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본명선언'의 '흔들리는 마음' 도용에 관한 부산국제영화제의 입장문 발표와 다큐포럼2020 세미나
2020-07-31
글 : 김소미
사진 : 백종헌
다큐포럼2020에 참석한 원태웅, 양영희 감독(왼쪽부터).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가 수상작에 따라붙은 무단 도용 문제에 관해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올해 1월, 양영희 감독이 자신이 연출한 일본 <NHK> 다큐멘터리 <흔들리는 마음>(1996)의 9분40초를 홍형숙 감독이 <본명선언>(1998)에서 무단 도용했다는 글을 <씨네21>에 보내온 지(1240호, 포커스 ‘영화인의 창작 윤리, 이대로 좋은가’) 약 6개월 만의 일이다. 지난 7월 24일 부산영화제 공식 SNS 계정에 올라온 입장문은 크게 네 가지 내용으로 구성됐다. 1998년에 <본명선언>이 부산영화제 운파상을 수상할 당시의 정황 및 홍형숙 감독의 윤리적 책임에 대한 인정, 수상 철회 여부, 양영희 감독을 향한 사과, 그리고 지난 2월 7일 열린 비교상영회(주최 김명화 양영희)에서 홍형숙 감독의 동의 없이 <본명선언>을 제공한 것에 대한 사과 등이다. <흔들리는 마음>과 <본명선언>을 나란히 상영하고 양영희 감독이 직접 발언한 비교상영회에 참석했던 전양준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지금으로서는 개인이나 영화제 차원의 입장 표명은 할 수 없다”고 답한 바 있다. 입장문에 따르면 지난 4월 1일에 양영희 감독이 요청한 <본명선언>의 재심사를 영화제가 수락했고, 이후 영화계 단체들과 저작권 전문 변호사의 자문을 받는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22년이 지난 지금 다시 제기된 이 논란에 부산영화제는 큰 책임을 통감하며 양영희 감독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부산영화제는 입장문에서 “원본 영상의 사용 여부와 정확한 분량, 그리고 사용 맥락과 목적에 대한 양측의 구체적인 계약이나 합의 없이, 원본의 컬러 영상이 흑백으로 전환된 채 아무런 인용 표시 없이 사용”된 점, 양영희 감독의 독립된 작품을 ‘8mm 취재 양영희’로 소개한 점을 들어 “<본명선언> 제작진에 윤리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홍형숙 감독이 짊어져야 할 윤리적 책임이있다”고 짚었다. 그러나 영화제의 시상에 있어 법적 시효(통상 10년)가 만료된 점을 이유로 수상 철회에 관해서는 “법적으로 유효한 답변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번 부산영화제의 입장문은 홍형숙 감독의 도의적 책임과 양영희 감독에 대한 사과의 뜻을 밝히면서도 법적 다툼의 여지는 남겼다. “기획 단계에서 일정한 협의가 있었으나”, “최초의 협의를 어떻게 볼 것인지는 법적 논쟁이있을 대목” 등의 표현이 그것이다. 이에 과거 홍형숙 감독이 속해 있던 서울영상집단은 해당 SNS 게시글의 댓글을 통해 “사과인 듯 사과 아닌 피해자 가슴에 또 한번 못질하는 글”이라고 반박했다. 최초 협의 과정이 있었다고 명시한 점, 공소시효를 내세워 책임을 회피한 점, 홍형숙 감독에 대한 사과를 포함한 점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부산영화제가 각종 영화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있었음에도 “한국독립영화협회는 이 사건에 대해 협회원들에게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으며 이 침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있다”고도 지적했다.

