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전주국제영화제]
‘보드랍게’ 박문칠 감독 - 위안부 피해자 개개인의 삶을 더 알아가도록
2020-05-29
글 : 김성훈
사진 : 최성열

<보드랍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고 김순악 할머니의 삶을 그려내는 다큐멘터리다. 1928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가난한 유년기를 보내던 김순악이 일본군에 끌려간 뒤 해방이 되자마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 군산, 여수를 떠돌고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라고 대한민국 사회에 목소리를 내기까지의 과정을 애니메이션과 여성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재구성됐다. 사적 다큐멘터리 <마이 플레이스>(2013), 사드(THAAD) 배치를 반대하는 경북 성주군 주민들의 투쟁을 그린 <파란나비효과>, 10주년을 맞은 대구 지역 퀴어퍼레이드를 다룬 단편 다큐멘터리 <퀴어 053>을 연출한 박문칠 감독은 이 영화가 “김순악 할머니를 포함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을 자세히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박문칠 감독

-김순악 할머니를 어떻게 알게 됐나.

=대구에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이라는 단체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록하는 작업을 제안받았다. 시민모임은 대구·경북 지역에 사는 피해자 할머니들과 오랫동안 교류를 해왔던 단체라 관련된 자료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책이나 증언집, 할머니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들을 살펴보다가 김순악 할머니의 사연이 눈에 들어왔다.

-김순악 할머니를 포함해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된 자료들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던가.

=여느 사람들처럼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잘 몰랐는데 이 자료들을 읽으면서 피해자들이 살아온 삶이나 ‘위안부’ 인권운동이 거쳐온 과정들을 제대로 알게 됐다. 할머니들이 저마다 각기 다른 성격과 개성을 가지고 있어 하나로 묶기 어려워 통계 자료나 피해자들을 그룹으로 다룰 게 아니라 개개인의 삶을 파고들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중에서 김순악 할머니의 어떤 점이 인상적이었나.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나고 자라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고향으로 가지 못한 채 서울, 군산, 여수를 떠돌며 험난 세상을 겪지 않았나. 위안부로 인한 피해가 전쟁 당시에 끝난 게 아니라 이후에도 2차, 3차 피해가 계속됐다. 그러면서 40, 50년 동안 자신의 피해 사실에 대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긴 세월이 있지 않았나. 피해자 할머니들이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하고 보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그점에서 김순악 할머니는 당당하시고, 멋지며, 별명대로 '깡패 할매’ 같은 면모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면서 마음 씀씀이는 정이 많고 여린 면이 있어 매력적이었다.

-영화는 김순악 할머니의 삶을 특별히 포장하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데.

=할머니의 삶을 다룬 자료와 증언들을 보니 연출이 개입하거나 그의 삶을 포장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그의 삶이 극적이라 내가 받은 느낌을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하면 되겠다 싶었다. 후반작업에서 분량 때문에 덜어낸 부분은 있지만 굳이 개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시민모임 회원들이나 위안부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할머니의 증언집을 직접 읽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할머니의 삶을 완벽히 재연하는 건 불가능하다. 감독인 나의 해석, 낭독한 여성 활동가들의 해석, 할머니의 삶을 애니메이션으로 펼친 애니메이터(이재임 작가)의 해석이 제각각이지 않나. 사실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낭독해 각기 다른 결을 만들어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여성활동가들이 낭독함으로써 할머니의 과거와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현재가 연결된 느낌이 들더라.

=말씀대로 김순악 할머니의 삶을 현재로 가져오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이 옛날 얘기고,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점에서 피해 사실이 과거에 박제된 측면도 있는데, 할머니들의 삶이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그것과 어떤 식으로든지 마주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었고, 그걸 시도하고자 했다. 과거의 텍스트와 현재의 목소리가 만나면 낭독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이 일어날 수 있겠다 싶었다.

-영화를 보니 많은 여성들이 낭독을 하면서 위로를 많이 받는 듯하다.

=그걸 보면 여성들이 사회에서 겪는 젠더 폭력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낭독이 끝난 뒤에는 긴 인터뷰를 했고, 편집 과정에서 잘려나간 부분들이 많은데, 그들도 ‘위안부’ 피해자와 인권운동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피해자 개인을 개별적으로 만나는 경험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런 만남을 통해 위로를 받고 공감하는 경험을 간접적으로나마 한 셈이고, 그점에서 이번 영화는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공개됐을 때 어떤 반응과 결과가 나올지 예상하지 못한 채 시도한 작업이라 자신은 없지만 말이다.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김순악 할머니에 대한 생각이 바뀐 부분이 있나.

=특별히 바뀌었다기보다는, 그의 삶을 100% 이해할 수 없고 그의 증언 중에서 상호 충돌하거나 모순이 있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생전의 그와 교류했던 여러 활동가들이 한 얘기를 들어보면 그를 기억하고 이해하는 모습과 해석이 조금씩 달랐다. 나 또한 영화를 만들면서 김순악이라는 사람에 대해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그의 삶을 해석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점에서 조금이라도 그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최근의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윤미향’ 사태를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나.

=위안부 인권운동을 지지하고 응원했던 사람들처럼 많이 착잡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라 토론되고 있는데, 가급적이면 특정인이나 특정단체를 흠집내거나 비난하지 않고, 생산적이고 건강한 방향으로 논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사회가 이 사태를 계기로 위안부 인권운동이 심기일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같이 고민했으면 싶다. <보드랍게>가 현재 상황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 운동이 처음 출발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과정들을 되돌아보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배급과 관련된 고민이 많을 것 같다.

=당장 배급해야 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할지 고민이 크다. 위안부 인권운동을 해오신 분들을 영화제에 초대해 함께 축하하고 격려하는 자리가 있었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 코로나19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해 아쉽다. 평소 영화라는 매체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유통되고, 관람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현재의 변화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전작인 <마이 플레이스>가 사적 다큐멘터리이지 않았나. 가족사, 대학 시절 등 평소 다루고 싶었던 사적 다큐멘터리 소재가 몇 있는데 아직은 뭐가 먼저가 될지 모르겠다.

-<파란나비효과> <보드랍게> 등 공적 다큐멘터리를 연달아 만든 탓에 사적 다큐멘터리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큰가.

=그런 건 아니지만 계속 내 안에 있는 이야기니까 소재가 숙성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무슨 얘기를 하게 될지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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