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배우 염혜란 - 의미와 재미를 모두 잡고 시대의 흐름을 타다
2020-03-12
글 : 이주현
사진 : 백종헌

이것이 드라마라면, 인터뷰에 임하는 염혜란의 캐릭터는 이런 지문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들뜨지 않고 차분하게. 말이나 행동을 과장하지 않고. 웃을 땐 시원하게 말할 땐 솔직하게. 배우 염혜란은 약점을 찾아보기 힘든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연기를 하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화려한 언변으로 상대를 홀리지 않지만 정직한 생각과 말이 주는 힘은 컸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염혜란이 연기한 옹산의 고학력 이혼 전문 변호사 홍자영의 말도 그랬다. 홍자영은 결혼한 여성들의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어록을 남겼고, 누구에게도 아부하지 않고 정확하게 사리 분별하는 모습으로 스스로 멋진 여자임을 증명했다. 염혜란은 <동백꽃 필 무렵>의 홍자영으로 올해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전부터 그를 눈여겨본 관객이라면 그가 영화와 드라마에 모습을 비추기 시작한 초반부터 염혜란이 남다른 떡잎을 지닌 배우였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올해는 영화에서의 활약도 특별했는데, <증인> <미성년> <걸캅스> <82년생 김지영> 등 여러 의미로 화제가 된 작품들엔 어김없이 염혜란이 출연했다. 올해 가장 뚜렷한 인상을 남긴 염혜란을 만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 대한 이야기부터 연극배우로 활동하던 시절의 이야기까지, 긴 대화를 나눴다.

-한해의 마무리를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으로 멋지게 장식했다. 올해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기분이 어떤가.

=이럴 땐 배우가 참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연기를 한 것밖에 없는데 사람들을 만나면 뭐라도 하나 더 챙겨주려 한다. 이게 무슨 덕인지. 내 일을 했을 뿐인데 이런 배려를 받다니. 이게 다 좋은 작품을 만난 덕이고 캐릭터 덕이라는 생각이 들고,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좀 허전하지 않을까 싶다.

-<동백꽃 필 무렵> 촬영이 끝나고 단체로 강원도 여행을 다녀왔더라.

=일종의 포상휴가로 2박3일 강원도 평창 엠티를 다녀왔다. 주위에선 하와이라도 가야 하는 거 아니냐 했지만…. (웃음) 올해의 목표가 포상휴가를 가는거였다.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시청률이 잘 나온 작품이 많았다. <도깨비>도 시청률 10%가 넘어서 포상휴가를 보내줬는데 나는 못 갔다. 드라마 <무법 변호사>와 <라이브>도 포상휴가가 있었다. 나는 또 못 갔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포상휴가를 계속 놓쳤다. 아무래도 포상휴가 운발이 없는 것 같다. (웃음)

-작품이 끝나고 나면 어떻게 캐릭터를 정리하나.

=정리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편이다. 연말이 되면 꼭 한해를 돌아봐야 할 것 같아서 부담스러운 것처럼, 정리하는 일이 압박감으로 다가온다. <동백꽃 필 무렵>을 끝내고 처음으로 많은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를 하니 작품을 복기하게 되면서 내가 어떻게 연기했는지 정리하는 느낌이 들더라.

-<동백꽃 필 무렵>의 정장을 즐겨 입는 전문직 여성 홍자영은 드라마 <라이프>에서의 모습과 연결되지만, 기존에 주로 맡아온 서민적 캐릭터와는 결이 달랐다.

=“염혜란이 홍자영을 연기한다고? 변호사를 연기한다고?” 날 아는 사람들이 안 어울린다고 하면 어떡하지 싶어 처음엔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생각해보면 그런 생각 자체가 스스로 세운 벽이고 한계였다. 4대 보험 되는 직업을 가진 캐릭터를 맡은 지 얼마 안된다. 그런데 나는 실제로 4년제 대학을 나왔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연기를 시작했다. 내가 왜 4대 보험 되는 직업을 못 가지겠나. 그런데도 기존에 해온 역할이 지금과는 달랐기 때문에 스스로 한계를 지었다. 연극에선 소외된 사람들, 많이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주로 했으니까. 안 어울리면 어쩌나 혼자 걱정하고 두려워한 게 웃기더라. 한계를 뛰어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홍자영을 연기한 뒤 자신감이 생겼다.

-극 초반, 홍자영이 어떤 인물인지 감을 잡기 전까지는 고학력의 얼음장 같은 여자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홍자영은 훨씬 더 입체적인 인물이었다.

