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김유리 감독의 <노는 계집 창>
2019-12-31
글 : 김유리 (감독)
그녀는 왜 안전모를 쓰지 않았나

감독 임권택 / 출연 신은경, 한정현, 최동준, 정경순 / 제작연도 1997년

지인이 새 TV를 샀다고 해 구경하러 갔다. 크기와 성능에 압도돼 리모컨을 꾹꾹 눌러보는데 마침 공중파에서 <서편제>를 한다. 올해 한국영화 100년을 맞아 한국영상자료원과 KBS가 <한국영화 100년 더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12편의 디지털 복원작을 매주 한편씩 방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복원작이라 해도 작은 컴퓨터 화면으로 본 게 다였는데 잘 얻어걸렸다 싶어 화질과 사운드에 감탄하면서 보고 있는데, 갑자기 생각났다. 인생 영화에 대한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

물론 나에게도 태어나 최초로 본 영화, 영화에 흥미를 갖게 한 영화, 영화를 하겠다 마음먹게 한 영화, 극장에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 쏟게 한 영화, 보고 나서 며칠을 앓아 눕게 한 영화…. 많은 순간을 함께한 영화들이 있다. 손으로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스쳐가지만 어쩐지 사적인 이야기와 함께 털어놓기가 쑥스러워 ‘어떡하지…’ 하고 있던 참에 같은 감독의 <노는 계집 창>이 떠올랐다.

영화의 배경과 소재가 여러 이야깃거리를 불러일으키지만 ‘시대’, ‘사회’,‘여성’이라는 화두에 앞서 계속해서 곱씹게 되는 한 장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마약왕도, 마피아도, 정치인도 아닌 한 직업여성의 일대기. 영광과 승리의 순간이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이 영화에 아주 의미심장한 장면이 총 세번 나온다. 가족이 모두 죽고 어릴 때 고아원으로 보내져 고향이 어딘지, 진짜 이름이 뭔지도 모르고 윤락가로 흘러들어온 영은(신은경). 누군가가 시간을 사줘야만 안락한 잠이 허락되는 그녀와 잠시 스칠 인연일 줄 알았으나 그 끈을 완전히 놓지도, 그렇다고 단단히 붙잡지도 않은 채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길룡(한정현). 두 사람이 드문드문 만나 하는 일은 영은의 기억 속에 있는 고향을 찾아다니는 것인데 그때 길룡의 낡은 오토바이가 두 사람의 발이 된다.

영은과 길룡이 처음으로 안전모를 쓰지 않아 교통경찰에 걸리는 장면은 맥락상 그럴 수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같은 장면이 두번 반복될 때, 그때까지 영화를 보아온 태도가 달라진다. 그리고 그 장면을 다시 한번 엔딩 신으로 마주할 때 정신이 번쩍 든다. 술 파는 곳으로 알고 왔지 몸 파는 곳에선 일할 수 없다던 영은이 이곳저곳 전전하다 심지어 술집 마담으로 여성을 고용하는 위치까지 가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이 처음 팔려왔던 곳으로 돌아와 이곳 말고는 갈 곳 없는 처지임을 깨닫고 영화는 끝난다. 순응과 회귀의 서사에서 보란듯이 안전모를 쓰지 않는 이 두 인물을 구태여 세번이나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 반복되는 장면의 상징성이 집요하고도 잔인하게 끌고 가기만 하는 세상을 ‘거스르는’ 최소한의 액션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 액션은 캐릭터의 의도가 아니다. 단속에 걸릴 때마다 도망가거나 반항하지 않는다. 지시에 따라 순순히 서고, 면허증을 내민다. 따라서 거역과 저항의 액션이라기보다 ‘길들여지지 않음’으로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고 영화에서 시종일관 등장하는 시대에 대한 묘사보다 이 행위의 반복이 어쩌면 더 중요한게 아닐까 생각했다. 길들여짐과 길들여지지 않음의 공존, 나는 바로 이 지점이 이 영화에서 가장 귀하게 여겨졌다.

모두 그러하겠지만 영화를 만드는 경험보다 보는 경험이 압도적으로 많고, 많은 영화들이 저마다의 이유와 방식으로 마음속에 들어왔다 나간다. <노는 계집 창>은 영화 뒤에서 진행되는 생각, 그 영화만의 관점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한다. 바로 그 ‘말하지 않고 남겨둔’ 것들에 대해서.

●김유리 단편영화 <자위전쟁>(2008), <상실의 기억>(2010), <저 문은 언제부터 열려 있었던 거지?>(2013)를 연출하고, 첫 장편영화 <영하의 바람>(2018)으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