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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 업!>, 의자가 필요해
2019-11-26
글 : 최지은 (작가 <이런 얘기 하지 말까?>)

예능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전성기가 지나도 한참 지난 시대, KBS 코미디는 어디로 가야 할까?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을 통해 스탠드업 코미디를 즐기는 시청자가 늘고 있는 요즘, 2부작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스탠드 업!>은 그 새로운 방향을 탐색한 시도다. 공연장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코미디언들을 섭외해 장애인과 이방인의 시선에서 질문을 던지며 웃음을 끌어냈다는 면에서, 사회적 약자와 타자 비하 및 배제에 익숙했던 기존 한국 코미디와 다른 가능성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코미디언 8명 중 여성은 2명에 불과하고, 전반적으로 ‘전형적인 한국 아줌마’에 대한 고정관념에 기댄 농담이 유독 많다는 점은 아쉽다. 그중 유일하게 아줌마 당사자인 ‘67년생 박미선’의 무대는 그래서 더욱 강력한 순간을 남겼다. “우리 아줌마들에겐 의자가 필요하다”라며 지하철에서 똑같은 교복 입은 남학생들의 다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앉으려던 중년 여성을 묘사하던 그의 이야기는 ‘눈치 없고 우악스러운 아줌마’에 관한 자조적 농담으로 흐르는 듯하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 직구로 날아왔다. “근데 여성 예능인도 마찬가지예요. 이경규, 강호동, 신동엽, 김구라, 이렇게 쭉 앉아 있으면요 우리는 조금만 자리가 나거나 빈자리가 있으면 비집고 들어가 앉아야 됩니다. 그러다 보면 김구라 다리 사이에도 들어가고 그러는 거예요.” 그는 조금도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덧붙였다. “구라야, 미안하다.” 예능이라는 전쟁터에서 맨몸으로 33년을 버텨온 여성의 한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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