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이 창간 25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자축의 시간을 갖기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너무나도 암담하다. 2019년 3월 마지막 주말 극장을 찾았던 183만 관객이라는 수치는 올해 3월 말 15만명대로 내려앉았고,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CGV는 전국 직영점의 30%에 달하는 35개 극장의 문을 닫았다. 현장의 상황도 심각하기는 매한가지다. 촬영이 중단되거나 지연되는 상황이 부지기수고, 어렵게 촬영을 이어가는 스탭들도 코로나19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관객이 극장을 찾지않고, 영화 제작이 중단되며, 수많은 영화산업 종사자들이 일터를 잃을 위기에 처한 2020년 4월은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 가운데서도 가장 엄혹한 시절로 기억될 것이다.
영화의 폐허에서, 국내 유일의 영상 주간지로서 <씨네21>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창간 25주년 기념 특대호로 제작한 1250호는 이처럼 무거운 질문을 안고 기획됐다. 우리가 사랑하는 영화, 몸담아왔던 산업이 전례 없는 위기에 처했을 때, 관찰자이자 기록자로서 <씨네21>은 무엇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1250호에 소개하는 수많은 특집, 기획 기사들로 그 답을 대신하려 한다. 최전선에서 영화정책을 점검 중인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인터뷰부터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영화수입배급사협회, CJ CGV 등 영화계 주요 단체의 전문가 8인이 참여한 긴급 좌담은 한국 영화산업이 직면한 상황을 저널리즘적 시각으로 조망한 기사다. <씨네21>이 창간한 해 태어난 1995년생 배우 김다미·김혜준과의 인터뷰와 영화계 각 부문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990년대생 영화인 50인을 조명한 특집기사는 한국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갈 미래의 영화인들을 지지하는 의미에서 기획했다. 넷플릭스행을 택한 <사냥의 시간> 기획기사는 코로나19 사태가 영화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놓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것이며, 세명의 페미니스트 권김현영·손희정·최지은이 나눈 지난 25년간의 한국 대중문화와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는 그간 우리가 놓쳐온 것들과 더 많이 주목해야 할 것들에 대해 되짚는 기회를 마련한다. 세어보니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만 70여명에 달한다. 결국 영화계의 흐름을 치열하게 진단하고 조명하며 영화에 대한 든든한 사유의 장이 되는 것이야말로 <씨네21>이 변함없이 추구해야 할 역할이라고 느낀다. 우리가 늘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들도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한다.
1250호는 5년 만의 개편호이기도 하다. 뉴스, 비평 지면을 확장했고 프리뷰 지면의 큐레이션 기능을 강화했다. 스트리밍으로 만날 수 있는 콘텐츠를 엄선하는 지면이 신설되었으며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김호영 한양대학교 프랑스학과 교수, 2020년 제11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강화길 소설가가 칼럼 필자로 합류했다. MUSIC 지면 또한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최다은 SBS PD, 이수정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기획운영팀장이 새롭게 꾸려나간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씨네리’는 <씨네21>의 방대한 사진 데이터베이스가 제공하는 발견의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이번 개편은 <씨네21>의 뉴미디어 플랫폼에서도 함께 진행되니 공식 인스타그램, 유튜브, 트위터를 눈여겨봐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