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정성일은 “감독의 시간은 영화를 찍는 시간과 기다리는 시간, 둘로 나뉜다”고 말했다. <녹차의 중력>은 임권택 감독이 102번째 영화 <화장>(2014)의 촬영을 앞두고 기다리는 시간을 담아낸 영화다. <백두 번째 구름>(2018)이 <화장>의 촬영 현장에서 거장의 비밀을 따라가는 영화라면 <녹차의 중력>은 영화인과 자연인의 틈새에 고인 임권택의 시간을 담아낸 기록에 가깝다. 평론가 정성일에게 임권택은 운명이고 감독 정성일에게 임권택은 배우고 싶은 스승처럼 보인다. 한 그루 나무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선 임권택의 ‘지금’을 숏마다 긁어모아 꾹꾹 눌러담은 정성일의 손길에는 존경과 헌사, 애정이 묻어난다. 동시에 감독으로서 정성일은 숏 사이에 놓인 빈틈, 얼핏 의미 없어 보이는 시간에 집중한다. ‘영화’라는 개념에 대한 열정적인 질문과 치열한 반응의 집합. 그리하여 임권택의 시간은 마침내 정성일의 영화가 된다. 고요하게 웅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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