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그(프란츠 로고브슈키)는 독일군의 공습이 시작되자 비점령지대인 프랑스 마르세유로 도피하고, 다리를 다쳐 생사를 헤매는 작가 하인츠와 함께 기차에 오른다. 긴 시간, 지루함을 참지 못한 게오르그는이동하면서 하인츠가 새로 완성한 원고를 읽는다. 마침내 프랑스에 도착한 후 게오르그는 하인츠의 죽음을 확인하고 검문 요원들의 눈을 피해 혼자 도망나온다. 거처할 곳을 찾아 떠도는 그의 등을 누군가가 반갑게 두드리는데, 게오르그가 돌아보자 여인은 자신이 찾던 사람이 아니었다는 듯 웃음을 거두고 빠르게 사라진다. 이후 레스토랑과 멕시코 대사관 등 게오르그가 옮겨가는 장소마다 같은 여인이 잠시 들렀다 사라진다.
한편 멕시코 대사관에서는 게오르그를 하인츠로 오해하고 하인츠를 위해 준비한 멕시코행 선박표와 여행 자금을 건넨다. 게오르그는 하인츠의 아내에게 그의 죽음을 알리고 그녀와 아들 드리스(릴리언 뱃맨)를 주기적으로 방문한다. 천식이 있는 드리스의 병세가 깊어지면서 게오르그는 독일어를 할 수 있는 의사 리차드(고데하르트 기제)를 방문하는데, 그 곁엔 계속 마주쳐온 여인 마리(파울라 베어)가 서있다. 곧이어 게오르그는 마리 역시 마르세유로 넘어올 자신의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트랜짓>은 2차 세계대전 시기, 그리고 현재로 이어지는 난민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감독이 전작 <내가 속한 나라> <엘라> <바바라> <피닉스>를 통해 꾸준히 다뤄온 독일인들의 사회적 불안에 관한 논의가 <트랜짓>으로 이어진다. 다만 나치를 피해 도망간 난민들의 도착지가 오늘날의 마르세유라는 점에서 그려지는 풍경이 상당히 이질적이고, 이 이질감이 시대를 초월한 유럽의 난민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트랜짓>에서 난민 문제를 논하는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태도는 상당히 조심스럽다. 게오르그, 리차드, 마리 세 사람의 상황을 전하는 방법도 내레이터라는 존재를 통해서다. 난민 문제와 관계없는 이를 내세워 인물들과 거리를 두고, 그의 목소리를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 형태로 상황을 전한다. 칼레의 난민수용소가 철거되던 시기에 영화를 준비하던 페촐트 감독은 바닷가로 떠밀려온 시신들을 차마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고 한다. “촬영할 당시 프랑스는 여전히 내가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고, 특수경찰들이 거리에서 촬영하는 순간 내가 난민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그려볼 수 있었다.” 그는 “피난 보따리를 든 사람이 마르세유 항구를 걷다가 호텔에 들어가 ‘파시스트가 오니 여길 떠나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을 상상했고, 순간 “난민들의 상황, 공포, 트라우마, 한때 마르세유에 넘쳐났던 그들의 역사가 단번에 이해됐다”고 말한다. 그는 난민을 자신의 “내부 깊은 곳에 존재하는 정체성”이라고 정의하며, 자신이 상상한 이미지를 영화 속 게오르그로 형상화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 영화는 난민인 세 인물을 유령에 빗대 표현한다. 게오르그는 하인츠의 신분을 빌려서만 현재의 자리에 머물 수 있고, 마리는 그런 게오르그의 주변을 배회한다. 마리는 함께 멕시코로 넘어갈 남편을 기다리지만 남편은 마리에게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다. 배에 올랐지만 결국 마르세유를 벗어나지 못하는 리차드까지, 세 인물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도피에 실패한다. 계속 공간을 옮겨가지만 옮기는 과정조차 여의치 않은 신원 불명의 유령들. 영화는 세 인물을 통해 존재조차 불분명한 난민들에게로 관객의 관심을 돌리고자 한다. 페촐트 감독의 <운디네>에서도 합을 맞춘 바 있는 프란츠 로고브슈키와 파울라 베어는 마르세유를 떠나지 못하며 상대가 떠난 자리를 더듬는 게오르그와 마리의 시선을 섬세하게 연기해냈다. 난민 문제의 과거와 현재를 엮어낸 페촐트 감독의 성취가 놀랍다. 제68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CHECK POINT
유망한 두 배우의 만남
<프란츠>로 2016년 베니스국제영화제 신인여우상을 거머쥔 파울라 베어와 <트랜짓>과 <인 디 아일> 두 영화로 동시에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프란츠 로고브슈키가 주연을 맡았다. 좋은 합을 보여준 두 사람은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운디네>에도 함께 캐스팅됐다.
1940년대 소설의 재해석
동독 작가 아나 제크헤르스가 나치하에서 망명 생활을 시작하며 쓴 소설 <트랜짓>을 원작으로 한다. 다만 감독은 극의 배경을 1940년이 아닌 현재로 옮겨 재창조했다.
오바마 리스트의 그 영화
<트랜짓>은 미국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그해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영화들의 리스트를 뽑는 일명 ‘오바마 리스트’에 <기생충> <결혼 이야기> 등과 함께 뽑혀 SNS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