 이야기인지 귀신같이 아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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