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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영 정의당 미래정치특별위원회 위원장 – 영화의 언어를 정치의 언어로
2020-04-13
글 : 남선우
글·사진 : 오계옥

18년간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지내온 동생과 한집에서 살아가기 위한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의 감독이자 동명의 책을 펴낸 작가. 영화에서 동생과 함께 노래한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를 앨범으로 발매했으며 유튜브 채널 <생각많은 둘째언니>에서 자신을 통과한 수많은 생각을 나눠온 크리에이터. 그런 장혜영 감독에게 지난해 10월부터 붙은 정치인이라는 새 수식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카메라를 들고, 글을 쓰고, 가사를 읊으며 했던 이야기를 정치의 언어로, 더 분명한 결말을 향해 다시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21대 총선에 비례대표 후보로 나선 장혜영 정의당 미래정치특별위원회 위원장은 2년 전부터 그래왔듯, 장애인 24시간 활동지원제도 보장 및 탈시설기본법 제정을 제1의 목표로 삼았다. 이번 총선에 출마한 영화인은 장혜영 감독이 유일하다. “<어른이 되면>의 감독 장혜영을 응원했던 팬들을 정치적 지지자로 바꿔내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그를 여의도에서 만났다.

-요즘 <국회의 이해>라는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고.

=‘하우 투 서바이브 인 국회’ 매뉴얼이라고나 할까. (웃음) 21대 국회에 들어가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하고 싶었던 것이 있는데 그걸 위해 국회라는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벼락치기 중이다.

-원래 정치를 다룬 책을 좋아하지 않나. 유튜브 채널 <생각많은 둘째언니>에서 <버니 샌더스의 정치 혁명>,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소개한 적도 있고.

=그게 벌써 3년 전인데, 그때는 정치를 철학적인 관점에서 이해해보려 했다. 지금은 자기계발서나 족집게 참고서 보는 기분으로 책을 읽는다.

-새 관점이 움튼 시점으로 돌아가보자. 지난해 10월 정의당에 입당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에게 제안을 받고 한달여의 고민 끝에 결정했다는데, 한달간 무슨 생각을 했나.

=나 자신에게 세 가지 질문을 해야 했다. 내가 정치를 해야 할까, 그게 지금일까, 정의당에서일까. 공동체에 영향을 끼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가도록 하려는 욕망을 정치라 한다면, 다큐멘터리 제작도 굉장히 정치적인 작업이었다. 하지만 목표를 향해 시민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봤음에도 변화가 요원했다. 그 변화가 정치에서 막혀 있다면 내가 한번 해보자 싶더라. 굳이 나일 이유는 없지만 내가 아닐 이유도 없으니까. 그렇게 첫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왔고, 내게 삶은 늘 ‘지금’이기에 둘째 질문에 답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세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숙고가 필요했는데, 변화의 방향을 생각함에 있어 정의당과 나 사이에 최소한의 공통분모가 존재한다고 봤다. 당에서 내가 더 능동적인 변수가 되어 움직이겠다는 각오로 입당 제안을 수락했다.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에서는 한마디로 ‘지쳐서’ 국회의원이 되려 한다고 말했다. 납득이 되는 한편 역설적이다.

=지친 상태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은 이대로 있으면 망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도전을 결정한 후 고독하다는 기분이 들어 눈물이 나왔다고.

=영화 만들 때 느끼는 고독과도 비슷하다. 결과물로 증명하기 전까지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세계를 가지고 있는지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없다.

-고독을 어떻게 달래고 있나.

=고독을 꽃병에 꽂아두고 보려 한다. (웃음) 여의도에만 가면 괜찮았던 사람도 이상해진다고 하지 않나. 무엇을 위해 정치를 시작했는지 잊어버리고 고독에서 벗어나기보다 기억한 채로 살아가겠다고 생각하면 고독도 받아들일 만하다.

-입당 제의를 받기 전부터 장애인의 탈시설, 활동지원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왔다. 본격적인 총선 준비에 접어들면서 타협한 부분은 없나.

=아직까진 없다. 여전히 1호 법안은 ‘장애인 24시간 활동지원제도 보장’이다.

-코로나19 초기에 청도 대남병원 폐쇄병동에서 사망자가 연쇄적으로 발생하면서 정신장애인 인권 문제가 부각되기도 했다.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은 소위 정상성의 범주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청도 대남병원 환자들처럼 오래 병원에 있어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19 초기 확산을 거치면서 초점 영역이 확 그쪽으로 이동한 거다. 위기를 맞으면 가장 먼저 떨어져나가는 이들은 이미 사회에서 밀려나 있던 이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관심을 실질적인 변화로 이끌어내야 하는 의무가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워낙 많은 이슈가 있어 관심의 영역이 늘 이동하는데, 내가 항상 거기 남아 이 얘기를 계속하는 사람이 되려 한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출연해 스웨덴의 예시를 들어 장애인 탈시설의 현실 가능성을 조명하기도 했다. 한국에선 이상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보는 시선도 경험했을 테다.

=탈시설과 활동지원은 우리가 어떤 공동체에서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국격이 걸린 사안이다. 국가예산이 500조원인데, 3조원이면 해낼 수 있다. 의지의 문제다. 높은 가치를 가졌지만 실현이 어렵다는 걸 경험한 분들을 사회복지 현장에서 많이 만났다. 그들에게 희망고문이 되지 않도록 격려와 함께 변화를 이야기해야 한다.

-영화를 만들었고, 책도 썼고, 앨범도 발매했다. 힘을 보태고 싶은 문화 정책이 있다면.

=<어른이 되면>을 개봉시키면서 영화계의 수직계열화를 피부로 느꼈다. 영화인으로서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국면에서 생계를 위협받는 예술계 노동자들의 문제도 심각하다. 선별적인 예술인 복지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창작을 장려하면서 향유자들의 권리도 보장할 수 있게 저작권법의 균형을 맞추는 일에도 관심이 많다. 국회에 입성한다면 어떤 상임위에 가고 싶은지 많이들 묻는데, 1지망이 보건복지위원회, 2지망이 문화체육관광위원회다.

-공존을 통한 여정을 보여준다는 점을 들어 <씨네21>에 <호빗> 시리즈로 ‘내 인생의 영화’ 칼럼을 쓴 적 있다. 정치를 시작하고부터 자주 떠올리는 영화가 있나.

=켄 로치 감독의 <지미스 홀>. 가톨릭이 교육의 권한을 독점적으로 갖고 있던 아일랜드의 한 마을에서 공동체를 일구고 마을회관을 만든 사람의 이야기인데, 그의 행동이 신성모독이라는 신부에게 주인공은 “가슴속에 사랑보다 증오를 더 담는 것이 신성모독”이라 응수한다. 요즘 그 말을 자주 떠올린다. 그런데 칼럼을 다시 쓴다면 드라마 <킹덤> 시리즈로 쓰고 싶다. 이번 총선이 과거와 미래의 대결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의 인간과 좀비의 대결이 될 것 같다. (웃음)

-무사히 그 대결을 끝낼 수 있을지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을 듯하다. 잠시 <어른이 되면>에서 노래했던 것처럼 ‘무사히 할머니가 된’ 모습을 그려본다면.

=음악을 하고 있었으면 한다. 노래를 시작할 때와 끝낼 때, 사람들의 마음이 달라지게 하고 싶다. 죽기 직전까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했을 때 영화는 너무 힘들지 않겠나. 아, 영화음악은 할 마음이 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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