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기억의 전쟁> 쉽게 간과되고 잊히는 과거의 역사
2020-02-26
글 : 김소미

청각장애를 가진 부모와 자신의 일상을 따뜻하게 관찰한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5)의 이길보라 감독이 베트남전쟁을 회고하는 다큐멘터리로 5년 만에 극장을 찾는다. 이길보라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부지런히 드나든 곳은 베트남의 퐁니·퐁넛 마을. 매년 음력 2월이면 마을 전체가 한날 한시에 죽은 가족들을 향한 슬픔으로 잠긴다. 휴양지 다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에서 동떨어진 이 마을은 1968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집단학살이 일어난 곳이다. 이길보라 감독은 주민들과의 만남을 토대로 기억과 증언의 이미지를 엮어나간다. 학살 생존자인 응우옌 티 탄, 응우옌 럽, 딘 껌이 중심이 되어 여성이 바라보는 전쟁, 장애인이 기억하는 전쟁의 의미를 되짚어나가는 시도다. 영화는 한국을 방문한 마을 생존자가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에 참석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여성 인권 증진에 앞장섰던 고 김복동 인권운동가와 만나는 장면처럼 기록적인 순간들도 촘촘히 새겨넣었다.

<기억의 전쟁>을 통해 이길보라 감독은 쉽게 간과되고 잊히는 과거의 역사를 우리의 것, 사적인 것, 현재의 것으로 복원한다. 오랜 기간 성실한 취재를 거쳐 대상과 침착한 교류를 시도한 제작진의 노력은 곧 깊고 진실한 인터뷰로 생명력을 얻는다. 자료 화면과 같은 공적 자료를 배제하고 주관적 기억에 의거한 이미지, 체험의 공유에 집중했다. 소수자의 시선으로 전쟁을 바라보는 감독의 명확한 비전이 있기에 가능한 일관되고 분명한 연출이다. 민간인 학살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그리고 참전군인들의 트라우마까지 넓게 포섭하는 시선 역시 묵직하다. 추상적 사운드를 지속하다 후반부에 비로소 감정을 드러내는 이민휘 음악감독의 결과물도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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