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스코시즈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이리시맨>은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가 무관에 그쳤다. 그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 일은 데자뷰처럼 반복됐다. 10개 부문 노미네이트에 무관으로 오스카 레이스를 마친 스코시즈의 인스타그램엔 팜스프링스국제영화제에서 받은 소니 보노상 트로피를 든 사진이 올라왔다. 마치 "됐어! 난 괜찮아! 강아지와 팜스프링스 트로피로 충분해!"라며 자기 위로를 보내는 듯한 표정. 이로써 그의 오스카 감독상 도전 전적은 1승 8패가 되었다. <성난 황소>,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좋은 친구들>, <갱스 오브 뉴욕>, <에비에이터>, <휴고>,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아이리시맨>이 수상에 실패했고, 제79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디파티드>로 감독상의 한을 풀었다.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 언어의 대부 알프레드 히치콕도 오스카 감독상을 단 한 번도 타지 못했다. 오죽하면 아카데미와의 악연을 풍자한 밈(meme)도 이렇게 돌아다닌다. 그에게는 총 다섯 차례의 감독상 찬스가 있었다. <레베카>, <스펠바운드>, <구명 보트>, <싸이코>, <이창>이 감독상에 노미네이트됐지만 수상엔 실패했다. 60여 편에 이르는 히치콕의 작품 가운데 <현기증>, <새>,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오명> 등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들이 호명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 또한 놀랍다. 결국 오스카 측은 1968년, 그에게 공로상을 안겼다. 트로피를 건네받은 히치콕이 수상소감으로 남긴 한마디는 "Thank you... very much indeed"가 전부였다.
스탠리 큐브릭
히치콕에 버금가는 오스카와의 악연이 또 있다. 거장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대가 스탠리 큐브릭이다. 그는 <배리 린든>,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계태엽 오렌지>로 총 네 번의 오스카 감독상 도전을 했다. 결과적으로 그에게 돌아간 감독상 트로피는 없었다. 그 유명한 <샤이닝>과 <아이즈 와이드 셧>은 어느 부문에도 노미네이션 되지 않았다.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이 거머쥔 역대 오스카 트로피는 유일하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수여된 시각효과상. 이 영화의 이미지적 성취를 누구도 부정하진 못하겠지만 시각효과상이 그에게 유일했단 건 왠지 씁쓸하다.
리들리 스콧
<에이리언>과 <블레이드 러너>를 만든 리들리 스콧은 3번의 감독상 도전에 모두 실패했다. 모두 훌륭한 평가를 받은 작품들이었지만 강력한 상대를 만난 불운 탓인지도. 2001년 후보에 오른 <글래디에이터>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트래픽>에 트로피를 넘겨야 했고, 2002년 후보에 오른 <블랙 호크 다운>은 론 하워드 감독의 <뷰티풀 마인드>에게 양보했다. 특히 가장 아쉬움을 남긴 때는 1992년 <델마와 루이스>의 수상 실패다. 당시 <델마와 루이스>를 이긴 작품은 조나단 드미의 <양들의 침묵>이었고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감독상, 각색상을 모두 석권했다. <델마와 루이스>는 각본을 쓴 칼리 코우리에게 돌아간 각본상 수상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