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부력' 로드 라스젠 감독 - 관객이 노예노동의 실상을 체험하도록
2020-07-02
글 : 송경원
<부력> 촬영현장에서 차크라역을 맡은 배구 삼 행과 함께 있는 로드 라스젠 감독(오른쪽). 사진제공 콘텐츠마인

<부력>은 캄보디아와 타이 등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일어나는 노동착취와 아동학대의 실제 상황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문제적 소재도 눈길을 끌지만 이를 장르적인 문법으로 풀어낸 감독의 연출력이 예사롭지 않다. 민감한 이야기를 전시하거나 소비하지 않으면서도 감각적인 연출은 망망대해 위 지옥 같은 상황을 관객이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서스펜스가 요동치는 가운데 목적지를 잃지 않는 뚜렷한 시선. 호주 출신의 로드 라스젠은 <타우 세루>(2013) 등 이미 여러 단편영화를 통해 실력이 검증된 감독으로 <부력>은 그의 장편 데뷔작이다. 늦은 만큼 믿음직스런 데뷔작을 선보인 로드 라스젠 감독에게 동남아시아의 노예노동 문제를 영화화하기까지의 과정을 물었다.

-첫 장편 연출작이다.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일어나는 노동착취 상황은 당신에게는 먼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첫 영화로 이 이야기를 고른 이유는 무엇인가.

=어업 노예의 실태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여럿 있었지만, 극영화는 <부력>이 최초다. 무분별한 착취와 살인이 자행되는 타이 어업계의 현실은 소위 ‘현대판 노예제’로 불리며, 그 규모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수년 전부터 이 영화를 기획하며 잊힌 아이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영화는 정치적이다. 어떤 방식이건 변화가 일어나길 바란다. 영화를 통해 이러한 실상을 보다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나의 목표다.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에큐메니컬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건 감독으로서 특별한 경험이었다. 물론 상을 타기 위해서 영화를 만드는 건 아니지만, 힘들게 고생하면서 영화를 만든 스탭과 기쁨을 나누는 건 항상 즐겁고 보람 있는 일이다.

-다큐멘터리가 어울릴 소재인데 극영화로 결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다큐멘터리는 생존자들의 육성으로 그들의 경험을 들려준다. 반면 <부력>은 극중 인물을 따라가면서 심상치 않은 환경을 간접 체험하게 되는 영화다. 극영화 형식을 취함으로써 관객 역시 저인망어선에 탑승하여 비인간성의 극한을 체험케 하고 싶었다. 캄보디아, 타이, 미얀마 배우들은 물론 실제 노예 생활을 한 사람들이 배우와 엑스트라로 출연했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진정성 있게, 진실 되게 관객에게 다가가길 바랐다.

-차크라 역을 맡은 삼 행은 연기 데뷔작으로 2019년 마카오국제영화제 최우수 남자배우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새삼 놀란 건 주연배우 삼 행이 아직 14살밖에 안됐다는 사실이다. 사실 처음 캐스팅 단계에서는 경험치 차원에서 좀더 나이 있는 배우를 고려했다. 하지만 삼 행은 어린 나이에도 모든 걸 갖추고 있었다. 캄보디아 어린이 보호단체 ‘그린 게코 프로젝트’에서 자라면서 교육을 받고 사회 적응을 돕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만났는데, 그는 처음부터 카메라 앞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리허설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감독과 배우가 서로 신뢰를 갖는 일이었다. 삼 행 덕분에 감정적으로 중요한 장면들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었다.

-무자비한 선장 롬난 역의 타나웃 카스로는 타이의 배우 겸 감독이다. 본인이 직접 어선을 탄 경험이 있다고 들었다.

=타나웃 카스로는 영화에 공포와 생생함을 더해주었다. 그 역시 11살 때 저인망어선에서 노동착취를 당한 경험이 있었고, 2년 정도 고생했다고 들었다. 그런 경험 덕분에 감정적인 표현이 좀더 디테일해졌다.배우의 연기도 정말 훌륭했지만 제작진에게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장면을 함께 만들어갔다.

-모니 로스가 맡은 케아는 복합적인 인물이다. 한없이 순박하고, 차크라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어른이지만 동시에 폭력적인 상황에 내몰려 점점 폭력의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잘 보여준다.

=케아 역의 경우 별도로 오디션을 보지 않았다. 모니 로스 배우에게 곧장 시나리오를 전달하면서 출연 여부를 물었고 다행히 모니 로스가 캐스팅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촬영장에서 그가 연기할 때면 모두가 그를 본받으려고 했다. 그의 연기력은 장면을 살려내고 영화에 활기를 부여하는 원동력 중 하나였다. 모니 로스는 심리적으로 황폐해지는 케아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캄보디아 최고의 배우가 아닐까 싶다.

-배우들의 전반적인 연기 지도를 어떻게 진행했는가. 실화영화지만 바라보는 방식은 날것의 느낌이 살아 있다. 동시에 전반적으로 장르적인 연출에 충실하다.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나 실감나서 거리낌 없이 날것 그대로라고 받아들여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다. 사실 배우진들은 이런 이야기가 익숙하다. 누군가에게 납치되고 노예가 되는 경우를 종종 봐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들이 이 영화가 더욱 진정성 있고 사실처럼 느껴지게 하는 데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저마다 마음으로 느끼고 공감하는 경험을 가지고 용감하게 연기에 몰입했다. 언제 집으로 돌아갈지 알 수 없기에 맞닥뜨리는 감정은 한마디로 절망에 가깝다. 게다가 잠 한숨 마음 편히 잘 수도 없는 상황이라 육체적으로도 피폐해져 있다. 생존 자체가 문제가 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의 품으로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 가운데 선상에서 노예 생활을 하며 계급적 폭력에 노출되는 과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다. 어업계 전반에 걸친 구조와 어업이 이뤄지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참담한 상황을 보여주고 벗어날 수 없는 극한의 괴로움을 다루고 있지만, 한편으론 인물을 극한까지 몰아붙이거나 괴롭히진 않는다.

=관객에게 얼마나 자세히 보여줄 것인가에 관한 문제는 어려운 과제다. 이 영화에서 내가 취한 연출 방식은 폭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보다는 이후의 상황을 관객이 상상하는 방향으로 암시하는 쪽이었다.

-영화에서는 인물을 집중적으로 따라가는 대신 전반적인 맥락과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배경을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부력>의 접근방식은 영화라는 매체로 이슈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그늘진 세계의 실상을 체험하게 하는 데 있다. 동남아 일대의 아동인권 착취는 여러 가지 이유와 다양한 배경의 결과다.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정치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구체적인 방안에 관해서는 나 역시 문외한이다. 가장 중요한 건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의 목소리로 문제의 실상을 알리는 것이다.

-이후로도 캄보디아 난민을 상대로 한 폭력 행위가 이어지고 있다고 들었다. 현재 상황은 어떤가. 이번 영화로 캄보디아 사회에 일어난 변화가 있는지.

=<부력>을 통해 타이 노동의 실태가 널리 알려지는 것이 제작진의 희망이다. 내가 취재했던 많은 생존자들이 타이로 떠난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다. 만약에 위험성을 조금이라도 인지했더라면 결코 타이행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라는 말이다. 섣부른 결정으로 타이행을 택하는 이들이 이 영화를 보고 잠깐 멈춰 서서 다시 한번 고민하는 계기가 된다면, 나는 이 영화가 성취할 바를 이뤘다고 생각한다.

사진제공 콘텐트마인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