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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선' 김지영 감독, “독립 다큐멘터리는 최후의 보루”
2020-04-23
글 : 임수연
사진 : 최성열

<그날, 바다>의 김지영 감독이 스핀오프작 <유령선>으로 돌아왔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세월호의 진짜 침몰 원인을 파헤치는 다큐멘터리다. <그날, 바다>가 정부가 발표한 세월호의 ‘AIS’(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 선박자동식별시스템)가 조작된 데이터라는 점을 밝히고 영화 말미 ‘앵커침몰설’을 제기하며 마무리됐다면, <유령선>은 세월호 침몰의 숨겨진 진실을 가리기 위해 천개의 거짓말을 만들어낸 이들이 누군지 집요하게 추적한다. 김지영 감독은 “<그날, 바다> 이후 AIS 조작에 대한 수사에 들어갈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는데 당시 언론은 침묵했다”며 오직 희망을 걸 수 있는 건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시작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2기뿐이었다고 말했다. 누군가 데이터를 복사했다는 증거가 될 ‘유령선’의 존재를 발견했을 때, 그는 “첫 번째는 충격 그리고 5년 넘게 세월호를 조사한 사람으로서 이런 것도 미처 보지 못하고 빠뜨렸다는 자책을 느꼈다”고 한다.

-<유령선>은 세월호 선박의 블랙박스에만 있어야 할 데이터가 관제센터에서 발견된 점을 의아해하며 추적하다 스웨덴 군함선으로 위장한 유령선의 존재를 알아낸다. 그리고 중국에는 AIS 데이터를 조작해주는 AIS 기술자가 많이 있다는 데까지 이른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에게 <뉴스공장>이나 <다스뵈이다>에서 폭로하자고 제안하니 라디오가 아닌 영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하더라. 온갖 생각을 하면서 잠깐 짬을 내서 듣는 라디오나 팟캐스트 방송으로는 이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고, 아주 쉬운 설명과 그래픽을 덧붙여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원래 제목은 <메이드 인 차이나>였지만 중국쪽에 혐오 감정을 일으키려는 시도가 있는 무리에게 휘말릴 수 있었다. 그래서 <유령선>으로 제목을 바꾸었다. 처음에는 선박 번호를 유명 AIS 사이트에 검색해도 결과가 나와서 실제 스웨덴 군함선인 줄 알았다. 참사 당일 한국 해협에 스웨덴 군함이 있다는 게 이상해서 실제 위치 정보를 찾아보니 바다가 아니라 중국 선전시가 떴다. 홍콩 위에 있는 중국의 전자산업 중심지 한복판에 어떻게 배가 있다는 건가.

-실제 배우가 재현한 <그날, 바다>와 달리 <유령선>은 애니메이션으로 문을 연다.

=있었던 걸 찍은 게 아니라 뒤에서 입증된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자막으로도 뜬다. “다음 영상은 발견된 증거들을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한 내용”이라고. 그리고 실제 배우들에게 재현을 부탁하면, 사실적으로 찍을 때 묘하게 반감이 들 것 같았다. 또 실제 중국에 가서 로케이션을 하면 제작비가 상승하고 기계나 소품을 조달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한국 다큐멘터리 최초로 언리얼 엔진이라는 게임 엔진을 썼다. 공간과 소품을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고, 실시간 렌더링도 가능하다.

-전반적으로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애니를 시각적으로 보여준 부분이 많다. 세월호 데이터가 AIS 장비로 전달되는 경로를 설명하며 태아의 착상 과정에 비유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엄마와 아빠, 아들 비유는 내가 구상한 거다. 기술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어렵다며 관객이 겁을 먹을 수 있다. 귀엽고 동화적인 캐릭터가 나오면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 디자이너에게 앙증맞은 캐릭터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프롤로그는 스릴러처럼 만들고 갑자기 동화 같은 색채가 나오면 전체 스타일을 해치는 것 같다는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관객에게 팩트를 전달한다는 목적이 달성된다면 스타일의 일관성을 맞출 필요는 없다는 게 내가 가진 원칙이다. 또한 은연중에 사람들이 성적인 비유를 빠르게 흡수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GPRMC와 AIVDO는 블랙박스에만 있어야 하고 관제센터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이보다 더 쉽게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전문가들은 어떻게 검증하고 섭외했나.

