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미안해요, 리키> 개인이 인간으로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점차 무력해지는 광경
2019-12-18
글 : 김소미

평생 건설 현장에서 일해온 리키(크리스 히친)는 좀더 편안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원한다. 그가 이번에 택한 직업은 택배원이다. 임시 계약을 맺어 근무를 시작한 그는 명목상으로는 자기 회사의 사장님이다. 택배 기사가 되려면 우선 개인 차량이 필요한데, 회사가 제공하는 차량을 이용하자니 대여비 지출이 너무 크고 중고 밴을 사자니 수리비 부담이 되레 비효율적일 것 같아 고민스럽다. 결국 리키는 직업 간병인인 아내 애비(데비 허니우드)의 차를 팔아 새 차 구입에 필요한 보증금을 마련하기로 한다. 그는 이제 매달 할부금을 갚기 위해 주 6일 매일 14시간씩 일해야하고, 자기 시간을 써서라도 환자를 성심껏 돌보려 하는 애비에겐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 집 저 집 이동해야 하는 수고가 추가된다.

기업간 경쟁 아래 엄청난 양의 노동과 위험부담을 홀로 떠안아야 하는 개인이 인간으로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점차 무력해지는 광경. 점점 보수화되고 있는 영국 사회에서 가시화되지 않는 노동계급의 현실을 꼬집는 <미안해요, 리키>는 그래서 켄 로치 감독의 변덕스러운 은퇴 선언을 무색하게 할 만큼 시의적절하다. 켄 로치의 사회파 리얼리즘은 날카로운 현실 묘사 가운데 가족 그리고 멜로드라마 서사의 정서적 호소력을 동원해 작품의 비극과 주제를 놀랍도록 선명하게 아로새긴다. 궁지에 내몰린 인간의 절박하고 혼란스러운 상태를 드러내는 장면들이 강력하게 눈물샘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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