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마녀 배달부 키키>를 다시 봤다. 앉은자리에서 끝까지, 한번도 쉬지 않고 보았다. 다른 생각도 별로 하지 않았다. 이 영화를 처음 본 날로부터 수십년이 흘렀고, 그사이에 몇번이나 반복해서 봤지만, 그래서 다음에 어떤 장면이 나올지 거의 외우다시피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설레고 조마조마했다.
어린 시절, 나는 나이를 먹으면 영화 한편을 다 보는 일이 힘들어진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내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책 한권을 한번에 다 읽는 일, 영화 한편을 다 보는 일, 드라마 한 시즌을 쉬지 않고 보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원고지 10매를 빠르게 채우는 일을 내가 ‘어렵다’고 생각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물론… 이걸 특별히 불안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려 노력한다.) 그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역시, 그렇게 생각하려 노력한다.) 그저 이전만큼 몰입하지 못할 뿐이지 새로운 이야기를 접하는 일은 즐겁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 <마녀 배달부 키키> 같은 영화를 볼 때면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겁 없이 글을 막 써나가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의 작업 과정은 한없이 더디고 지루하지만, 소재를 훨씬 침착하게 다루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대로 발전한 모습이라 여기고 있다. 다만 이제는 이 방식을 더 진전시키고 싶은데… 게으름과 한없이 얄팍한 집중력이 문제다.
<마녀 배달부 키키>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키키의 ‘마녀수련’에 조용히 열광했다. 이 영화의 모든 것이 좋았다!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마녀 공동체. 미약한 마법을 물려받은 소녀. 13살이 되면 시작하는 수련. 낯선 마을에서 시작하는 모험 이야기!
나는 키키가 방을 청소하는 모습을 꽤 오랫동안 기억했다. 낯선 마을에서 방을 구하고, 야무지게 물걸레질을 하고, 핫케이크를 만들고 배달을 나가는 모습이 부러웠다. 나 역시 10대였고, 독립을 꿈꾸고 있었으니까. 나는 글을 쓰고 싶었고, 어떻게든 해내고 싶었으며, 얼마든지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몇년 후, 서울에 올라와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어느 날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그 ‘각오’라는 것이 얼마나 낭만적으로 치장되어 있었는지 깨달았다.
키키의 방은 허름하기 짝이 없다.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다락방인데, 먼지가 가득하다. 청소를 했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키키는 마녀에게 허락된 검은색 원피스 하나만을 입고 지내며 끼니는 모두 핫케이크로 때운다. 일이 없을 때는 아래층의 빵 가게를 봐주고, 일이 들어오면 비가 오건 바람이 불건 빗자루를 타고 배달을 나간다. 키키는 가난하다. 나도 가난했다. 그리고 그건 전혀 낭만적이지 않았다. 내 마음속에는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다는 자만심과 철딱서니 없는 짓을 저질렀다는 자책이 늘 뒤섞여 있었다. 항상 불안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기에, 현재를 채찍질했다. 그게 나 자신을 견디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제일 싼 음식을 사먹고, 자주 굶고, 매번 밤을 새우며 과제를 마감하고, 또 마감을 하는 일은 천천히 내 몸을 망가뜨렸다. 특별한 일은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누구든 고생하며 산다. 그런 과정이 내게도 있었을 뿐이고, 지금도 그렇다. 딱히 뭐가 다르겠는가. 무엇보다 나는 나를 안다. 어차피 포기하지 못했을 것이다.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고, <마녀 배달부 키키>를 볼 때마다 울었겠지.
이번에도 다를 바 없었다.
어떻게든 마을에 자리를 잡으려 애쓰던 키키는 어느 순간 갑자기 마법을 잃어버린다. 하늘을 날 수 없게 된 것이다. 가장 친한 친구인 고양이 지지의 말도 알아들을 수 없게 된다. 재주라고는 오직 하늘을 나는 것뿐이었는데, 그걸 할 수 없게 되자 키키는 상심에 빠진다.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낀다. 그런 키키에게 화가인 우르슬라가 말한다.
“마법과 그림은 비슷한 데가 있어. 나도 안 그려질 때가 있어. 그럴 때는 미친 듯이 그릴 수밖에 없어. 계속 그리고 또 그려야지. (그래도 안 그려지면) 산책이나 경치 구경을 하고, 낮잠 자거나 아무것도 안 해. 그러다가 갑자기 그림이 그리고 싶어지지.”
그 순간, 키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우르슬라에게 묻는다.
“정말이에요?”
나는 우르슬라와 함께 대답했다. “물론이야.” 그렇게 된단다. 그렇게 되지. 또다시 어린 시절, 나는 슬럼프는 재능의 소진이라고 생각했다. 느닷없이 급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이라고 믿었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을 돌이켜보면 크게 틀린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키키도 말한다. 이전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도 언제나 하늘을 날 수 있었다고. 그러나 날 수 없게 된 순간부터, 어떻게 날았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마치 단 한번도 이 일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급작스러운 ‘중단’은 분명 충격적이다. 숨도 막히고, 겁도 난다. 그러나 나는 슬럼프 자체보다는 그 부진의 이유가 더 놀라웠다. 언제나 잘하고 싶은 마음,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했다.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는 그‘각오’는 분명 나 자신을 한계로 몰아붙이는 데 큰 역할을 했고, 덕분에 나의 글쓰기 경험은 분명 다채로워졌다.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그 마음은 양날의 검이기도 해서, 나는 언제나 스스로에게 칼끝을 겨누지 않고는 글을 쓰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어지고 마법을 부릴 수 있게 되고,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일은 정말로 일어난다. 생각보다 빨리 되돌아온다. 정말로 어떤 마법처럼! 문제는 언제나 그 이후인 것 같다. 내가 양날의 검을 쥐고 있다는 걸 깨달은 직후이기 때문에,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을 맞이해야 한다. 그러니까… 대체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고백하자면, 나는 그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아직 알지 못한다. 계속 찾는 중이다. 나를 찌르지 않으면서 칼을 들고 서있는 방법을.
그래서 <마녀 배달부 키키>의 결말을 좋아한다. 키키는 ‘당연하게도’ 마법을 되찾는다. 하지만 아이는 허둥댄다. 빗자루 대신 빌려온 대걸레(솔빗자루)는 손에 익지 않아 불편하고, 지지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다. 무엇보다 하늘을 나는 것 외에는 여전히 별다른 능력이 없다. 계속 잘해내고 싶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것이 역시 만만치가 않다. 하지만 키키는 끈질기게 날아오른다. 대걸레(솔 빗자루)를 협박하고 어르고 달래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믿으면서, 해야 할 일을 잊지 않는다. 볼 때마다 똑같은 장면인데, 거의 외우고 있다시피한 장면인데, 그 아이가 하늘로 붕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면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