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 말 5월 초마다 찾아오는 연휴에 대한 기억은 전주라는 도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맘때가 되면 어김없이 <씨네21> 기자들은 전주국제영화제에 갈 채비를 했다. 화창한 날씨와 영화의 거리를 가득 메운 관객. 극장에서는 화제의 신작 영화가 온종일 상영되며 수많은 맛집들이 행인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더랬다. 이 익숙하고도 즐거운 풍경을 올해는 누릴 수 없다는 자각이 생각보다 큰 상실감을 안겨주는 것 같다. 이번호 국내뉴스에서 자세하게 소개했지만, 5월 28일 개막하는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며 ‘무관객 영화제’로 운영될 예정이다. 그동안 해외 유수 영화제들이 오프라인 행사를 취소하고 온라인 상영을 계획한다는 소식을 지면을 통해 전해왔으나, 매년 연례행사처럼 찾던 국내영화제에 실질적이고 직접적으로 불어닥친 변화야말로 2020년의 국제영화제가 처한 위기를 절감하게 한다. 영화제의 근간이었던 극장과 관객이 사라진 자리에 남아, 영화제 관계자들은 저만치 멀어져버린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고 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영화적 체험을 선사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전주국제영화제 이후 줄줄이 예정되어 있는 여타의 국내영화제들 또한 이러한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쩌면 2020년은 극장과 관객의 관계, 나아가 영화적 체험의 의미를 재정립하는 원년의 해가 될지도 모른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사냥의 시간>을 보면서도 비슷한 맥락의 생각을 이어갔다. 집에서 TV로 <사냥의 시간>을 관람하며 어쩐지 미완의 영화를 보고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사운드디자인에 각별히 공을 들였다는 이 영화가 관객을 위해 준비한 영화적 체험을, 공간의 한계로 인해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다. 이주현 기자가 진행한 윤성현 감독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그는 음악, 앰비언스, 폴리, 비주얼적인 영역, 배우의 호흡과 표정처럼 대사가 아니라 영화이기에 가능한 장치들이 극대화된 형태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성취하고자 하는바를 얻기 위해 한국 상업영화의 평균 제작 기간을 훌쩍 뛰어넘는 시간을 소요했다. <사냥의 시간>의 넷플릭스행으로 극장에 최적화된 영화적 체험을 관객이 누리길 바랐던 윤성현 감독의 바람은 얼마간 좌절되었지만, 상업영화의 문법으로 매끈하게 재단된 기획영화의 경계를 넘어선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신인감독의 야심은 지금의 한국영화계에 필요한 치기라고 믿는다.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점도 적지 않았다. <사냥의 시간>은 촘촘한 밀도와 긴장감으로 설계된 장면만큼이나 안일하고 헐겁게 연출된 대목도 많다. 그러나 영화의 성패를 떠나 <사냥의 시간>이 시도하고자 했던 것과 지금의 한국 영화산업에 남긴 질문은 코로나19 이후 더욱 역동적으로 변모 중인 영화의 의미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남긴다고 생각한다. 이주현 기자의 리뷰, 송경원 기자의 평론을 시작으로 다음호에서는 산업적으로도 숱한 논란을 낳았던 <사냥의 시간>이 남긴 것들을 보다 자세히 살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