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과잉의 시대다. 10대에서 40대까지 실로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돌이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 무대인 음악 방송은 물론 예능, 영화, 뮤지컬, 드라마, 연극 할 것 없이 종횡 무진 활약 중이다. ‘걔도 아이돌이었어?’ 소리를 일주일에도 몇번씩 주기적으로 듣는 세상에서 그러나 우리는 정작 아이돌이라는 역할 안에 어떤 사람이 들어 있는지는 모른다.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아이돌이니까. 우리 삶 속에 숨 쉬듯 스며들어 있는 그들이 무엇으로 숨을 쉬는지, 우리는 영원히 알 도리가 없다. 핫펠트의 《1719》는 그런 역할놀이에 어느새 무뎌진 우리의 머리와 심장에 저릿한 전기충격을 가하는 앨범이다. 주지하다시피 핫펠트의 본명은 박예은. 2007년 원더걸스 원년 멤버로 가요계에 데뷔한 인물이다. 멤버 구성이 몇번이나 바뀐 바람 잘 날 없던 팀의 역사를 변함없이 지켜낸 유일한 멤버였던 그는 소속사 JYP와의 계약 해지와 함께 곧바로 핫펠트 본연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17년 팀 해산 이후 발표한 《MEiNE》(2017)의 <새 신발>과 <나란 책>, 《Deine》(2018)의 <위로가 돼요>와 <Cigar>는《1719》의 첫 단추를 꿰어준 트랙이자 앨범의 훌륭한 브리지 넘버들이다. 그룹으로서의 10년을 마무리하는 설렘과 두려움을 새 신발로, 아이돌로 활동하며 거세된 것처럼 굴어야 했던 20대 여성의 욕망을 말랑 자두로 표현했던 그의 솔직함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낸 첫 정규앨범에 이르러 <Life Sucks>로 증폭된다. 《1719》는 3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친아버지와의 악연을 마치 ‘응어리를 빼내는 것처럼’ 토해내는 이 첫 트랙을 시작으로 각각 음악가 핫펠트와 31살 예은의 하루를 무심히 상상하게 만드는 더블 타이틀 <Satellite>와 <Sweet Sensation>을 지나 아직 서툰 사랑 고백 <How to love>로 부드럽게 연착륙한다. 앨범에 실린 14곡을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앨범 제목 《1719》의 중의적 의미 그대로 2017년에서 2019년까지의 그의 매일이, 17살에서 19살까지의 질풍노도와 같은 고민의 시간 그대로가 눈과 귀앞에 그려진다. 음악으로 소리치고, 욕하고, 애원하고 좌절하다 끝내 사랑해버리는, 한때 정상의 아이돌이었던 한 여자의 이야기. 그 자체로 귀하고 또 귀하다.
PLAYLIST++
핫펠트 < Wherever Forever>
2014년 발표한 첫 미니앨범 《Me?》의 수록곡. 지금은 핫펠트 이름으로 다소 듣기 어려워진 밝고 경쾌하며 에너지 넘치는 일렉트로팝 트랙이다. JYP 시절 퍼블리싱팀과 작곡가로 계약한 첫 소속가수이자 현 소속사 아메바컬쳐와 계약한 첫 여성 아티스트로서의 존재감의 씨앗을 엿볼 수 있다.
원더걸스 <Baby Don’t Play>
‘밴드 원더걸스’의 출발을 알렸던 앨범《REBOOT》의 첫곡이자 핫펠트의 자작곡(작곡가 홍지상과 공동 작곡). 온통 80년대 무드로 점철되었던 앨범을 박력 넘치게 열어주는 곡으로, 당시 걸 그룹의 밴드 도전을 흐린 눈으로 바라보던 적지 않은 이들에게 노래의 베이스만큼이나 묵직한 한방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