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노>와 <필름2.0>을 지나 <씨네21>에 들어오면서 무려 13년이나 한 회사에 몸담게 될 줄은 몰랐다. <서유기: 모험의 시작> 개봉 당시 2015년 990호 주성치 특집을 하며 첫 번째 편집장 업무를 시작하여, 지난 1232호 홍콩영화 특집을 하며 우려를 무릅쓰고 표지에 ‘光復香港 時代革命’(광복홍콩 시대혁명)이란 문구를 기어이 박아넣은 것으로 업무를 마무리하게 되니 묘한 기분이 든다.
비겁한 변명이지만 SNS를 안 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한데, 몇달 전 평정심을 잃고 당시의 고충을 담아 마치 ‘새벽 SNS’를 하듯 불평, 불만 가득 담아 지극히 개인적인 에디토리얼을 쓴 적 있다. 지금에 와서 후회하거나 잘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떤 선을 넘게 된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전이나 후나 안팎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었고 우울증은 더 심해졌고 오히려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는 장면들이 늘어났다.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밤새 마지막 에디토리얼을 쓰고 있자니, 지난 몇달간 후회하고 털어내면서 쓰고 싶은 여러 말들이 있지만, 이내 머릿속을 맴돌다 쉬이 사라진다. <메기>의 대사처럼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덩이를 더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 나오는 일”이다. 그걸 모르고 헛된 생명연장의 꿈을 꾸었던 것 같다. 담아둔 얘기는 좀더 시간이 지나야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1993)를 보면서 다시금 걸작이라 느낀 순간이 있었다. ‘한’으로 가득한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흥’이 넘치는 장면이 바로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롱테이크 장면이다. 워낙 유명한 장면이라 기억 못할 사람은 없겠지만, 이번에 다시 보니 그 장면이 바로 주인공들이 함께 다니던 약장수들로부터 ‘해고’당한 다음날 장면이었다. 앞서 판소리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아버지 유봉(김명곤)과 송화(오정해), 동호(김규철)는 약장수 일행과 함께 전국 장터를 돌며 약도 팔고 소리도 하며 생계를 유지했었다. 그러다 좁은 여관방에서도 여전히 소리 연습을 하다가 약장수 일행과 갈등을 빚었던 것. 그렇게 굽디굽은 길을 돌아 나오며 점잖게 시작하여 흥겹게 춤사위를 펼치는 장면이 어떤 정서로 탄생한 것인지 새삼 알게 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는 날이, 오랫동안 뵙지 못한 임권택 감독님을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나의 첫 번째 편집장이기도 한 정성일 감독이 연출한, 임권택 감독의 무려 102번째 영화 촬영현장을 함께한 <녹차의 중력>을 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