=임상춘 작가님이 워낙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그려 놓으셨다. 전형적인 얼음장 캐릭터면 밥도 안 먹고 얘기할 것 같은데, 자영은 밥도 야무지게 먹는다. 지문에도 써 있다. ‘야무지게 상추쌈을 싸먹는다.’ 그렇게 상추쌈을 먹으면서 이혼 얘기를 하는 여자다. 배가 고프면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싶으면 화장실에 가는 여자다. 도식적이고 전형적인 걸크러시 캐릭터에서 벗어나 있는 느낌이었다. 침착하게, 객관적으로, 담백하게, 잠잠한 카리스마. 대본의 지문이 이런 식이었는데, 흥분되는 상황에서도 미간 하나 찌푸리지 않고 할 얘기 다 하는 자영이 멋있고 매력적이었다.

-능력과 권력을 가진 홍자영과 권력 지향적이지만 무능력한 노규태의 부부 관계도 흥미로웠다. 노규태를 연기한 오정세 배우와는 첫 작업이었는데 두분의 케미스트리가 상당했다.

=우선 자영이 규태를 좋아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변호사는 좋은 얘기를 듣는 사람이 아니더라. 안 좋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 억울한 사람들, 싸워서 이겨야만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이다. 그런데 규태를 만나면 편하다. 우스꽝스럽고 짜증나는 모습은 있겠지만 충분히 규태를 사랑할 이유가 있다고 봤다. 오히려 규태는 왜 자영을 만날까, 저렇게 혼나면서 왜 옆에 있을까 궁금했다. (웃음) 오정세 배우에겐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직도 나는 TV의 메커니즘이 낯설다. 앞 장면과 뒷 장면의 세팅이 동일해야 하는데 아직도 연기의 ‘연결’을 몰라서 헤맨다. 예전 같았으면 많이 혼났다고 하더라. 요즘은 드라마 현장이 많이 바뀐 거라고 한다. 연극하는 분들이 드라마로 많이 넘어와서 그런지 배우에게 많이 맞춰주는 것 같다. 오정세 배우는 편하게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는 동료였다. 포용적이고 합이 잘 맞는 파트너를 만났을 때 연기가 훨씬 좋아진다는 건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함께 신을 만들어가는 재미가 큰 파트너였다.

-배우로서 마음껏 표현하고 까불어도 좋은 캐릭터가 노규태라면 홍자영은 그 반대의 캐릭터다. 두 인물의 밸런스를 고려하며 절제하는 연기가 필요했겠다.

=전에는 규태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재미를 느꼈다. <도깨비>에 출연할 때도 의상을 동대문에서 구해 갔다. 소품도 직접 만들어서 갔다. “의상에 호피 무늬가 들어가면 좋을 것 같은데 이거랑 이걸 매치하면 어떨까요?” “양말은 이게 어떨까요?” 그렇게 사소한 것까지 준비하는 걸 워낙 좋아한다. 그런데 홍자영은 그렇게 준비할 영역이 없는 캐릭터다. 준비해준 옷 그대로 입으면 되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대사하고 연기하면 되는 캐릭터. 사소한 소품까지 준비하는 데서 오는 재미는 없었지만, 무언가 더 보태지 않고 절제했을 때의 내 모습이 새로웠다. 잔망스러운 규태와 똑 떨어지는 자영 캐릭터의 대비가 큰데, 캐릭터간의 조화를 생각하는 연기도 어렵지만 재밌었다. 하지만 모든 어려움은 좋은 대본이 해결해줬다.

-<동백꽃 필 무렵>의 거의 모든 캐릭터가 배우로서 탐나지 않을까 싶은데,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연기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여자 강하늘? (웃음) 황용식 같은 남자는 현실에 없는 판타지 캐릭터라 생각하는데, 그게 여자면 어떨까 궁금하다. 맹목적 사랑의 새로운 형태에 도전하는 느낌이면 좋을 것 같다. 남들이 보기엔 가진 게 적어 보이지만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무한정 큰 사람이 온 마음으로 누군가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그외에도 탐나는 캐릭터가 많은데, 향미도 해보고 싶고 여자 노규태도 재밌을 것 같다.

-<동백꽃 필 무렵>의 임상춘 작가, <라이프>의 이수연 작가, <디어 마이 프렌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라이브>의 노희경 작가 등 좋은 작가들을 만나면서 한 단계 성장했다는 생각도 드나.

=부끄럽지만 연극만 할 때는 드라마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쪽대본이라든지, 조연의 비애라든지, 좋지 않은 얘기를 듣다 보니 편견이 생겼다. 그런데 이들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드라마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따로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좋은 작가님들의 글을 보면 캐릭터 하나하나가 살아 있다. 이들의 글을 보면 내가 잘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단편적으로 활자에만 의존해 연기했다간 큰일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좋은 작품을 만나면 기분 좋은 긴장을 하게 된다. 잘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요즘은 주변 사람들이 걱정한다. 이제 웬만한 글은 눈에도 안 찰 거라고.(웃음)

-노희경 작가와는 연이어 세 작품을 함께했는데, 어떻게 인연이 시작되었나.

