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성혜의 나라> 5포 세대의 풍경을 다룬 영화
2020-02-05
글 : 임수연

성혜(송지인)는 새벽에 신문 배달을 하고 오후에는 토익 학원에 다니며 밤에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평범하게 고단한 일상을 보내는 성혜에게 가족이나 7년간 사귄 애인은 그를 더 궁핍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짐일 뿐이다. 그가 전 직장에서 겪었던 성폭력은 제대로 된 해결은커녕 재취업에 막대한 장벽으로 작용하고, 주변 친구들 역시 백수이거나 현실과 이상의 괴리로 힘들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성혜에게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성취보다는 실패가, 희망보다는 체념이 삶의 기본값처럼 다가오는 5포 세대의 풍경을 다룬 영화다. 그들에게 5억원이란 거금이 생긴다면 과연 어떤 결단을 내리게 될지 감독의 상상력을 발휘해 대신 응답하고 있다. 청춘을 다룬 여타 영화가 그 세대의 싱그러움에 주목하는 데 반해 <성혜의 나라>는 ‘청년 빈곤’이라는 상반된 키워드에 집중한 점이 눈에 띈다. 또한 열정만 있다면 궁핍을 견뎌낼 수 있다는 구시대의 풍경이 더이상 용납되지 않는 요즘 젊은이의 현실감 있는 딜레마를 냉정하면서 과장되지 않은 필치로 담아냈다. 성혜의 친구 중 연기자의 길을 걷는 이가 “꿈, 그거 어릴 때나 꾸는 거지 나이 먹으니까 다 똑같다”며 자조하는 것은 그 일면이다. 유사한 소재를 다룬 기존 영화보다 과감한 결말을 선택한 것은, 정형석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게 이상적인 사회시스템이 붕괴된 상황에서 젊은 세대가 무언가를 열심히 해야만 한다는 것은 어떤 강요에 불과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성혜의 나라>는 무대에서 배우로서 경력을 시작했던 정형석 감독이 TV 드라마작가와 무대 연출가를 거친 후 연출한 두 번째 장편영화다. 전작 <여수 밤바다>로 2017년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후보에 올랐던 그는 <성혜의 나라>로 2018년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대상을 받았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