=<유령선>에 나온 심우성 박사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AIS 전문가다. <그날, 바다>는 심 박사님과 직접 언급할 수 없는 익명의 교수님 두 분에게 검증을 받았다. 박근혜 정부에서 발표한 데이터를 보고 이런 데이터는 만들 수 없다고 하시더라. 그런데 영화에 AIS 전문가가 직접 출연하지 않으면 당연한 얘기를 해도 음모론이 제기된다. 그래서 선박해양플랜트 연구소를 찾아가서 심우성 박사님에게 <유령선>에 직접 출연해달라고 사정했다. AIS 국제규격한에서만 질문을 할 거라는 약속하에 허가를 받았다. 박근혜 정부에서 AIS가 정상이라고 했던 사람 중 진짜 전문가는 한명도 없다. 해양 종사자이거나, AIS 장비를 수입해서 파는 세일즈 엔지니어들이 검증을 맡았다.

-<유령선>이 <그날, 바다> 스핀오프 #1이라는 것은 #2가 있다는 것인가.

=새로운 조작 증거를 제시하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다. 이렇게 보여줘도 인정을 하지 못하는 건 심리적 장벽이 있거나 어떤 목적이 있는 거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지금까지 조사 결과를 통합하는 이야기 그리고 작정하고 조작 수사를 막으려고 했던 이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바뀔 수 있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안 중 하나다. 스핀오프 #2일 수 있고, 내 바람은 그 작품이 파이널이 됐으면 한다.

-<경향신문>이나 <뉴스타파>에서는 <그날, 바다>의 주장을 반박했다.

=<경향신문>이 <그날, 바다>를 공격하며 코멘트를 인용한 김관묵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는 미생물학 전공이다. 특별메시지는 아무 때나 나오는 거라고 했는데, 그게 틀렸다는것을 증명하기 위해 브레멘대학교의 논문이나 국제규격을 보여줄 수 있다. <뉴스타파>에서는 2014년 10월에 엄청난 오보를 냈다. 누락 구간에서 새로운 데이터를 발견했다고. 그건 ITT(Integrate) 데이터였다. 관제센터에서 레이더 데이터와 AIS 데이터를 오인할 수 있으니 이를 섞어서 좌표를 합성한 퓨전 데이터다. 세월호의 AIS 데이터가 들어오지 않는 상태에서 나온 ITT 데이터는 앞 데이터를 갖고 예측한 결과를 보여준다. 데이터가 끊긴 구간에서 추세 데이터는 의미가 없다. 이들이 ITT 데이터를 보여줄 때 나온 전문가들은 앞서 언급한 세일즈 엔지니어, 그리고 이상길씨다. 이상길씨는 진도VTS(해상교통관제센터)를 관리하는 일을 했으며, 진보VTS 서버를 해킹한 전력이 있는 전과자다. 또한 우리는 수신 시간 기준 데이터로 전송 간격을 해석한 적이 없는데 <그날, 바다>가 이런 주장을 했다며 엉뚱한 내용으로 영화의 내용을 반박했다. 나는 <뉴스타파>가 제기한 내용들에 대해서, 그쪽 데스크 담당자와 그쪽이 데려오는 전문가가 나온다면 함께 토론할 생각도 있다.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의의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진보언론까지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언론이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시대에 최후의 보루는 독립 다큐멘터리다. <유령선>을 만들지 않으면 데이터 조작 수사는 다 날아가는 거다. 취재원을 잘못 만나면 아무리 괜찮은 언론사도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우리도 초창기에는 가짜 전문가들에게 속은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그들이 잘못됐다는걸 알았다.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는 오랜 시간, 아주 깊이 조사할 수 있을 만큼 조사한 다음에 그 결과를 담는데 언론은 그럴 수 없다. 거기서 이미 상대가 안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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