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경, 용준, 수현, 효진, 종욱, 미정, 경환, 재윤, 수완, 규림…. 한동안 온종일 생각하며 부르고 지냈던 이름들. 작품 속에 등장했던 이름이다. 나는 시나리오를 쓸 때 등장인물 이름 짓느라 시간이 꽤 드는 편이다. 대부분 평범한 삶을 사는 이웃 같은 주인공들이라 자주 들었던 익숙한 이름이어야 하지만, 친근하면서도 고유한 캐릭터가 느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준호’라는 이름. 칸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자신만의 장르를 만든 영화감독 이름이 이준호나 김준호가 아니라 봉준호라는 것에서 느껴지는 대중적이면서도 남다른 분위기가 있질 않나. 한때 한국영화에 가장 많이 등장한 남자주인공 이름이 ‘민식’이라고 들었다. 민식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그동안 한국영화에 등장했던 남자 캐릭터의 전형성과 어쩐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수라>에서 안남시의 ‘박성배’ 시장은 또 어떤가.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애틋한 여주인공의 이름으로 ‘다림’ 말고는 다른 이름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처럼 이름에는 알 수 없는 분위기라는 게 있다. 이름을 짓는다는 개념보다는 이름을 선택한다는 관념을 지닌 서양에서조차 각 이름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가 있다고 하니까. 예전에 호감을 느끼고 있었으나 연애에는 이르지 못했던 상대에게 “넌 참 이름처럼 생겼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뜻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몰라서 동명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얼굴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찾아보기도 했다. 어딘가 모르게 나랑 닮은 것도 같았지만 ‘이름처럼 생겼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기에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적어도 그것이 스스로 내게 비쳤으면 하는 이미지와 차이가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내 이름에 불만 아닌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이름을 직접 짓기도 했다. 그 이름으로 인터넷에서 회원 가입도 했다(그때는 실명 가입이 법적 의무 사항이 아니었던 것 같다). 단편영화를 제작했을 때의 이름은 또 달랐다. 물론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이름에 집착했던 그 시기가 조금은 부끄러운 과거로 남았지만, 미련이 남지 않은 건 아니다. 이름은 내 것이지만 다른 사람이 더 많이 부르고 사용한다.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임에도 자기 개성을 담아 주체적으로 선택하기보다는 주어진 대로 적응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초초초, 방구년, 나거지, 오샹년, 박개새, 유된장, 우라질, 최고자, 배어라, 어그럴걸, 안돼요, 남궁뚱, 오늘도, 유머슴, 김돋주, 조까라, 김골골, 이새끼, 최왈왈. 2019년 개명 신청을 한 이름들이라고 한다. 목록에 적힌 이름만 봐도 내가 다 속이 상한다. 이 이름들에 그동안 놀림당하고 고생한 삶들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그려진다. 새로 선택한 이름은 사랑받는 이름이길. 이름에 불만이 있었던 한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