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사 속에 작지만 나만의 자리를 하나 차지하고 싶어.” 지난 7월 6일 세상을 떠난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코네가 살아생전 아내 마리아에게 종종 말하곤 했던 소망이라고 한다. 모리코네의 부재를 전세계가 애도하는 지금, 영화음악사에서 그가 차지했던 자리는 모리코네의 짐작보다도 훨씬 거대했다는 것을 절감한다. 20세기의 위대한 영화음악가였던 엔니오 모리코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서는 잡지 한권을 온전히 할애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고심 끝에 <씨네21>은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아가씨> 등의 영화음악으로 잘 알려졌으며 지난 2011년 엔니오 모리코네 내한 당시 박찬욱 감독과 함께 모리코네를 직접 인터뷰한 조영욱 영화음악감독에게 추모의 글을 부탁했다. 그는 차기작 준비로 여념이 없는 와중에도 엔니오 모리코네에 대한 애정으로 흔쾌히 취재에 응해줬다. 조영욱 음악감독에게 지면을 빌려 감사의 뜻을 전한다.
조영욱 음악감독이 꼽는 엔니오 모리코네 영화음악의 미덕은 미니멀하고 심플하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장면이 바뀌면 조 바꿈을 하기 마련인데 엔니오 모리코네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조영욱 음악감독은 말한다. 뉴욕대 영화과 교수 안토니오 몬다가 집필한 인터뷰집 <엔니오 모리코네와의 대화>에서 그와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조성 음악 속에서 화성적인 조합의 가능성은 거의 바닥이 났다”고 말하는 모리코네는 심플함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그는 “바흐나 모차르트가 집요하게 고집했던 단순함”을 추구하고자 했고, 세 음으로 구축된 단순한 화성을 즐겨 사용했다. <옛날 옛적 서부에서>의 그 유명한 하모니카 연주 장면은 하나의 악기와 간결한 멜로디만으로 주인공의 강렬한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모리코네 영화음악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존경스러운 점은 그의 음악이 매 순간 최고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프로페셔널리즘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다. “항상 감독을 만족시키려고 욕심을 내고 또 그래야만 내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는 모리코네의 장인정신이야말로 영화보다 더 오랫동안 기억되는 영화음악을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닐까 싶다.
조영욱 음악감독에 따르면, 엔니오 모리코네는 내한 당시 한국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내비쳤다고 한다. 기획기사를 읽으니 한국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에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영화음악의 선율이 흐르는 순간을 끝내 목도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세기의 영화음악 거장은 작별을 고했지만, 우리에겐 다행스럽게도 아직 애도의 시간이 남아 있다. 7월 16일부터 전국 20개 CGV에서 진행되고 있는 엔니오 모리코네 추모 기획전과 8월 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릴 <엔니오 모리코네 시네 콘서트>를 통해, 또는 각자의 플레이리스트를 통해서다.
그렇게,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은 영원히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