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지만 수습 신분으로 재벌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바람 잘 날 없는 태수(안재홍)는 어느 날 몸을 던지는 활약으로 황 대표(박혁권)의 눈에 들게 된다. 황 대표는 태수에게 기업에서 관리하는 회사 중 망해가는 동산파크의 운영 전권을 위임하면서 신임 동물원장에 앉힌다. 빚더미에 나앉으며 동물까지 내다팔아 텅텅 비어가는 동산파크를 살려보겠다는 태수의 의지는 직원들이 동물 탈을 쓰는 한이 있더라도 재개장을 해야 한다는 괴상한 계획을 밀어붙이는 원동력이 된다. 이제 망해가던 동물원의 직원인 수의사 소원(강소라), 사육사 건욱(김성오)과 해경(전여빈), 그리고 서 원장(박영규)은 태수와 합심해 사자, 고릴라, 나무늘보, 기린, 북금곰을 맡아 관람객을 상대로 귀여운 사기극을 꾸미게 된다.
손재곤 감독의 전작 <달콤, 살벌한 연인>과 <이층의 악당>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그의 세 번째 연출작 <해치지 않아>가 평범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는 아닐 거라는 기대감을 가질 것 같다. 스릴러, 공포영화의 소재를 코미디 장르에 이식하는 놀라운 감각을 보여줬던 그는 이번 영화에서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기보다는 HUN 작가의 동명 원작 웹툰이 가진 정서를 영상화하는 데 좀더 집중한 듯 보인다. 동물원의 멤버들은 관람객을 속이기 시작하면서 예기치 못한 운영상의 위기를 종종 맞닥뜨리는데 그럴 때마다 발생하는 황당하고 훈훈한 코미디가 시선을 잡아끈다. 결국 동물원 멤버들에게 방향을 제시해주는 건 태수의 위기관리 능력인데 태수의 좌충우돌 동물원 경영 과정은 제목 <해치지 않아>가 뜻하는 바와 같이 고용 안정과 자연보호를 동시에 지켜내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드러낸다. 특히 <해치지 않아>는 골치 아픈 사회 이슈를 다루는 데 있어서 적정 수위를 지켜낸다는 점에서 코미디영화의 모범답안 같은 영화다. 그 방향이 너무 착해 다소 교과서적인 갈등 구조만을 드러냈다는 단점도 지적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