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이 눈빛 믿어도 될 것 같다, <묻지마 패밀리> 김일웅
2002-05-08
글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사진 : 오계옥

이 얼굴, 어딘지 익숙하다. 술취한 유오성이 나 간첩이다 잡아가라고 외칠 때, “알아…. 너 간첩, 나 김정일”이라고 깐죽대던 <간첩 리철진>의 그 순경이라면 기억날까. <킬러들의 수다>에서 통화중에 총맞는 운전자라면,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식당 주인을 내려치고 도주하던 이혜영, 전도연을 뒤쫓던 식당 종업원이라면 너무 빨리 스쳐 지나갔던가? 웃는 모습이나 말하는 모습은 가수 이현우와 비슷하고 가끔은 “개그맨 윤정수와 닮았다는 소리도 듣는다”는 이 사람은, 김일웅이다.

5월 말 개봉하는 <묻지마 패밀리>는 김일웅을 비롯한 류승범, 신하균, 임원희, 정재영 등 수다의 모든 식구들이 ‘출연료는 묻지 말라며’ 힘을 뭉친 옴니버스영화. 김일웅은 1편 <사방의적>에서는 끝까지 살아남는 조직폭력배의 일원으로, <내나이키>에서는 동네 양아치로, 마지막편 <교회누나>에서는 급기야 주연을 맡았다. 짝사랑하던 교회누나(박선영)를 시집보내고 휴가 마지막날 유부녀가 된 누나에게 품어왔던 사랑을 고백하는 수줍은 이등병 역, “그동안에는 뺀질뺀질한 역할만 맡았는데, 이 친구는 좀 바보스러우리만큼 순수해요. 그게 또 색다르고 재미있네요.”

72년생, 서른하나의 나이가 안 믿겨질 정도로 동안인 김일웅을 ‘놀 만큼 놀았을 부잣집 외동아들’로만 본다면 곤란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마음고생, 몸고생도 많이 했고, 어떤 일이 닥친다 해도 흔들리지 않을 만한 근성도 가진” 배우다. “‘불알’친구가 리어카에서 파는 마지막 원서를 더블가격을 주고 사서” 서울예전 방송연예과에 대신 입학원서를 내버리는 순간, 그의 인생방향은 틀어져버렸다. 삼수를 결심하고 있다가 자의 반 타의 반 들어간 대학에서 그는 숨은 끼를 발견했고 동아리 ‘만남의 시도’를 통해 장진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와 “휼륭한 성적으로” 2학년 1학기를 마칠 무렵. 집안에 큰 불운이 닥쳤다. 부모님은 급히 미국으로 떠나셔야 했으며 자신은 “옷가지만 대강 싸서” 쫓기듯 집을 나왔고 과방으로 걸려오는 전화는 “엄마라고 해도 절대 바꿔주지 마라”고 당부해야 할 만큼 힘든 시기였다. 극단 유를 거쳐 MBC 26기 공채탤런트로, 가끔은 “돈 많고 뺀질뺀질한 회장 아들로 여자나 강간하는 쓰레기 같은” 역할도 해야 했던 방송사 생활에 회의가 들 무렵, “땜빵으로” <간첩 리철진>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다시 영화와의 긴 인연을 시작했다.

이제 <묻지마 패밀리>를 비롯 “단순무식하지만 운동신경은 뛰어난 철없는 양반” 3루수 병환 역으로 출연하는 <YMCA야구단> 등의 영화가 개봉을 하고 나면 그는 더이상 ‘뺀질순경1’이나 ‘총맞는 운전사2’라는 캐릭터명이 아니라 김·일·웅 이란 이름 석자로 관객에게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늦게 찾아와 더 반갑고 기대될 ‘스타덤’이라는 고지에 대한 미련을 내비치지 않는다. “같이 연극하던 신하균이나 임원희가 유명세를 타는 동안 부러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조바심이나 욕심은 없었어요. 일을 많이 하면 주목받게 되는 건 당연하잖아요. 건방져서 하는 말이 아니구요. 이른바 말하는 인지도 ‘상승’에 대해서는 사실 무덤덤해요. 제가 민감하게 생각하는 건 오히려 내 연기가 어떻게 ‘성장’해 나가느냐죠. 그건 분명 욕심을 부려도 될 부분이구요.” 그런 그가 욕심내는 역은 서민들의 생활을 담은 영화의 3류 건달. 그러기엔 너무 ‘맨지르르’하게 생긴 게 아니냐고 걱정을 했더니 “연기는 외양이 아니라 눈빛”이라는 단호한 대답이 재빠르게 날아온다. 저 눈빛, 믿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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