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정성일이 드디어 임권택 감독의 백두 번째 영화 <화장>(2014)의 촬영 현장에 당도했다. 임권택의 세계에 다가가고 싶은 한 사람의 영화인으로서 그는 거장의 연출 비밀을 가만히 지켜본다. 하지만 감독으로서 정성일이 취하는 길은 임권택의 현장을 고스란히 담는다거나 조용히 바라보기만 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백두 번째 구름>에서는 적어도 네개의 세계가 충돌한다. 우선 문자로 이뤄진 김훈 작가의 소설 <화장>이 있고, 이를 장면화시키는 임권택의 영화 <화장>이 있다. 둘 사이 은밀한 변모와 팽팽한 긴장은 이야기가 영화로 탈바꿈하는 신비를 품고 있다. 그리고 영화의 바깥, 이 과정을 모니터 앞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감독 임권택이 있고, 또 그런 임권택을 뒤에서 가만히 바라보는 정성일의 카메라가 있다. 문자와 영상, 영화의 안과 밖으로 이뤄진 네개의 세계는 때때로 연결되었다가 충돌하고 멀어졌다가 교차하며 불꽃을 만들어나간다. 불꽃의 이름은 곧 영화다. 감독 정성일은 거장의 백두 번째 작품이 탄생하는 현장의 여정을 헌신적으로 담아낸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영화라는 기적을 중심으로 나누는 치열한 대화다. <천당의 밤과 안개>(2017)에서부터 시작된 영화 현장에 대한 탐색은 다큐멘터리와 에세이, 전위영화의 그 어디쯤에서 영화의 지평을 확장시키기 위한 고군분투를 멈추지 않는다. 특히 마지막 장면이 선사하는 예상치 못한 감흥은 오래도록 기억될 만하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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