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인간의 music]
[마감인간의 Music] 닉 우라타 <루비 스팍스> O.S.T, 산책의 벗
2020-02-27
글 : 홍석우 (패션 저널리스트)

새해부터 제법 걸었다. 설 연휴를 끼고 런던으로 출장을 다녀왔고, 돌아와서는 도시 곳곳을 걷는 데 몰두하고 있다. 짧게는 30분부터 길게는 두어 시간 남짓 걸리는 산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래 걸어도 발이 편한 운동화이지만, 그만큼 중요한 게 바로 음악이다. 밤과 낮, 아침을 오가며 매일 가던 거리와 오랜만에 마주한 골목을 다니며 들은 재생 목록에는 근래 즐겨본 영화음악이 있었다. 2012년 개봉한 미국영화 <루비 스팍스>도 그중 하나였다. 개인의 연애라는 관점으로 복기하면 결국 우리가 느끼는 사랑이 무엇인지 묻는 작품이란 걸 알게 된다.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닉 우라타가 지휘했다. 종종 나오는 밝고 즐거운 장면 뒤에 흐르는 흥겨운 밴드음악도 매력적이지만, 음반에 담긴 22곡 중 영화의 가장 진지하고 어두운 이야기가 드러나는 맨 앞과 맨 뒤의 곡을 특히 좋아한다. 영화 속 소설가는 그의 작품에만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여성상을 글로 창조하고,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실재하게 만들었다. 폴 다노의 독백이 들어간 4번 곡 <Ruby Sparks>와 제목부터 ‘창조’(Creation)인 1번 곡,그리고 모든 과정이 끝난 후 남은 사람이 이야기하는 18번 곡 <She Came to Me (With Dialogue)>를 지난 한달간 무수히 들었다. 출퇴근길과 비행기와 공항, 그리고 처음 가본 시간대의 한강 공원에서 남이 만든 이야기에 나의 상상을 덧붙이며 그저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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