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사냥의 시간>의 넷플릭스행이 의미하는 것
2020-03-27
글 : 김성훈

코로나19 사태 이후 영화 배급 방식이 생각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윤성현 감독의 신작 <사냥의 시간>이 4월 10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 190여개국에 단독 공개된다. 이 영화는 2월 26일 개봉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팬데믹(대유행)이 선언되자 개봉을 미뤘던 차다. <사냥의 시간>을 배급한 리틀빅픽쳐스는 지난 3월 23일 보도자료를 통해 “코로나19의 위험이 계속되고 세계적인 확산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이면서 더 많은 관객에게 영화를 소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해 이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전했다. 넷플릭스도, 리틀빅픽쳐스도 공개하진 않았지만 리틀빅픽쳐스가 <사냥의 시간>을 넷플릭스에 공개하는 조건으로 챙긴 금액은 약 120억원이라는 게 산업의 여러 플레이어들의 전언이다. <사냥의 시간>은 순제작비 90억원, 홍보마케팅(P&A) 비용 25억원을 합쳐 총제작비가 115억원가량이니 리틀빅픽쳐스는 보장되지 않는 수익 대신 총제작비를 보전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아닌 콘텐츠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넷플릭스로 난국을 돌파하려는 리틀빅픽쳐스의 계획은 순탄치않아 보인다. 같은 날 <사냥의 시간>의 해외 세일즈사인 콘텐츠판다가  ‘<사냥의 시간>의 넷플릭스 공개 결정은 리틀빅픽쳐스의 이중계약’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사냥의 시간>이 약 30개국 세일즈사에 선판매됐고, 추가로 70개국과 계약을 앞둔 상황에서 리틀빅픽쳐스가 충분한 협의 없이 계약 해지를 통보해왔다는 거다. 콘텐츠판다는 “세일즈가 완료된 극장 개봉 국가와 스트리밍 국가를 구분해 진행하거나, 우리와 함께 각국의 최선의 개봉시기를 찾아보는 등 사전논의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이 사건은 우리를 포함해 해외 영화사들이 확보한 적법한 권리를 무시하고 국제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자, 국내 해외 세일즈사들의 생존권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선례를 남긴 사건”이라고 전했다. 콘텐츠판다는 “국제적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리틀빅픽쳐스는 곧바로 “콘텐츠판다의 이중계약 주장은 허위사실”이라고 반박에 나섰다. 리틀빅픽쳐스는 “지난 3월 9일부터 콘텐츠판다에 계약 해지 요청 공문을 발송하고 직접 찾아가 대표 및 임직원과 수차례 면담을 가졌고 부탁했다. 투자사들과 제작사의 동의를 얻은 이후에도 콘텐츠판다에 (해외 세일즈사에 대한) 손해를 배상할 것을 약속하며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며 “충분한 사전협상을 거친 뒤 천재지변 등에 의한 사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계약서 조항에 따라 법률 검토를 거쳐 적법하게 해지했다”고 해명했다.

양쪽의 주장이 팽팽한 가운데, <사냥의 시간>의 넷플릭스 공개를 바라보는 영화인들은 “단순한 계약 분쟁 사건이 아니”라는 반응이다. 한 대기업 투자·배급사 임원은 “살아남기 힘든 중소 투자·배급사의 궁여지책선택이자 이후 벌어질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선제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넷플릭스는 영화산업의 구세주라고 생각한다. 리틀빅픽쳐스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빛나는 딜이 될 것이다. 그냥 극장에서 개봉했다면 총제작비의 50%도 건지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제작자는 “배급사의 마음은 잘 알겠지만, 부가판권 및 해외 배급사와의 계약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한 뒤 넷플릭스와 협상하지 못해 아쉽고 씁쓸하다”고 말했다.

조성진 CJ CGV 전략지원 담당은 “리틀빅픽쳐스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극장업계가 관심 있게 지켜본 영화인 만큼 아쉬운 것도 사실”이라며 “이후의 영화들이 <사냥의 시간>의 전례를 따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장기적으로 우려된다”고 걱정했다. 아직은 <사냥의 시간>의 넷플릭스행이 영화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극장의 시대가 점점 저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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