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가 20주년을 맞았다. 2000년 5월 20일, 칸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뒤 21세기 걸작 영화 목록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이 작품의 시작을 기념하는 의미로 지난 5월 20일 각종 SNS 플랫폼에는 수많은 사진과 글이 쏟아졌다. <화양연화>와 처음으로 극장에서 만났던 순간을 추억하며 <씨네21> 홈페이지에서 아카이브 기사를 검색하다가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다. 지아장커 감독이 2001년 <화양연화>에 대해 쓴 리뷰다. 그는 20년 전 영화 <플랫폼> 상영을 위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폐막작의 감독으로 부산에 온 왕가위와 조우했다고 한다. 지아장커는 부산에서 <화양연화>를 보지 못했으나, 영화제를 찾은 젊은 관객이 십중팔구 손에 든 <화양연화>의 팸플릿을 보고 이 영화가 밀레니엄 시대의 새로운 유행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화양연화>는, 지아장커의 예상대로 21세기 초반에 유행처럼 감돌던 멜랑콜리한 무드를 상징하는 영화로 남았다.
지아장커가 <씨네21> 앞으로 보내온 글은 영화제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영화제에서, 영화는 극장에서 상영되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화제라는 특정 공간을 발빠르게 찾은 눈 밝은 관객의 반응을 통해 시류를 형성하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받은 뒤 보다 대중적인 영화시장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른바 ‘극장, 관객, 영화’라는 삼위일체가 영화제를 존속하게 하는 힘인 것이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이 완벽한 삼각구도에 균열이 생겼다. 불행 중 다행은 영화제를 운영하는 이들의 신속하고도 치열한 고민으로 극장, 관객, 영화를 둘러싼 새로운 형태의 관계망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양상을 ‘영화제’를 테마로 한 이번호에서 보다 자세하게 만날 수 있다.
먼저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개막하는 영화축제인 전주국제영화제는 4개월간의 대장정을 선언했다. 경쟁부문 영화의 심사상영은 영화제 기간 동안 전주에서, 관객을 대상으로 한 상영은 OTT 플랫폼 웨이브에서, 극장 상영은 영화제 폐막 이후 장기적으로 전주 일대의 극장에서 진행한다. 한정된 기간 동안 그해 가장 뜨거운 영화들을 몰아 볼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영화제의 짜릿한 매력이었다면, 오랜 시간을 두고 서서히 영화 팬들에게 다가갈 영화제는 어떤 느낌일까 싶다. 매년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데일리를 발행했던 <씨네21> 또한 올해는 온라인 데일리로 관객과 만난다.
김성훈, 배동미, 조현나 기자가 속한 전주 데일리팀은 영화제 개막일인 5월 28일부터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초청작 한국 감독들과의 인터뷰를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와 <씨네21> 홈페이지와 지면, SNS 채널 등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전주 이후 이어질 인디다큐페스티발과 무주산골영화제, 평창국제평화영화제와 관련된 소식 또한 이번호의 다양한 지면에 담았다. 제각기 다른 운영방식을 택한 이들 영화제가 축제가 끝나고 난 뒤 어떤 시사점을 남길지 궁금하다. 아무쪼록 선구적인 도전으로 전세계 영화제에도 많은 귀감이 될 국내영화제들의 무사 개최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