=나문희 선생님과 <잘 자요 엄마>라는 2인극을 했었다. 그때 나문희 선생님과 친분이 있던 노희경 작가님이 연극을 보러 오셨다. 당시 <디어 마이 프렌즈>를 구상하고 계셨고, 연극하는 나를 보고 드라마에 어울릴 만한 캐릭터를 떠올리신 모양이다.

-첫 드라마를 노희경 작가의 작품에 오디션도 없이 참여한 셈이다.

=운이 좋았다. 작가님이나 PD님이 배우의 전작을 보고 오디션 없이 드라마에 캐스팅하는 경우가 배우로선 가장 좋은 케이스라 하더라. 이렇게 말하면 재미없지만, 거의 모든 작품이 그랬다. 오디션을 진짜 못 보는 배우라 오디션을 통해 출연한 작품이 없다. 오디션 본 건 다 떨어졌다. (웃음)

-드라마 <라이프>에서 배우 조승우와 손발을 맞춘 강경아 팀장도 염혜란을 주목하게 만든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강 팀장 역시 너무 사랑하는 캐릭터다. 이 캐릭터가 없었으면 홍자영을 연기하지 못했을 것 같다. <라이프> 때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걸 잘해낼 수 있을까. 홍자영보다는 인간적인 면이 많이 드러나는 캐릭터지만, 강 팀장 역시 기존의 역할과는 결이 달랐다. 강 팀장은 다시 없을 비서 캐릭터인데, 이수연 작가님은 강경아에게 비서라는 이름을 붙이기 싫었다고 하더라. 작가님이 인물을 대하는 태도가 멋있었고, 나 역시 캐릭터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의미와 재미를 모두 잡은 작품들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다. 올해는 <미성년> <걸캅스> <82년생 김지영> <동백꽃 필 무렵>까지 여성의 서사가 중심인 작품에 다수 출연했다.

=남성 중심의 영화에선 내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정말 예쁘거나 강렬하지도 않고, 엄마 역을 하기엔 나이도 적고. 기능적으로 쓰이는 캐릭터에는 재미를 못 느끼기도 한다. 요즘 추세가 바뀌기도 한 것 같다. 여성 중심 서사가 많이 나오는 추세다. ‘지금까지 여성들의 이야기가 너무 없었어, 너무 한쪽으로 치중돼 있었어, 이런 얘기도 해봐야 하지 않겠니’, 이런 생각과 시도가 많아지는 때에 더불어 나 역시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선택받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시대를 잘 만난 건가.

=시대를 잘 만났다. (웃음)

-<82년생 김지영>에선 지영을 도와주는 버스 안 스카프 여인으로 짧게 등장한다. 분량으로 치면 작은 역할이었다.

=김도영 감독님의 팬이었다. 김도영 감독님이 연극배우 출신인데, 좋아하는 선배 배우 중 한분이었다. 어느 날 감독님이 상업영화 데뷔를 한다며 전화를 주셨고 반갑고 기쁜 마음에 “무조건 할게요” 그랬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비중이 작긴하더라. (웃음) 감독님은 스카프 여인이 등장하는 버스 에피소드가 원작에서부터 강렬했다고 하셨다. 그런데 어쩌면 영화에선 이 장면이 잘릴지도 모른다고. 실제로 완성본에서의 내 분량도 많이 편집됐다. 감독님은 내가 가진 따뜻함으로 이 장면을 채워주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건 비중에 상관없이 해야 하는 영화였다.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도 신기했다. 정말 짧게 나왔는데 사람들이 기억해주고, 좋았다고 말해줬다. 응원하고 지지하고 싶은 여성을 위험에서 구해주는 캐릭터라 강렬하게 느낀 것 같다. 이런 게 시대적 흐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성 투톱 경찰영화 <걸캅스>의 경우 악의적 평점 테러도 있었다.

=이게 논란이 될 만한 영화인가 싶었다. 여자 형사들이 욕을 하니까 시원하다는 반응이 있었는데, 이런 시도 자체가 새롭고 시원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나는 오히려 놀라웠다. 여기까지 오는 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지? 새로운 물꼬가 터진 건가? 앞으로는 이런 시도를 하는 게 더 쉬워지겠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 사실 <걸캅스>는 개봉하고 나서 더 의미가 생긴 영화다. 여성 캐릭터가 중심인 작품이라 출연해야지 했던 게 아니라 그저 코미디영화로서 재미가 커서 출연했는데 개봉 이후 더 큰 의미가 생겼다.

