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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보리' 김진유 감독 - 있는 그대로의 농인을 보여줄 수 있도록
2020-06-11
글 : 임수연
사진 : 백종헌

<나는보리>는 김진유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밑거름이 된 작품이다. 코다(CODA: Child Of Deaf Adult, 청각장애를 가진 부모를 둔 자녀)로서 ‘수어로 공존하는 사회’ 행사에 참석했던 그는 연사로 나온 현영옥 농인 수어 통역사가 “어렸을 때 소리를 잃는 게 소원이었고 그 소원이 이루어져서 농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말에 크게 공감했다는 감독은 청력을 잃은 척 연기하는 소녀, 보리(김아송)의 이야기를 구상하게 됐다. 보리는 청각장애를 가진 아빠, 엄마, 그리고 남동생과 함께 살며 어떤 외로움을 느낀다. “우리 가족이 1년 중 유일하게 다 함께 외출할 때가 단오장이었고, 영화에서처럼 장을 둘러보고 폭죽놀이도 보고 무언극 관노가면극도 봤다. 길을 잃거나 경찰서에서 자장면을 먹는 에피소드도 전부 실제 있었던 일이다.” 때문에 김진유 감독이 성장한 강원도 강릉이 촬영지가 되는 건 필연적이었다.

-‘장애’를 다루는 태도에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가족이 농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간과하는 부분이 있을지 모른다는 자기검열도 있었을 텐데.

=그동안 장애를 다룬 영화들을 보며 불편한 지점이 많았다. 저렇게까지 표현해야 할까, 저렇게까지 감정을 끌고 가야 하나 싶은 작품이 많았다. 장애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이 <나는보리>의 출발점이 됐다. 실제 농인들과 만나면 말할 때 굉장히 생동적이면서 거친 호흡을 갖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다. 실제 농인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낼 것인가, 아니면 이런 모습에 익숙지 않은 청인들이 느낄 거부감을 고려해 다른 표현을 고민할 것인가, 라는 갈등이 있었다. 농인들의 세계를 익숙한 형태로 보여주고자 한 영화가 관객에게 불편함을 안긴다면 그건 실패다. 수어 선생님을 비롯해 주변 농인들에게 여러 번 여쭤보니 “우리는 못 듣는다. 감독님 편하신 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괜찮다”고 하더라.

-문장 형태로 자막을 다는 대신 단어별로 꺾쇠괄호로 묶어 표기한 이유가 있나.

=수어는 단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수어를 잘 모르는 분들도 이를 쉽게 이해하기를 바랐다. 또한 문장으로 자막을 쓰면 관객이 배우의 동작이나 수화의 제스처를 보기보다 그냥 문장을 읽게 될 것 같았다. 후반부로 갈수록 자막은 점점 문장 형태로 바뀐다. 처음에는 보리가 수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어느 순간 소리를 잃고 싶다며 농인이 되고, 비로소 보리가 수화에 익숙해질 땐 문장 형태로 자막이 나와서 그의 심리 변화를 보여주는 것을 의도했다. 더불어 수어가 나오기 때문에 영화적으로 뭔가 특별한 시도를 하기보다는 기존 영화의 방식대로 표현해야겠다고 판단했다. 가령 보리와 정우(이린하)가 슈퍼마켓에 갔다 돌아오는 신은 원테이크로 찍었다. 연출부 친구들 대부분 수화가 잘 보이도록 컷을 나눠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지만, 수어 역시 하나의 언어니까 원테이크 같은 클래식한 방식으로 보여줘도 충분할 거라고 봤다.

-청각장애인 대상으로 상영을 많이 한 걸로 아는데 관객 반응이 어땠나.

=농인들은 영화를 볼 때 보리보다 청각장애를 가진 남동생 정우에게 집중한다. 정우에게 더 애정을 쏟고 그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겼다. 사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다. 보리와 정우를 모두 얘기할 수 있는 제목을 지었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했는데 주인공을 소녀로 한 이유가 있나.