한편 <본명선언>의 <흔들리는 마음> 무단 도용 논란은 젊은 창작자들의 고민과 성찰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월26일 열린 다큐멘터리 저작권과 창작 윤리에 관한 특별포럼, ‘나와 카메라: 양영희 감독과의 대화’는 공교롭게도 이틀 앞서 부산영화제가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장내 분위기에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창작자, 영화계 관계자, 관객 등 일반에 공개된 이번 특별포럼은 다큐포럼2020(김동령, 명소희, 박경태, 박현준, 원태웅, 장윤미 감독 등)이 주최했다. 양영희 감독의 문제 제기 이후 사건을 알게 된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이 교내 비교상영회를 연 것을 시작으로, SNS를 통해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젊은 다큐멘터리 창작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모임이다. 양영희 감독은 1995년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홍형숙 감독과 처음 만난 이후 재일 동포로서 취재와 자료 협조 요청에 응하게 된 과정, 운파상 수상 이후 홍 감독측의 대응 등 22년 전의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했다(관련 내용은 <씨네21> 1243호, 포커스 <흔들리는 마음>과 <본명선언> 비교상영회 ‘인용과 도용 사이, 상호 협의인가 소통의 부족인가’ 참고). 부산영화제의 입장문에서“기획 단계에서 일정한 협의가 있었으나”라고 표현한 부분에 대해서는 홍형숙 감독과 강석필 프로듀서가 <흔들리는 마음>의 제작, 저작권을 갖고 있는 <NHK>와 당시부터 일체 합의가 없었다는 점을 이유로 반박했다. 시의성 있는 주제와 소재는 사회적 재산이기도 하다는 시각에는 “사회적 재산에 가까운 아이디어라고 해서 프레더릭 와이즈먼 영화를 저작권 허가도 없이 마음대로 쓰지 않는다. 당시의 내가 무명의 감독이었기에 일어난 측면도 있다. 설령 나쁜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도용은 도용이다”라고 답했다.

다큐포럼2020 창작자들의 말

“젊은 감독들의 신속한 행동력에 희망을 느낀다.” 양영희 감독은 22년 만에 다시 공론화한 이유로 “영화에 대한 예의” 그리고 “미래의 창작자들은 자유로웠으면 하는 바람”을 말하며 다큐포럼2020에 고마움을 표했다. 세미나 이후 <씨네21>은 다큐포럼2020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저작권 및 초상권에 대한 예술계의 미흡한 의식, 한국 독립영화계의 집단적 침묵과 모순, 위력의 작용 그리고 두 영화에서 드러난 태도의 차이 등에 관한 문제의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중 일부를 옮긴다.

원태웅 “<흔들리는 마음>의 등장인물 김성미씨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본명선언>의 핵심 인물로 사용되었고 <본명선언>은 왜곡된 방식으로 김성미씨의 캐릭터를 창조했다. 양영희 감독은 자신이 원본 테이프를 넘겨주지만 않았더라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김성미씨에게 진심 어린 사죄의 마음을 비쳤다. 이는 양영희 감독이 등장인물을 어떤 태도로 바라보는지 짐작할 수 있는 지점이어서 인상 깊었다.”

명소희 “다큐멘터리 감독이 스스로 자신이 너무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선 안된다, 는 양영희 감독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내 영화가 세상을 바꿀 힘을 가질 수도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다간 자칫하면 카메라의 폭력성을 깨닫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동령 “<본명선언> 사건은 비평의 태만이 함께 불러온 참사이기도 하다. 우리가 창작 윤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주로 인권적 측면만 문제삼지만 다큐멘터리는 촬영하는 방법 혹은 구성 자체가 ‘미학과 윤리’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박현준 “교내에서 비공식적으로 학생들이 주최해 상영회를 가졌다. 이걸 왜 하는지, 어떤 목적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부터 심지어 표절은 맞는데 꼭 상영회를 해야겠느냐는 질문을 받으며 절망스럽기도 했다. 선생님에게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무엇이 이 사안에 대해 말하기조차 어렵게 하고 침묵을 유지하게 하는 구조를 만들었는지 의문스럽다.”

장윤미 “일종의 위계에 의한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초보 비디오저널리스트라 화면이 흔들려 흑백 처리했다는 홍형숙 감독의 인터뷰, 일방적으로 ‘불충분하지만 협의를 했다’는 주장도 그렇다. 내가 이 문제를 폭력으로 느낀 건 미투운동을 겪고, 소속된 곳에서 위계에 의한 성폭력 문제가 발생하는 등 일련의 과정에서 내 경험을 되새기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경태 “독립다큐 진영은 언제나 한국 사회의 소수자의 언어를 대변해왔다. 아니 그렇게 믿어온 것 같다. 22년 전 김동원 감독은 ‘독립다큐의 도덕성과 사회적 사명’을 이유로 표절을 문제 제기한 <중앙일보>와 양영희 감독을 질타했었다. 양영희 감독 죽이기에 공모를 해왔던 관계자들은 이제 조용히 넘어가주길 기다리는 분위기인 것 같다. 독립다큐 진영이 그동안 주장해왔던 가치는 ‘객관성’, ‘회색지대’, ‘침묵’, ‘은폐’를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 도전받고 있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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