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양진모 편집감독이 말하는, 할리우드 편집감독들이 가장 좋아한 <기생충> 장면은?
2020-02-21
글 : 김현수
글 : 김진우 (뉴미디어팀 기자)
양진모 편집감독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포함 4개 부문 수상작 <기생충>은 미술상과 편집상 부문에도 후보에 올라 한국영화 스탭들의 저력을 널리 알렸다. 그중 양진모 편집감독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다. 아쉽게도 오스카 편집상은 수상하지 못했으나, 그는 미국영화편집자협회 시상식 장편영화 드라마 부문 편집상을 외국인 최초로 수상하며 할리우드 편집자들에게서 실력을 입증 받았다. <씨네21> 1243호에 실린 김성훈 기자와의 단독 인터뷰와 그간 <씨네21>이 <기생충> 제작진과 나눴던 이야기들을 기반으로 양진모 편집감독의 활약상과 <기생충>의 편집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정리해보았다.

1. 김지운, 연상호, 장준환... 양진모 편집감독의 휘황찬란한 이력

<설국열차>

<기생충>의 밀도 높은 편집은 하루아침에 탄생한 것이 아니다. 양진모 편집감독은 비주얼리스트로 유명한 이명세 감독의 <형사 Duelist> 현장편집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인 후 여러 작품들을 통해 탄탄한 경력을 쌓았다. 곽경택, 윤제균, 김지운, 연상호, 장준환 감독 등 쟁쟁한 감독들의 작품에서 현장편집, 편집감독을 맡았다. 봉준호 감독과도 이미 <설국열차>, <옥자>로 두 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그의 손을 거친 흥행작으로는 <해운대>, <부산행>, <밀정>, <럭키>, <1987> 등이 있다. 2015년에는 <뷰티 인사이드>로 청룡영화상 편집상, 2018년에는 <독전>으로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편집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 할리우드 편집감독들이 가장 좋아한 장면은?

<기생충>

봉준호 감독과 함께 오스카 캠페인을 진행한 양진모 감독이 직접 밝힌 ‘미국 편집감독들이 가장 좋아한 <기생충> 장면’은 ‘믿음의 벨트’ 시퀀스다. 연교(조여정)가 기정(박소담)에게 운전기사 추천을 받으며 “일종의 뭐랄까.. 믿음의 벨트?”라는 말을 뱉은 후 등장하는 약 8분간의 장면이다. 기택(송강호)이 취직을 하고, 기택 가족의 계략으로 문광(이정은)이 해고되기까지가 경쾌한 음악, 빠른 호흡으로 이어진다. 양진모 편집감독은 “한 시성식에서 믿음의 벨트 시퀀스를 잠깐 틀었는데,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고 환호성을 지르며 난리가 났다. 영화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 같다”는 열띤 반응을 전했다.

3. 봉준호 감독이 편집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시퀀스는?

봉준호 감독

믿음의 벨트 시퀀스는 봉준호 감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다. 양진모 편집감독은 봉준호 감독과의 <기생충> 협업 과정에 대해 “원래 봉준호 감독님은 주문 같은 걸 잘 안 하시는데 ‘믿음의 벨트 시퀀스는 깊게 만들자. 다른 부분은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는 비화를 전했다. “믿음의 벨트까지만 잘 도달하면 뒤는 구조가 잘 짜여 있어 편집적으로 큰 도전이 아니다”고 양진모 감독에게 말했다고 한다. 시나리오 작성 과정에서부터 봉준호 감독은 시퀀스의 이름을 ‘믿음의 벨트’로, 음악은 아리아 풍으로 사용할 것을 지정했다. 거기에 양진모 편집감독이 리듬감을 살리기 위해 장면 반복을 생략하고, 인터커팅(짜집기) 사용해 시퀀스를 완성했다.

4. ‘믿음의 벨트’ 시퀀스, 이렇게 만들었다

정재일 음악감독

봉준호 감독이 각별히 신경을 쓴 만큼, 믿음의 벨트 시퀀스는 양진모 편집감독을 비롯한 여러 제작진들의 노고가 들어간 결과물이다. 시퀀스 전체를 차지하는 음악을 작곡한 정재일 음악감독은 이 시퀀스를 ‘1부의 피날레’로 생각하며 작업에 임했다. 그는 믿음의 벨트 시퀀스를 위해 7개 버전까지 곡을 만들었으며, 인터뷰를 통해서도 “굉장히 고된 작업이라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장영환 프로듀서 역시 ‘<기생충> 속 한 장면’으로 믿음의 벨트 시퀀스를 꼽으며 “이 장면을 위해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고 장소도 서울, 전주 등으로 바뀌어서 프로듀서로서도 주의를 요했다”고 말했다. 후에 음악을 넣은 부분을 봤을 때는 “실제로 전율이 오더라”라며 감회를 회상했다. 최태영 음향감독은 “믿음의 벨트가 사운드 엑기스가 모여있는 지점이다. 음향 테스트 상영도 이 장면을 중심으로 봤다”고 전했다.

5. ‘짜파구리’ 시퀀스가 탄생하기까지

<기생충>

양진모 편집감독이 강조한 편집의 핵심은 ‘리듬감’이다. 믿음의 벨트 시퀀스 못지않게 역동적인 편집을 보여준 ‘짜파구리’ 시퀀스는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을 레퍼런스 음악으로 삼아 작업을 했다. 충숙(장혜진)이 라면 봉지를 여는 장면은 리듬감을 살리기 위해 촬영 소스를 두세 번 잘라서 속도감을 높였다. 이외에도 움직임이 리듬에 맞지 않는 장면에서는 인물을 합성하거나 제외하기도 했다. 과거 <옥자> 제작 당시 나누었던 인터뷰에서도 양진모 편집감독은 “리듬과 타이밍이 중요했다”고 말하며 각 캐릭터들의 행동이 도미노를 무너뜨리듯 부드럽게 이어져야 하는 것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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