=단편 <높이뛰기>(2013)는 아들과 엄마에 대한 이야기였다. 다음에는 아빠와 딸의 관계를 그려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영화에 영감을 준 현영옥씨 역시 여성이었고, 시나리오를 쓸 당시 영화계에 여성 배우가 설 자리가 없다는 기사가 많이 나오던 분위기도 영향을 줬다.

-강릉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때부터 영화감독을 꿈꿨나.

=어디서도 말한 적 없던 건데, 공부를 진짜 못했고 당시에 비보이를 했다. (웃음)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자각을 한 후, 당시 매일같이 보던 영화를 일로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할리우드에서 나온 스릴러영화를 좋아했던 내가 고2 때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자원활동을 하면서 머릿속에 있던 영화의 틀이 깨졌다. 거기서 영화 세미나를 하면서 영화 보는 나름의 시선을 갖게 됐다. 20살 때 뭔가 벗어나고 싶은 욕구 때문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예능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 FD 일을 하며 영상이 어떻게 제작되는지 기초적인 부분을 배웠다. 영화제 덕분에 새롭게 알게 된 영화의 세계를 20대 초까지도 잘 이해하지 못하다가, 연출자의 마음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점차 영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에서 출퇴근하며 해안 초소로 군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돼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군 생활이 끝나갈 때쯤 강릉시 영상미디어센터가 생겼고, 그곳에서 보조강사로 일하게 됐다. 청소년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면서 영화 만들기의 재미를 다시 느꼈다. 서울에서 잠깐 상업영화 현장 일을 할 때보다 미디어 교육을 하며 의욕이 더 생겼다.

-지역영화 지원사업 덕분에 <나는보리>를 만들 수 있었다고.

=2017년 이전엔 영화진흥위원회, CJ 문화재단 등에서 주최하는 공모 사업에 뽑히지 않으면 영화를 만들 수 없었다. 지역 영화인들이 서울에서 영화를 하는 이들과 경쟁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다. 강원영상위원회 장편제작지원과 한국영상위원회의 지역영화 개발사업이 서로 매칭이 되면서 두곳에서 각각 5천만원씩, 총 1억원의 제작비를 지원받았다. 이 기회가 아니었다면 <나는보리>를 만들지 못했을 거다. 서울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좀더 사건 중심이라면, 지역 기반 영화는 어떤 개인에 집중하는 면이 있다. 지역마다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 만큼 영화의 다양성에도 보탬이 된다.

-추후 지역영화 지원사업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일단 예산이 좀더 늘어나 더 많은 작품이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장비도 지원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지원하는 장비 외에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지역 영화인들에게 나눠줄 수 있지 않을까. 최근에 영화진흥위원회가 공모한 지역영화 후반작업시설 구축지원사업에서 부산·대구·강릉 중 최종적으로 부산시가 선정됐다. 이미 많은 것을 갖고 있는 부산시보다는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대구시가 선정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결과가 좀 아쉽다. 지역 영화인들이 각자의 터전에서 버티며 꽁냥꽁냥 영화를 만들고 있는데, 새로운 작품들이 많다. 서울에서 보지 못하는 신선한 뷰를 담을 수 있는 로케이션도 지역영화가 가진 강점이다.

-2017년 창립한 사회적 협동조합 ‘인디하우스’에서 단편영화 제작과정 교육을 맡고, 지난해 춘천의 장우진 감독, 원주의 박주환 감독과 힘을 모아 강원독립영화협회를 만들었다. 강원도 기반 영화인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강릉시네마테크, 정동진독립영화제,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강릉시 영상미디어센터 등 강릉에서 영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인디하우스는 이 그룹이 모여 협동조합을 만들어 영화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나, 라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인디하우스에서 목소리를 내면서 성사된 제작지원사업들도 있다. 그리고 지역마다 상황이 다르다. 그에 맞게 지난해 강원독립영화협회에서 영화학교라는 이름으로 춘천에서 단편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원주에서 평론쓰기를, 강릉에서 단편영화제작과정 수업을 했다. 이러한 다름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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