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작 <워터 릴리스>(2007), <톰보이>(2011), <걸후드>(2014)까지 셀린 시아마는 동시대의 소녀들, 젊은 여성들의 정체성과 관계맺음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왔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그런 감독이 자신의 첫 시대극을 만들면서 18세기 여성들의 삶을 오늘날과 공명하도록 매우 선명한 비전을 갖고 꿰어낸 작품이다. 1980년생, 프랑스의 감독이자 각본가로 활동해온 셀린 시아마는 간결한 화면 구성과 전개를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적 성향을 보여왔다. <톰보이>로 자신을 남자로 생각하는 10살 여자아이의 첫사랑과 성장기를 그려내면서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테디상을 수상했고,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영화제 기간 중 가장 훌륭한 평가를 받은 작품 중 하나였기에 각본상을 수상한 것이 다소 아쉬운 결과라는 평가도 받았다. 작품의 완성도는 물론 시기적인 면에서 셀린 시아마의 커리어에 감독상이 가장 적합해 보였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워터 릴리스>에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 이르기까지 관객과 비평가들이 입을 모아 셀린 시아마의 매 작품이 진보하고 있다고 고개를 끄덕인다는 점이다. 어쩌면 칸이 이 영화에 각본상을 준 것은, 시아마의 놀라운 능력이 아직 시작일 뿐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시아마는 예술가이면서 열렬한 활동가다. 2018년 제71회 칸영화제에선 영화계의 성평등을 촉구하는 레드카펫 퍼포먼스에 참여해, 칸 뤼미에르 극장 앞에서 82명의 여성 영화인들과 행진을 벌였다. 그는 (당시) 71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감독이 오직 제인 캠피온뿐이라는 사실(명예황금종려상까지 포함한다면 아녜스 바르다도 해당한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감독 중 하나였다. 시아마는 또 2020년까지 프랑스의 영화, 텔레비전을 비롯한 미디어 업계의 남녀 성비를 50대 50으로 끌어올리자는 ‘50/50 무브먼트’의 창시자 중 한명이다. 공교롭게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18~19세기의 시대 배경을 비롯해 거친 자연을 뚫고 외딴섬에 진입한 여성 예술가로부터 파생되는 이야기 구조, 자연을 묘사하는 방식 등에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제인 캠피온 감독의 <피아노>와 비교해보고 싶어지는 작품이다. 유사한 컨셉 안에서 캠피온의 영화는 이성애를, 시아마의 영화는 동성애를 그린다. <피아노>가 섹슈얼리티에 기반해 여성의 각성과 주체성에 집중했다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주제의 구현보다도 두 사람의 사랑과 감정 그 자체를 응시하면서 보다 현대적인 태도를 고수한다. 캐릭터로서 두 사람의 자립성과 주체성은 이미 충분히 완성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전자는 사랑을 실현하지만 후자는 시대적 제약으로 헤어지는데, 시아마의 영화는 이 과정에서 퀴어영화가 주로 부각하는 대단한 갈등이나 비극을 굳이 끌어들이지 않는다. 그저 절절한 레즈비언의 사랑 이야기, 훌륭한 멜로 장르를 어떻게 힘 있게 창조할 것인가에 몰두하고 있다. 이는 셀린 시아마가 자신을 레즈비언이라고 소개하고, ‘피메일 게이즈’ 이상으로 레즈비언 중심의 영화가 이성애 중심의 영화만큼 영향력을 갖길 원한다고 고백한 것에서도 그 출처를 확인할 수 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셀린 시아마 감독의 오랜 투쟁과 분명한 의식이, 영화라는 예술에 숨결처럼 스며든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