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자》는 시작부터 카오스다. 가수는 유키카. 본명은 데라모토 유키카로 13살 때부터 일본에서 모델, 성우 활동을 해온 일본인이다. 2016년 걸 그룹 리얼걸 프로젝트 활동, 2017년 JTBC의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믹스나인> 출연 등으로 경력을 쌓아가던 그가 지난해 처음 솔로로 발표한 싱글 <네온>은 본격적으로 ‘시티팝’을 표방한 노래였다. 70~80년대 일본 버블 시대가 낳은 가장 낭만적인 문화유산인 시티팝이 수십년의 세월을 거슬러 한국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게 되고, 그 장르를 재현하는 일본 가수가 발표한 첫 정규 앨범 제목이 ‘서울여자’라니. 이 정도면 꽤 신선하고 멋진 카오스다. 앨범 《서울여자》는 발매 전 차례로 공개된 싱글 <네온> <좋아하고 있어요> <Yesterday>의 레트로 무드를 이어가는 동시에 ‘꿈을 안고 바다를 건너 서울에서 살아가는 유키카의 이야기’로 전체적인 틀을 잡았다. 인트로 <From HND to GMP>부터 앨범의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앨범은 수록된 전곡을 통해 낯선 도시의 이방인이 겪는 꿈과 사랑의 기승전결을 산뜻하게 그려낸다. 오로지 음악으로 완성해낸 이 서사의 힘은 소속사 대표이자 프로듀서인 ESTi에서 모노트리, 모스픽, 오레오, TAK 등 지금K팝신에서 레트로 무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작곡진의 노력과 재능이 시너지 효과를 낸 결과다. 다만 옥에 티 하나. 앨범을 들을수록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이 훌륭한 흐름을 단순히 ‘사랑을 찾아 서울에 온 일본 여성의 슬픈 러브 스토리’로 주저앉힌 인터루드의 존재가 아쉽고 또 아쉽다. 씁쓸한 뒷맛을 잡고 다시 <서울여자>를 듣는다. 80년대 일본의 코카콜라 광고처럼 그게 뭐든 지금 넘쳐흐르는 것만은 분명한 도입부, 한일 모두 자국 음악이 가장 융성했던 시절이 남기고 간 풍요의 흔적, 불황에도 아랑곳없이 서울의 밤을 밝히는 네온사인이 마구잡이로 뒤엉켜 만든 신비롭고 오묘한 환상의 세계. 이 환상은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좀처럼 쉽게 결론내리기가 어렵다.
PLAYLIST+ +
유빈 <숙녀>
유키카보다 1년 앞선 2018년 여름, 유빈이 발표한 시티팝 무드의 싱글. K팝 레트로 붐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원더걸스 출신이니만큼 전반적인 컨셉에서 곡 완성도, 소화력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노래였다. 《都市女子》의 수록곡 <도시애>의 표절시비로 노래 발매 자체가 무산되는 사건이 일어나 가요계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강수지 《흩어진 나날들》
시티팝으로 대표되는 강렬한 첫인상과 달리 앨범《서울여자》는 전반적으로 한국의 90년대 가요에 대한 오마주로 읽히는 곡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특히 <그늘>의 경우 강수지와 윤상의 호흡이 절정을 이뤘던 90년대 초반 미디움 템포 발라드 공식을 충실히 따르는 노래로, 앨범 발매 후 K팝 팬들 사이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최근 ‘황토벤’이라는 별명으로 더 친숙한 프로듀싱팀 모노트리의 작곡가 황현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