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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 사건을 이해한다는 뜻은
2020-03-31
글 : 유선주 (칼럼니스트)

피해자와 용의자의 사진, 사건 위치, 신문기사 등을 스크랩해 잔뜩 붙여놓은 벽을 ‘형사의 정신 나간 벽’(Detective’s Crazy Wall)이라 부른다. 다수의 수사팀 구성원이 정보를 공유하는 용도로도 쓰이고, 개인공간에 마련했을 때는 사건 해결에 대한 집념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역할도 한다. 한국 드라마는 내부인간 정보공유나 사건 개요를 시청자에게 브리핑할 때 주로 경찰서 화이트보드(요즘은 투명보드)를 사용하는 편이라, 저 벽은 내면의 풍경을 전시하는 역할에 집중한다. 워낙 자주 등장하다보니 형사 방 인테리어의 필수요소쯤으로 넘기기도 하는데, SBS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에서는 ‘형사의 정신 나간 벽’이 요란한 벽지 이상의 역할을 한다. 19년 전 ‘성흔 연쇄살인 사건’ 피해자인 동급생 최수정(김시은)의 죽음을 추적하는 한편, 아래층 중학생 소년 고은호(안지호)의 위기를 맞닥뜨린 차영진(김서형)의 집에도 사진과 메모를 가득 붙인 벽이 있다. 이따금 벽을 보고 생각에 잠길 때는 오래된 사건을 놓지 못하는 영진의 심상에 불과했으나, 텅 비어 있던 옆 벽에 새로운 피해자의 사진을 붙이고, 수정의 사진을 떼어 나란히 놓는 순간, 벽은 방이 되고, 방은 두 사건을 연결해 다음 국면으로 넘어가는 영진의 머릿속을 엿보는 기회가 된다. 그때, 벽을 다시 눈여겨봤다. 흑백 프린트의 사건자료 사이, 수정의 컬러사진은 영진과 함께 찍은 사진의 반쪽이고, 흑백 자료는 과거 자신을 보호해준 담당형사를 동료 경찰로 찾아가 일일이 복사했던 영진의 성장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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