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40주년 영화제 ‘시네광주 1980’ 개막작인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5·18 당시 광주의 상황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비밀리에 제작된 ‘광주 비디오’를 한데 모은 작품이다. <서산개척단>(2018)을 통해 박정희 정권 시절 납치돼 무임금으로 개척 사업에 동원된 피해자들을 조명했던 이조훈 감독이 직접 비디오 제작과 배포에 관여한 주역들을 만났다. 5월 19일 전세계 최초로 광주항쟁의 상황을 알린 <NHK> 기자, 독일 공영방송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작품을 준비하게 된 계기가 있나. 주로 1985~87년 사이에 전국 대학가, 성당 등에서 상영된 광주 비디오를 소재로 삼은 것도 색다른 접근이다.
=광주 출신의 40대인 나, 그리고 이제 40대로 접어든 5·18의 역사. 그 접점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하고 싶은 말들이 생겼다. 내가 광주의 역사를 이해한 과정엔 미디어의 영향이 컸다. 광주버스터미널에 거리에서 맞아서 얼굴이 다 무너진 피해자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던 시절이었다. 50대 이상의 선배 세대들은 그때 현장에 있었고, 얼마 전 <김군>을 발표한 강상우 감독 같은 30대는 역사로서 광주를 되새긴다. 그 사이에 있는 내가 과거의 영상 클립들을 다시 확인하고 재편집하면 당시에 우리 세대가 5·18에 갖고 있었던 거리감이 그대로 투영될 거란 생각에 작업에 착수했다.
-유년 시절에 각인된 5·18의 기억은 어떤 것인가.
=초등학교 2학년 때 휴교령이 내려서 털렁털렁 가방 메고 다시 집에 돌아왔고 하늘에는 헬리콥터가 날아다녔다. 계엄령이 떨어진 지 이틀 만에 전남도청 앞 고시학원의 국사 선생님이었던 아버지가 낮에 일찍 귀가하셨다. 계엄군한테 맞고 들어오신 거였다. 학원의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창문으로 도망친 아이들도 있다고 하셨다. 다시 학교로 돌아갔을 때, 선생님이 혹시 휴교 기간에 밖에서 무언가 본 것이 있냐고 아이들에게 질문했다. 한 친구가 손을 들더니 트럭 뒤편에서 피로 쓴 ‘전두환, 찢어 죽이자’ 문구를 봤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이 “앞으로 절대 말하지 말아라. 넌 아무것도 본 게 아니다”라고 주의를 줬다.
-뉴욕 한인이 만든 <오 광주!>, 영화 <택시운전사>로 유명해진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제작한 <기로에 선 한국>, 힌츠페터의 영상을 재편집한 <5월 그날이 다시 오면>과 그 제작진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목표는 당시의 광주 비디오를 집대성하는 것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연락이 닿지 않는 곳들도 있었다. 1982~83년경에 캐나다에서 제작된 영어 더빙판 비디오인 <5월 광주>도 있다. 교민들에게 요청해봤지만 연결이 어려워서 작품에 담지 못했는데 그게 아직도 아쉽다. 조총련(재일본 조선인 총연합회)쪽은 국가보안법 때문에 접촉이 안되니 <NHK> 프로듀서 인터뷰를 넣는 식으로 최대한 많이 모아보려고 했다.
-TV, VCR 기기로 비디오를 다시 보는 장면을 연출하고, 현재 시점의 인터뷰도 오래된 필름 화면처럼 처리했다. 처음엔 자료 화면과 새로운 촬영분을 구분하기 쉽지 않더라. 어떤 의도였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두 교황>에서 영감을 얻었다. 40분이 지날 무렵에 인물의 회상과 함께 과거 장면이 삽입되는데, 처음에는 4:3 흑백 화면으로 시작했다가 회상이 끝나고 현재로 돌아올 무렵 과거의 기억이 스르르 컬러로 변하고 화면도 넓어진다. 일종의 이음새 기능을 하는 것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나 역시 이 다큐멘터리의 재료가 옛날 비디오라는 점을 고려해 일종의 연결점에 해당하는 이야기들은 오래된 화면 질감으로 처리해 자연스러운 고리를 만들고자 했다.
-감독 자신, 그리고 이제는 노년이 된 출연진이 과거의 일을 직접 재연하도록 연출해 드라마를 만들어낸 점이 흥미롭다.
=다큐멘터리는 자료 화면과 인터뷰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관객의 편견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다. 특히 당대에 비디오를 제작하고 배포했던 사람들이 세월이 흘러 직접 자신의 스토리를 다시 재연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봤다. 명동, 광주 망월동, 대구 일대에 그들을 직접 모시고 간 경험은 내게도 감회가 새로웠다.
-아픈 기억을 들춰내고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작업일 수도 있는데, 의외로 출연자들이 재연과 회고를 통해 자긍심을 되찾고 치유받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선생님들이 더 신난 모습이었고 적극적으로 리얼리티를 추구하셨다. (웃음) 다 잊힌 줄 알았고, 다 지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누군가가 그 역사를 기억하고 다시 재연해달라고 하니 뜨거웠던 마음이 되살아난 게 아닐까. 삶이, 생활이 지쳐갈 나이에 젊은 시절의 의지를 상기할 수 있어 고마워하는 분들이 많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다큐멘터리스트, 기자, 카메라맨, 기록과 전달을 위해 애쓰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위로이고 감독 자신에게도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티베트인의 연쇄 분신 항거를 잠입 취재한 적 있는데, 그때 3개월간 중국어 과외를 받고 소수민족인 것처럼 위장 생활을 했다.이 작품은 내년에 선보이기 위해 마무리 중이다. 그렇게 보면 나도 광주에서 힌츠 페터나 <CBS> 기자들이 했던 것과 비슷한 속성의 작업을 한 셈이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한발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었고, 팀원 모두 보람을 느꼈다.
-40년 전 5월 21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전남도청 앞에서 벌어진 무차별 발포의 기록이 사라져 있다.
=결국 21일에 도청에서 왜 그렇게 무차별 발포를 했는지에 관한 궁극적인 대답이 필요한 문제다. 이번 영화에 덧붙이기에는 몸집이 너무 큰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은 비디오의 존재와 사라진 4시간에 대한 문제 제기까지만 다루고, 그 4시간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는 다음 작품에서 말할 계획이다.
-10·26사건부터 짚은 다음 5·18과 6·10민주항쟁, 촛불시위까지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타임라인을 연결하는 구조를 취했다.
=미래를 견지하는 구성이 중요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확실해지지 않으면 나쁜 역사, 선동, 가짜뉴스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흐지부지 넘어갔던 것들에 대한 확실한 진상 규명과 처벌이 필요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법정 출두 장면을 영화 마지막에 보여준 것도 그래서다.
-올해 데뷔 20주년이기도 한데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되나.
=사실 나는 극영화가 찍고 싶어서 영화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애니메이션으로 데뷔했고, 우연히 해외 다큐멘터리에 한글 자막 넣는 작업을 하다가 다큐멘터리와 사랑에 빠졌다. 2년 전부터 SF호러 장르의 극영화를 준비 중이다. 정보라 작가의 단편집에 실린 <저주 토끼> 판권을 계약했다. 악인의 단죄, 징벌, 저주 코드가 중요한 작품이고 지금 내 바람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돼 8개 에피소드마다 악당 1명씩 처벌하면 좋겠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