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아유]
'결백' 홍경 - 초록의 시간
2020-06-09
글 : 남선우
사진 : 오계옥

지난 2월, <씨네21> 표지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를 찾은 배우 배종옥이 기자들에게 강조했다. <결백>이 개봉하면 꼭 배우 홍경을 인터뷰하라고. 선배 배우가 먼저 실력 있는 신인이라고 콕 집은만큼 기대하며 영화를 봤는데, 미리 찾아본 얼굴은 간데없었다. 큰 키에 해사한 표정을 한 배우 홍경은 등을 굽혀 엄마를 찾는 시골 청년 정수로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정수는 똑똑한 누나 정인(신혜선)이 박차고 나간 고향 집에서 일찍이 늙어버린 엄마 화자(배종옥)와 함께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한 인물로, 10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자폐성 장애인. 자신의 기분에서부터 영단어 ‘새드’와 ‘티어스’를 연상해 툭툭 그 스펠링을 뱉다 아무렇지 않게 결정적 증언을 쏟아내는 그는 영화 속 인물들과 관객을 내내 긴장시킨다. “여성 인물들이 중심이 되는 서사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는 배우 홍경은 조심스럽게 단어를 고르며 첫 도전을 되새겼다.

-<결백>을 촬영하는 동안 밤마다 박상현 감독과 문자를 주고받았다고 들었다. 무엇이 고민이었나.

=장애를 가진 인물을 연기했는데, 영화가 이러한 설정이 부각되는 내용은 아니다. 내 연기가 자칫 튀지 않도록, 다른 인물들과 잘어우러지면서도 캐릭터를 살릴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나눴다.

-복지관이나 특수학교를 방문해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던데.

=복지관에서 봉사도 하고, 특수학교에 가서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사람을 만났는데, 등하교 시간에 맞춰 기다리다 아이들이 부모와 어떻게 소통하는지 보기도 했다. 그 모습이 비장애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걸 보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더라.

-애써서 인물을 만들어간 게 느껴진다. 특별히 잘하고 싶어 노력한 신이 있다면.

=변호사인 누나 정인과 준비한 답변으로 증인신문을 하다가 상대검사의 위압감에 눌려 정수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마스터>에서 호아킨 피닉스와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 눈을 깜박이지 않고 대화하는 신을 떠올리며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고 싶었는데, 촬영 전에 밥도 못 먹고 긴장했다.

-배역을 준비할 때도 그렇고 하나에 꽂히면 마음먹고 파고드는 스타일 같다. 이병헌 배우의 출연작을 모두 몰아 보고, 자비에 돌란 감독의 작품도 편당 10번 이상 돌려 봤다던데.

=폴 토머스 앤더슨도 좋아한다. 최근작 <팬텀 스레드>도 좋았고, <펀치 드렁크 러브>를 특히 좋아한다. 오래전부터 혼자 있을 때 책 읽고 영화 보는 걸 좋아했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데, 무언가를 보거나 그릴 때는 오직 그것에 집중해 빠져들 수 있어 좋다.

-최근에 어떤 책을 읽었나.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었는데, 강화길 작가의 <음복>이 인상 깊었다. <엘리트 독식 사회>도 재밌게 읽었는데, 서구 백인 중심으로 이뤄진 엘리트들의 위선을 꼬집는 책이다.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 말이 길어질 것 같아 참아야겠다. (웃음)

-연기에 꽂힌 건 어떤 계기에서였나.

=어느 순간 영화마다 새 인물이 되는 저 배우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해 연기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떻게 그랬나 싶은데, 고등학생 때 필름메이커스에서 배우를 구하는 공고를 보고 영화를 찍으러 다니기도 했다.

-정식 데뷔는 드라마 <학교 2017>이다.

=그때 연기를 보면 너무 쑥스럽지만, 그 나이대에 할 수 있는 역할을 했다는 게 좋더라. 내가 좋아하는 <죄 많은 소녀> <벌새> 같은 작품처럼 10대, 20대가 중심이 되는 작품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럼 나도 출연을 많이 할 수 있을 테고. (웃음)

-드라마부터 첫 장편 상업영화까지, 차근차근 배우로서 경력을 쌓아가는 중이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최근 크랭크업한 <보이스>(가제)에서 작지만 임팩트 있는 역할로 등장한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에 선정된 <정말 먼 곳>으로 국내 영화제들도 찾을 예정이다. 영화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앞으로도 영화를 많이 하고 싶은데, 욕심과 여유의 균형을 지키며 기회를 잡고 싶다.

영화 2020 <결백>

TV 2019 <동네변호사 조들호2: 죄와 벌> 2018 <라이프 온 마스> 2018 <라이브> 2017 <저글러스> 2017 <학교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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