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사냥의 시간> OTT 개봉 보류한다
2020-04-10
글 : 김성훈
서울중앙지법, 영화의 해외 세일즈 맡은 콘텐츠판다의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 인용
<사냥의 시간>

개봉까지 산 넘어 산이다. 4월 10일 넷플릭스에서 전세계 공개될 예정이던 <사냥의 시간>을 당분간 볼 수 없게 됐다. 지난 4월 8일 서울중앙지법 제50민사부(이승련 부장판사)는 <사냥의 시간>의 해외 세일즈를 맡은 콘텐츠판다가 이 영화의 해외 배급과 관련해 배급사 리틀빅픽쳐스를 상대로 낸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씨네21> 1249호 포커스 기사 ‘<사냥의 시간>의 넷플릭스행이 의미하는 것’에서 보도된 대로, 코로나19가 장기화되자 리틀빅픽쳐스는 <사냥의 시간>을 넷플릭스에서 공개하기로 결정했고, 콘텐츠판다는 약 30개국 세일즈사에 선판매된 상황에서 리틀빅픽쳐스가 충분한 협의 없이 계약 해지를 통보해왔다며 가처분 소송을 낸 바 있다.

<씨네21>이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리틀빅픽쳐스가 콘텐츠판다와의 계약을 해지한 행위가 무효이고 그 효력을 정지한다”라고 판결했다. 리틀빅픽쳐스가 콘텐츠판다와의 계약을 해지하는 과정에서 “천재지변 등에 의한 사유로 계약을 해지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영화 제작이 이미 완료돼 콘텐츠판다가 해외 배급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지 코로나19로 인해 향후 만족할 만한 수익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사정이 그 이유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국내를 제외한 전세계에서 극장, 인터넷, (지상파, 케이블, 위성방송 포함한) 텔레비전을 통해 상영, 판매, 배포하거나 비디오, DVD 등으로 제작, 판매, 배포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공개해서는 안된다”며 “만약 이를 위반할 경우 리틀빅픽쳐스가 1일 2천만원을 콘텐츠판다에 지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사냥의 시간>은 한국이 아닌 해외에선 넷플릭스로 볼 수 없다.

법원의 판결이 나오자마자 4월 9일 넷플릭스는 <사냥의 시간> 공개를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넷플릭스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단을 존중해, 4월 10일로 예정되어 있던 <사냥의 시간> 콘텐츠 공개 및 관련 모든 행사를 보류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번 판결에서 쟁점이 된 건, 리틀빅픽쳐스가 콘텐츠판다와의 계약 해지 사유로 든 천재지변에 코로나19가 해당되는가였다. 강민주 이강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코로나19 같은 전염병 발병은 계약 해지 사유인 천재지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신청인(콘텐츠판다)의 소명이 충분히 인정되고, 가처분신청이 인용됨에 따라 피신청인(리틀빅픽쳐스)이 입는 손해와 가처분신청이 기각됐을 때 신청인이 입는 손해를 비교형량하여 신청인의 손해가 더 현저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그는 “앞으로 천재지변 사유를 해석함에 있어 전염병과 같은 위난을 계약상 해지 사유로 보기 어려운 선례가 될 수 있으므로, 계약 체결 시 이같은 사정을 감안하여 명확히 계약 해지 사유를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윤희 법무법인 원 변호사는 “천재지변 등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지 판단하려면, 어떠한 사건이 천재지변에 해당하는지 일률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그러한 사건으로 인하여 계약당사자가 자신의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는지 여부를 구체적인 사안 내에서 살펴야 한다”며 “이번 결정은 향후 코로나19로 발생 가능한 많은 사안에서 인용되리라 판단된다”고 전했다. 그는 “코로나19가 국가적 재난으로 천재지변에 해당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로 인하여 콘텐츠판다의 해외 배급이 불가능한 것인지, 당장 어렵다 하더라도 이후에 가능한 것인지 여부 등이 쟁점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번 법원의 인용 판결로 인해 콘텐츠판다가 칼자루를 쥔 가운데, 이 판결을 바라보는 영화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한 대기업 투자·배급사 임원은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명제에 충실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한 제작자는 “리틀빅픽쳐스가 콘텐츠판다와 계약을 맺은 해외 세일즈사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하겠다고 하는데도 <사냥의 시간>이 소생할 기회를 막는 건 영화계 정서에 맞지 않는 듯하다”고 얘기했다. 한편 콘텐츠판다는 “한국영화계 전체를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으며, 리틀빅픽쳐스와의 협상 채널은 열려 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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