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아유]
<이장> 송희준 - 나의 색을 찾아서
2020-03-24
글 : 남선우
사진 : 오계옥

아버지의 이장을 위해 모인 네 자매가 막내이자 장남인 녀석을 끌고 오기 위해선 한 사람의 도움이 절실했다. 막내의 거처조차 모르는 누나들의 무차별 메시지 전송 끝에 연락이 닿은 단 한명, 녀석의 전 여자친구 윤화다. 송희준 배우가 연기한 <이장>의 윤화는 멀어진 가족을 한데 모은 후 유일한 이방인을 자처하며 그들의 여정에 동행한다. 비겁하게 도망친 애인에게 사과를 받고, 못다 한 이야기를 매듭짓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는 처음 보는 어른들 앞에서도 조곤조곤 할 말을 다 한다. 제 할 일을 해내기 위해 낯선 이들을 따라나선 윤화처럼, 새로운 캔버스를 찾던 신인 송희준이 스크린에 도착했다.

-미대를 다니던 중 모델이 되었고 단편영화를 찍었다. 원래 배우를 꿈꿨나.

=꿈을 정해놓고 모델이 하고 싶다, 배우가 하고 싶다, 생각한 적은 없다. 그림 그리는 작업이 그러하듯 나의 색을 꺼내놓을 수 있는 일을 계속하고 싶었는데, 우연히 모델 일을 시작했고 연기할 기회도 생겼다. 혼자 극장 가는 것이 오랜 취미인데 어느 순간 영화가 다르게 보이긴 했다.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은 모양이다.

-단편 <히스테리아>를 거쳐 첫 장편 출연작 <이장>이 개봉했다. 이제 혼자 가던 극장에서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영화제에서 스크린으로 <히스테리아>를 보는데 기분이 너무 이상하고 부끄럽더라. (웃음) 그래도 앞으로 더 많이 보고 싶다.

-<이장>의 윤화 역에 캐스팅되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걱정이 많았다. 윤화라는 캐릭터가 영화 속에서 가족들을 모으는 장치로만 소모되진 않을까, 관객에게 이해받기 힘든 인물로 비치진 않을까 싶었다. 단 한분이라도 저 친구에게 공감하도록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히스테리아>에 이어 <이장>에서도 가부장제의 모순 아래 살아가는 20대 여성을 연기했다. 영화의 주제와 관련해 인물을 섬세하게 표현해내기 위해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두 영화에서 내가 맡은 캐릭터는 <이장>의 혜연(윤금선아)처럼 부당함에 맞서 에너지를 표출하는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만으로도 인물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눈, 숨, 말의 떨림까지도 그 통로가 될 수 있다. 어떤 통로를 어떻게 써야 부드럽게 관객의 마음을 건드릴 수 있을지를 내내 고민했다.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는데 그림도 계속 그리는지 궁금하다.

=규모가 큰 작업은 못하지만 틈틈이 그린다. 사실 그림과 연기는 굉장히 닮았다. 둘 다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그렇게 나에 대해 알아가면서 나를 보여줄 기회를 준다. 캔버스와 내가 일대일로 만나는 것이 그림이라면 영화를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이 공동으로 일한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그림도 좋지만, 지금은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나가는 작업에서 더 감동을 느낀다.

-또 어떤 작품에서 송희준 배우의 색깔을 펼쳤나.

=올해 안에 공개될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옴잡이 역을 맡았다. 촬영을 끝내고 후시녹음 중이다. 이경미 감독님이 나의 새로운 모습을 많이 꺼내주셨다. 기대해도 좋다.

-더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은 무엇인가.

=<비밀은 없다>의 손예진 배우처럼 광기 어린 역할도 해보고 싶고, <만추> 같은 멜로도 찍고 싶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영화 자체가 그림 같았는데, 그런 영화도 꼭 해보고 싶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전도연 배우도 너무 멋있더라. 하고 싶은 건 너무 많은데 말하려니 생각이 안 난다.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웃음)

-더 어려운 질문이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그러게. 좋은 배우는 어떤 배우일까. (웃음) 감독이 생각하는 캐릭터와 내가 생각하는 캐릭터 사이의 간극에 나만의 색을 더해 조화롭게 모든 게 맞아 들어간다면 재밌을 것이다. 그러려면 사람, 사물, 상황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그대로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역할을 만날 때마다 유연하되 진지하게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영화 2020 <이장> 2018 <히스테리아>(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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