-연극하던 시절의 얘기를 해보자. 연극계에서도 꽤 일찍 주목받았다. 1999년 극단 연우무대에 입단해 2000년에 데뷔했고, 2004년에 아름다운 연극인상 인기상을 받고, 2006년에 동아연극상 신인상을 받았다. 무명의 세월이 길지 않았다.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캐릭터라 틈새시장을 잘 공략해 일찍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그때도 운이 좋았다. 상 받기 좋은 작품의 상 받기 좋은 캐릭터를 꽤 맡았다. 막 토해내는 역할들. 그래서 상을 일찍 받았다. 당시엔 기쁘기보다 송구스런 마음이 컸다.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부담감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런 상이 없었으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 같다. 상을 주시니까 내가 연기를 못하진 않나보다 하면서 계속 연기했던 게 아닌지.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땐 영화나 TV가 아니라 오로지 무대가 목표였나.

=대학 연극동아리를 통해서 무대의 매력에 빠졌기 때문에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이 가장 강렬했다. 공백기 없이 일중독자처럼 끊임없이 연기했다. 공연하면서 연습하고, 연습하면서 공연하고. 한 작품이 끝나면 곧바로 다음 작품에 들어가고. 그렇게 일이 많은 게 좋았다. 끊임없이 공연하다 자연스럽게 TV와 영화까지 넘어가게 되었고.

-캐스팅 과정이나 연극에서 다른 매체로 확장해온 과정이 모두 순리대로 흘러간 것 같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실제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간 느낌이 강하다. 한편으론 욕구와 욕망에 솔직하지 못했다는 생각도 든다. 나도 영화에서 단역 말고 이름 있는 조연을 맡고 싶은데 정작 영화사에 프로필을 돌리지는 않았다. 어렵고 쑥스러운 일은 못하면서 영화는 하고 싶고. 괜히 내가 바라는 건 영화가 아니야, 라고 최면 걸고. 때때로 실은 내가 욕망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이 여수인데, 부모님이 공부시켜 서울까지 보냈는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연극을 하냐는 반응을 보이진 않으셨나.

=당연히 그러셨다. (웃음) 학창 시절엔 모범생인 양 학교를 다녔고, 대학은 국문과로 갔으니 국어선생님이 될 거라고 생각하셨다. 연극동아리를 한다고 했어도 임용고시 준비를 했으니까 당연히 선생님이 될 줄 아셨다. 연극하던 시절 고향에 내려가면 부모님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 살펴보시곤 했다. 직업은 생계가 가능해야 직업이라는 말씀과 함께. 연극하는 걸 많이 반대하셨고 갈등의 시간도 길었다.

-여수라는 중소도시에서 자란 경험이 배우로서의 삶에 미친 영향이 있을까.

=대한민국에는 서울도 있고 여수도 있는데 모든 매체는 서울 중심이었다. 대한민국에는 서울만 있고, 서울을 제외한 곳은 다 소외지역 같았다. 그런 게 싫어서 서울로 편입하고 싶었다. 배제당하는 기분이 싫어서. 너희가 말하는 홍대는 뭐고, 대학로는 뭐니 싶은 마음. (웃음) 배우의 기본 덕목은 공감이라 생각한다. 소외와 배제의 감정은 배우의 원천이 되는 감정이라 생각한다. 여수라는 소도시에서 자란 것이 어쩌면 외로움이나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기에 좋은 자양분이 된 것 같다.

-몸이 편해지면 초심을 잊기도 쉬운데, 그런 걱정은 들지 않나.

=예전에 뭘 모를 땐 스타 배우들이 서민 역할을 어떻게 연기하지 싶었다. 그런데 또 다른 외로움이 있는 것 같다. 근원적 외로움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감정이 메말라서 연기가 어려워지거나 변할 것 같진 않다.

-연말이 되면 무언가 정리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들어 싫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9년을 돌아본다면.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한 해였다. 낯설긴 해도 재밌는 경험들이었다. 드라마로 인기를 얻은 것도 처음이고, 생전 찍어본 적 없는 화보도 찍었다. 새로운 것에 적응하느라 심적 부담이 많았지만 돌아보니 무사히 잘 넘긴 것 같다. 애쓴 것보다 더 큰 성과를 얻은 해였다.

-2020년은 어떤 한해가 되길 바라나.

=조연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겹치기 출연도 하게 되는데, 오롯이 현재의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온전히 지금 내가 맡은 캐릭터에 몰입해 연기하고 싶다. 작품으로는 박대민 감독의 <특송>, 홍지영 감독의 <새해전야> 등으로 만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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