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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낮고 어두운 소리로 희망을 - 막스 리히터 《Voices》
2020-08-13
글 : 최다은 (SBS 라디오 PD)

막스 리히터가 현대음악계의 슈퍼스타라는 데에는 누구도 이견을 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의 《Recomposed by Max Richter: Vivaldi, The Four Seasons》 음반은 22개국의 클래식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고, 《The Blue Notebooks》는 <가디언>에서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클래식 앨범’에 선정됐다. 대표곡 <On the Nature of Daylight>는 2006년부터 현재까지 무려 8편의 영화에 삽입됐는데, 국내에서는 <컨택트>에 등장한 걸 계기로 주목받더니 급기야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클라이맥스 장면에서도 사용됐다.

단순한 화성과 선율로도 감정을 극한으로 치닫게 하는 뛰어난 작곡 능력이 먼저지만, 그가 낯선 현대음악 장르에서 독보적인 스타가 된 데에는 누구보다 시류를 빠르게 반영하는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 2015년에 발표한 《Sleep》은 잠 한번 제대로 자보는 게 소원이 된 현대인들을 위한 8시간짜리 자장가 앨범으로, 그는 이 긴 음악을 라이브로 공연하는 파격까지 선보였다. 공연장에는 객석 대신 침대가 설치된 진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여유와 재미에 목말랐던 관객은 ‘자고 싶을 때 자고 듣고 싶을 때 듣는 콘서트’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그는 9번째 스튜디오 앨범 《Voices》를 통해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익숙한 메시지를 새롭게 전한다. 세계인권선언문을 다양한 언어로 낭독하고 이를 독특한 구성의 현악오케스트라와 결합시킨 방식이다. 클라우드를 통해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목소리 그리고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올드 가드>의 주연 키키 레인의 음성이 담겨 있다. 첼로와 베이스의 비율을 일반적인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수만큼 대폭 늘려 ‘낮고 어두운 소리로 희망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반영했다. 작곡가의 앨범 설명에는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언급되지만 사실 이 앨범은 관타나모 수용소의 실태를 알게 된 10년 전부터 기획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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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lue Notebooks》

막스 리히터가 내레이션을 음악에 활용한 경우는 이전에도 있었다. 이라크 공습을 앞두고 반전메시지를 담아 만든 이 앨범에는 배우 틸다 스윈턴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실내악 규모의 편성으로 이뤄져 있고, 수록곡의 일부는 <바시르와 왈츠를>에 사용되기도 했다. 2004년 도이체 그라모폰 발매.

《Three Worlds: Music From Woolf Works》

막스 리히터의 첫 번째 무용음악 앨범. 영국 로열발레단이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 <올랜도> <파도>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 <Woolf Works>를 담당했다. 첫 트랙에는 1937년 라디오를 통해 자신의 에세이를 낭독했던 울프의 육성이 담겨 있으며 피아노, 바이올린 등 전통적인 악기를 앰비언트 사운드와 결합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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