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살바도르 말로(안토니오 반데라스)는 수많은 걸작을 발표하며 왕성하게 활동했으나 지병으로 인해 현재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어느 날 그는 리마스터링된 본인의 영화 시사회에 참석해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32년 만에 자신의 영화를 재관람한 살바도르는 전과 다른 감상을 얻고 생각에 잠긴다. 그는 주연 배우였던 알베르토(아시에르 에테안디아)를 찾아가 함께 시사회에 가자고 말한다. 과거 사이가 좋지 않던 둘의 만남은 서먹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이내 전보다 가까워져 시사회에 동반 참석하기로 한다. 그러던 중 알베르토는 우연히 살바도르의 글을 읽고 이에 깊게 매료된다. 사적 경험이기에 공개를 꺼렸지만, 살바도르는 알베르토의 설득에 넘어가 글을 토대로 함께 공연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살바도르는 자신의 과거와 조우한다.
<페인 앤 글로리>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자전적 영화다. 감독은 자신의 성 정체성이나 스페인이라는 출신 배경 등 주로 개인적인 영역에서 영감을 얻는데, 이번 영화는 그중 가장 내밀한 곳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알베르토와 살바도르로 하여금 자신을 대변하도록 한다. 영화는 마치 한권의 자서전 같지만 연대순이 아닌 파편적인 기억들을 기반으로 서사를 진행한다. 영화, 가족, 사랑 등 감독은 본인 삶의 핵심 키워드를 선정해 관련 사건들을 묘사하는데 그 흐름이 끊김 없이 매끄럽다. 피아노 선율이나 수채화 같은 소재를 활용해 살바도르의 과거와 현재를 엮어내는 솜씨도 탁월하다. 감독은 인물의 행보를 통해 시간이 흐르며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영화에 대한 애정만큼은 변함없으며 오히려 깊어졌음을 암시한다. 제3자의 위치로 한 걸음 물러나 자기 역사를 찬찬히 짚는 노장 감독의 시선은 어느 때보다도 깊고 차분하다.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